일본 고깃집엔 무조건 있는데…일본인들이 한국에 없어서 놀란다는 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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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투리가 일본을 점령한 이유

일본인들이 평소에 가장 즐겨 먹는 고기 요리 가운데 하나는 야키니쿠다. 일본의 야키니쿠 전문점에 가면 한국의 고깃집과 매우 비슷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야끼니꾸 자료사진.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야끼니꾸 자료사진.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메뉴판을 열면 김치와 깍두기가 기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식사 종류로는 비빔밥과 냉면이 포함돼 있다. 고기를 주문할 때도 갈비나 안창살 같은 단어가 한국어 발음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대다수 일본인은 야키니쿠라는 음식 자체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 때문에 오히려 일본 여행객들이 한국에 왔을 때 크게 당황하는 일이 벌어진다. 일본의 야키니쿠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누구나 빼놓지 않고 주문하는 음식이 바로 '초레기 샐러드'다. 일본인들은 이 음식을 당연히 고기의 본고장인 한국에서도 흔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어떤 고깃집을 가더라도 메뉴판에서 초레기 샐러드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고깃집을 찾은 일본인들이 종업원에게 초레기 샐러드가 있느냐고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초레기 샐러드의 정체가 무엇인지, 일본인들이 한국 음식으로 착각하고 먹었던 일본식 창작 요리였던 것인지에 대해 오랜 시간 의문이 이어졌다. 이 미스터리의 실마리는 한국의 지역 사투리와 음식 문화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명확하게 풀린다.

초레기라는 단어가 생겨난 어원과 사투리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초레기 샐러드는 상추나 양배추 같은 채소에 참기름, 소금, 마늘, 그리고 간장 등을 넣고 가볍게 버무린 뒤 위에 김 가루를 뿌려 내는 음식이다. 고기의 기름진 맛을 잡아주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인기가 상당하다. 이 초레기라는 낯선 단어의 진짜 바탕은 한국의 '겉절이'에 있다.

한국의 동남쪽 지방인 경상도에서는 배추나 상추를 양념에 바로 버무려 먹는 김치나 무침 요리를 '재래기' 혹은 '정구지 재래기' 같은 방식으로 불러왔다. 겉절이라는 표준어 대신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쓰던 사투리가 바로 재래기다. 이 단어가 과거에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발음이 매끄럽게 다듬어지며 '초레기'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파절이 자료사진 / LEE KWANGPIL-shutterstock.com
파절이 자료사진 / LEE KWANGPIL-shutterstock.com

즉, 한국에 초레기 샐러드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이를 상추겉절이나 파절이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겉모습은 똑같은 채소무침을 보면서도 이름이 달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겉절이라는 표준어 단어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사투리가 국경을 넘어가면서 생긴 흥미로운 현상이다.

부침개가 치지미로 바뀐 또 다른 사례

이처럼 한국의 지역 사투리가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이름으로 정착한 사례는 또 있다. 일본에서 한국식 부침개나 전을 뜻하는 단어는 '치지미'다. 일본의 마트나 식당에 가면 김치 치지미, 해물 치지미라는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부침가루 역시 '치지미 가루'라는 상품명으로 버젓이 판매된다.

부침개 자료사진. / Light Win-shutterstock.com
부침개 자료사진. / Light Win-shutterstock.com

한국인들이 들으면 치지미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역시 경상도 사투리에서 출발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부침개나 전을 '찌짐' 혹은 '찌짐이'라고 부른다. 기름을 두르고 불 위에서 지져내는 조리 방식에서 나온 말이다. 이 찌짐이라는 사투리가 일본인들의 귀에 전해지면서 일본어 발음 구조에 맞게 치지미로 변형되어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표준어인 부침개나 전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그리 널리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투리인 찌짐이 일본 전역에서 한국의 부침개를 나타내는 표준 명칭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다. 초레기 샐러드와 치지미는 모두 한국의 특정 지역 언어가 바다를 건너가 현지 식문화를 지배하게 된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볼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일본에 정착하게 된 역사적 배경

그렇다면 왜 한국의 표준어가 아닌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가 일본의 야키니쿠 문화를 채우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지난 세기 동안 이루어진 사람들의 이동과 역사적 배경이 깊이 얽혀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과 그 이후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들의 거주 지역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한반도의 남부 지방,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일본 현지에 정착하여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어린 시절부터 쓰고 들었던 고향의 말로 음식 이름을 붙였다. 집에서 상추를 무쳐 먹으며 "재래기 좀 해라"고 말하던 습관과 부침개를 부치며 "찌짐 구워라"고 하던 언어생활이 고스란히 일본인 손님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 음식을 처음 접할 때 요리를 만든 한국인들이 부르던 이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표준어인 겉절이나 부침개 대신 재래기와 찌짐이 일본 사회에 먼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고깃집 문화가 가진 차이점

초레기 샐러드의 정체를 알고 나면 한국과 일본의 고깃집이 음식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점도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고기 문화에서는 상추겉절이나 파절이, 쌈 채소 같은 밑반찬이 당연히 무료로 제공된다. 손님이 고기를 주문하면 상 위에 기본적으로 차려지며, 부족하면 얼마든지 새로 가져다주는 것이 한국의 인심이다.

상추 겉절이 자료사진. / Light Win-shutterstock.com
상추 겉절이 자료사진. / Light Win-shutterstock.com

반면 일본의 야키니쿠 문화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따로 주문하고 돈을 지불해야 한다. 김치 한 접시부터 시작해서 상추 몇 장, 그리고 초레기 샐러드까지 하나의 독립된 메뉴로 가치가 매겨진다. 일본인들에게 초레기 샐러드는 한국의 밑반찬처럼 거저 나오는 음식이 아니라, 돈을 내고 사 먹는 번듯한 일품 요리인 셈이다.

또한 일본의 초레기 샐러드는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조리법이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의 겉절이는 고춧가루와 멸치액젓을 사용하여 매콤하고 짭짤한 맛을 강하게 내는 편이다. 하지만 일본의 초레기 샐러드는 고춧가루를 거의 쓰지 않거나 아주 적게 쓰고, 참기름의 고소한 향과 소금의 깔끔한 짠맛을 중심으로 맛을 낸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식성을 고려해 현지화된 결과물이다.

야키니쿠 메뉴판에 남아 있는 한국어 흔적들

초레기 샐러드 외에도 일본 야키니쿠 집에는 한국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채소를 데쳐서 참기름과 소금 등으로 무친 한국의 나물은 일본에서도 '나무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등을 모아놓은 모듬 나물은 야키니쿠를 먹기 전 입가심으로 시키는 필수 메뉴다.

고기 부위 역시 마찬가지다. 갈비는 '가루비', 안창살은 '하라미', 양깃머리는 '미노' 같은 식으로 한국어 명칭이 일본식 발음으로 바뀌어 사용된다. 밥에 여러 가지 채소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비빔밥은 '비빔바'로 통하며, 돌솥에 지져 나오는 돌솥비빔밥은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야키니쿠는 이름부터 조리 방식까지 한국의 식문화에 깊은 빚을 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 고유의 식재료와 양념이 더해져 이제는 일본만의 독특한 외식 문화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한국 음식의 정체성은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