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깃발만 꽂으면 당선? 호남의 ‘침묵’이 민주당에 던진 서늘한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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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압승’이지만 속은 곪아 터졌다… 역대급 무투표 당선과 전국 최저 투표율이 증명하는 ‘독점의 폐해’

요란했던 6·3 지방선거의 막이 내렸다. 호남의 선거 지형도를 멀리서 조망해 보면 온통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 물결로 뒤덮여 있다.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광주광역시 5개 구청장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싹쓸이했으며, 전남 지역의 기초단체장 역시 절대다수가 민주당의 간판을 달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숫자와 결과표만 놓고 본다면 민주당 지도부는 당원들과 함께 축배를 들어 마땅한 ‘완벽한 승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거 현장 곳곳에서 느껴지는 기류는 승리의 환호성과는 거리가 멀다. 호남의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면서, 혹은 투표장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민주당을 향해 던진 묵직하고 서늘한 경고의 메시지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얻은 ‘상처뿐인 영광’을 뼈저리게 직시해야만 한다.

■ 유권자의 투표용지를 빼앗은 ‘무투표 당선’의 촌극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가장 뼈아프게 보여준 대목은 바로 ‘무투표 당선’의 속출이다. 무려 80명에 달하는 후보가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당선인 신분이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 중 79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라는 사실이다. 선거의 본질은 유권자가 여러 후보의 정책과 공약, 도덕성을 꼼꼼히 저울질하고 심판하여 지역의 일꾼을 뽑는 데 있다. 그러나 특정 정당의 공천장 하나가 곧바로 당선증으로 직결되는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구를 이끌어갈 대표자를 선택할 헌법적 권리를 사실상 박탈 당했다. 후보들은 주민들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당내 실세의 눈도장을 찍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고인 물’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해진다. 호남 정치의 역동성이 질식당하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가 바로 이 역대급 무투표 당선 사태다.

■ ‘전국 꼴찌’ 광주 투표율, 차가운 체념인가 무언의 분노인가

선거 결과에 내포된 또 다른 심각한 경고음은 바로 ‘투표율’에서 울렸다. 전남이 곳곳에서 치열한 본선 경쟁이 벌어지며 전국 최고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뜨거운 선거 열기를 보인 반면,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광주광역시는 ‘전국 최저 투표율’이라는 낯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았다. 이를 단순히 현대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휴일 나들이객의 증가 탓으로 돌린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는 수십 년째 반복되는 ‘찍어봐야 어차피 민주당’이라는 깊은 피로감과, 아무리 무능하고 부패한 후보를 내세워도 결국 묻지마 투표로 이어지는 일당 독점 구도에 대한 시민들의 무언의 항의다. 투표장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민주당을 향해 차가운 회초리를 든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척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현재의 오만한 독주 체제에 대한 강한 견제 심리가 활하산 처럼 끓어오르고 있음을 지도부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 가라앉지 않는 공천 파동, 도지사의 작심 비판이 남긴 파장

본선보다 치열하다는 민주당 내 경선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숱한 파열음을 낳았다. 시스템 공천을 자부했던 당의 호언장담과 달리, 곳곳에서 밀실 공천과 줄세우기, 원칙 없는 컷오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평소 합리적이고 온건한 행보로 도정에만 매진하던 김영록 전남지사마저 폭발했다. 김 지사가 선거 직후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향해 경선 과정의 불공정성을 꼬집으며 공개적으로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지역 정가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현역 도지사가 자당의 당 대표를 향해 날을 세웠다는 것은 이번 공천 과정이 얼마나 상식 밖으로 혼탁했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원칙을 잃어버린 불투명한 경선 과정은 결국 출마자들 간의 깊은 갈등을 남겼고, 이는 고스란히 당 지도부에 대한 당원과 도민들의 깊은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 우물 안 개구리 된 민주당, 수도권 참패 뼈저리게 새겨야

호남이라는 안락한 온실을 벗어나 전국 단위의 지형도로 시야를 확장하면 민주당이 처한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 시장 선거에서의 패배는 차치하더라도,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인 서울 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민주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야권 단일화 실패라는 치명적인 헛발질로 인해 뻔히 이길 수 있었던 의석마저 상대 진영에 헌납하고 말았다.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되어 범야권의 연대조차 이끌어내지 못하는 민주당의 옹졸한 정치력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호남에서의 일방적인 지지만 믿고 중앙 정치에서 분열과 독선을 거듭한다면, 결국 전국 선거에서는 영원한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6·3 지방선거는 민주당에게 호남 수성이라는 ‘위안거리’와 함께,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사약’을 동시에 내렸다. 조국혁신당의 선전과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은 호남의 맹목적인 민주당 짝사랑이 언제든 끝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제 민주당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안주와 지배의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뼈를 깎는 혁신과 반성으로 유권자의 선택권을 되찾아주는 진짜 민주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호남 민심의 경고장을 또다시 휴지통에 버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호남은 민주당에게 영원한 이별을 통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