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서 터졌다...3만 명도 못 넘겼는데 ‘1위’ 찍은 대반전 한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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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참패 영화, 넷플릭스서 1위 반전의 비결은?
AI 영화 '중간계', 기술 실험과 흥행의 갈림길
극장 개봉 당시 관객 3만 명도 넘기지 못했던 한국 영화가 OTT 시장에서 뜻밖의 반전을 써냈다. 극장에서는 흥행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넷플릭스 공개 이후 곧바로 국내 영화 순위 정상에 오르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체는 AI를 활용한 61분 분량의 장편 영화 ‘중간계’다. 넷플릭스 코리아에 따르면 ‘중간계’는 전날 기준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뒤이어 2위는 ‘세계의 주인’, 3위는 ‘넘버원’, 4위는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5위는 ‘오피스 로맨스’, 6위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7위는 ‘휴민트’, 8위는 ‘신원 미상의 여자’, 9위는 ‘철인무적’, 10위는 ‘반도’ 순으로 집계됐다.
극장에선 2만 명대, 넷플릭스에선 1위
‘중간계’의 넷플릭스 1위는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은 지난해 10월 15일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관객 수는 2만 8000명대에 그쳤다. 초호화 배우진과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 영화라는 타이틀을 내세웠음에도 극장 시장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넷플릭스 공개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극장에서 선택받지 못했던 영화가 OTT에서는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특히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 영화’라는 실험적 성격, 변요한·김강우·양세종·이무생 등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 61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 맞물리며 시청 진입 장벽을 낮춘 것으로 보인다.
극장 흥행 실패작이 OTT에서 재평가받는 흐름은 이제 낯설지 않다. 다만 ‘중간계’의 경우 단순한 뒤늦은 발견이라기보다, AI 영화라는 기술적 화두가 넷플릭스 플랫폼 안에서 다시 소비된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갇힌 네 사람

영화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인 ‘중간계’에 갇힌 사람들과, 이들의 영혼을 소멸시키려는 저승사자들의 추격전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이야기는 해외에서 불법 자금을 끌어모은 젊은 재력가 재범의 모친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국정원 요원 장원, 형사 민영, 여배우 설아, 방송국 PD 석태 등 각기 다른 목적을 품은 인물들이 모인다. 장례식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물들의 관계와 속내가 서서히 드러나고, 납치된 상주를 쫓던 이들은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후 네 사람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들이 떠도는 기묘한 공간 ‘중간계’에서 눈을 뜬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거둬가려는 저승사자들과 맞서며 필사적인 도주를 시작한다. 저승사자, 크리처, 차량 폭발, 건물 붕괴, 광화문 광장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6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AI 영화에 도전

‘중간계’는 ‘범죄도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드라마 ‘카지노’, ‘파인: 촌뜨기들’ 등을 연출한 강윤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장르물에 강점을 보여온 강 감독이 이번에는 AI 기술을 전면에 끌어와 새로운 방식의 장편 영화를 시도했다. AI 연출은 권한슬 감독이 맡았다.
강 감독은 앞서 언론시사회에서 “‘파인’을 촬영하고 있을 때 KT에서 짧은 AI 영화를 제안했고,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를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프리 단계였던 3월만 해도 AI가 실사영화와 잘 섞이지 않을 정도로 기술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촬영하는 중에도 계속 발전됐다”고 설명했다.
제작 방식도 일반 영화와 달랐다. 강 감독은 기획 단계부터 AI와 VFX가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했다고 했다. 초반에는 VFX가 AI를 서포팅하는 개념으로 접근했고, AI를 중심에 두고 캐릭터 디자인 등을 먼저 설계한 뒤 VFX가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영화에는 저승사자와 크리처 등 16종의 캐릭터가 AI로 제작됐다. 크리처 액션, 차량 폭발, 광화문 광장 붕괴 장면 등에도 AI가 활용됐고, AI로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VFX가 보완했다. 강 감독은 차량 폭파 장면에 대해 “못해도 4~5일 걸릴 일이 AI로 하니 1~2시간이면 끝났다”고 설명했다.
변요한·김강우·양세종·이무생, 배우들은 어떻게 봤나

배우 라인업도 눈길을 끈다. 변요한은 국정원 요원 장원 역을, 김강우는 형사 민영 역을 맡았다. 방효린, 임형준, 양세종, 이무생도 출연해 각자의 목적을 품고 중간계에 휘말리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실사 배우들의 연기가 AI 기반 장면과 결합하면서 영화의 현실감을 보완하는 구조다.
변요한은 “극장 영화이자 AI 영화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설렜다”며 “‘중간계’는 각자의 사연과 인물 간 관계성을 가져가면서 크리처들과의 교류를 다루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생각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을 마친 뒤 “인간의 상상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AI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김강우는 처음 접하는 방식의 촬영에 대해 “감독님에게 계속 질문했다”며 “CG와 무엇이 다른지, 무엇을 보고 뛰어야 하는지 물었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프리 단계에서 동선을 정해놓고 움직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호흡이 잘 맞았다고 했다.
임형준은 AI와 배우의 관계에 대해 “아직은 사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AI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 배우들도 AI와 협업하는 방식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효린 역시 상상에 기대야 하는 부분이 많아 감정과 반응을 더 섬세하게 표현해야 했다고 전했다.
기술적 한계와 의미, 엇갈린 평가 속 반전

‘중간계’가 완성도 면에서 완벽한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니다. AI 크리처와 실사 배우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지 못한 장면도 있었고, 생성형 AI 특유의 질감이 큰 스크린에서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전반적으로 미숙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는 지적 역시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남긴 의미는 분명하다. 그간 AI 활용 영상물이 대체로 20분 안팎의 단편에 머물렀다면, ‘중간계’는 61분 분량의 장편 영화로 제작됐다. 국내 상업영화 영역에서 AI를 어느 정도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한 사례라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있다.
강윤성 감독은 AI가 배우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배우는 한 명 한 명이 각각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에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CG 기술을 AI로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간계’가 던진 질문은 영화 한 편의 흥행 여부를 넘어선다. AI는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영화 산업은 이 기술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다.
극장에서 3만 명도 넘기지 못했던 ‘중간계’는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찍으며 예상 밖의 반전을 만들었다. 흥행 실패작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지웠다고 보긴 어렵지만, OTT 시장에서 다시 소비될 이유는 충분히 증명했다. 기술적 한계와 실험적 의미가 공존하는 이 작품이 일회성 화제에 그칠지, AI 영화 논의의 출발점으로 남을지는 이제 시청자 평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