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통령도 근조화환 보내 추모했던 '이 사람'...떠난 지 5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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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오겠다”라던 약속...끝내 지키지 못해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한국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그는 췌장암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다 2021년 6월 7일 향년 50세로 생을 마감했다.
유 전 감독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이끌던 2019년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는 직접 병명을 공개하며 치료와 감독직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했다. 끝까지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지만 그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1971년생인 유 전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멀티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1994년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그는 데뷔 첫해 수비수 부문 베스트11에 선정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미드필더와 공격수 포지션에서도 정상급 활약을 펼치며 K리그 역사상 드물게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린 선수로 기록됐다.
1999년 일본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한 뒤에도 존재감은 빛났다. 2000시즌 리그 22경기에서 17골을 기록하며 득점 순위 상위권에 올랐고,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유 전 감독의 이름이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무대는 단연 2002 한일월드컵이다. 당시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측면 자원, 공격수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경기 중에도 상황에 따라 포지션을 바꾸며 팀 전술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다. 포르투갈전 결승골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그는 한국 축구가 사상 처음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2003년 요코하마의 J리그 우승을 이끈 뒤 국내 무대로 복귀한 그는 2006년 울산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와 각급 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유소년 육성과 후배 양성에도 힘쓰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싸워야 했던 췌장암은 대표적인 난치성 암으로 꼽힌다. 췌장은 위 뒤쪽에 위치한 장기로 소화효소와 인슐린 등을 분비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문제는 췌장암이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상당수 환자가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췌장암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복통, 황달, 체중 감소, 소화불량, 식욕 저하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은 다른 질환에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어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실제로 진단 시점에 이미 주변 장기나 다른 부위로 전이된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유 전 감독이 진단받았던 4기 췌장암은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를 의미한다. 수술이 가능한 경우가 제한적이며 항암치료를 중심으로 치료가 진행된다. 의료계에서는 췌장암을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암 가운데 하나로 분류한다.
흡연은 췌장암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만성 췌장염, 비만, 당뇨병, 가족력 등이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된다. 최근에는 건강검진이 확대되면서 조기 발견 사례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생존율이 낮은 암으로 꼽힌다.
유 전 감독은 투병 중에도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축구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고,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의 투혼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멀티플레이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영웅.
'유상철'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한국 축구 팬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