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밀어도 소용없더라…‘삭발 정치’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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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김영환·박형준·박민식 줄낙선

6·3 지방선거에서 '삭발 정치'가 완전히 힘을 잃었다. 배수진을 치겠다며 머리를 민 보수 진영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 삭발이라는 자극적 퍼포먼스가 더 이상 민심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김진태 국민의힘 강원지사 후보가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 입법 촉구 대회에서 삭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진태 국민의힘 강원지사 후보가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 입법 촉구 대회에서 삭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삭발 대열의 선두 주자는 김진태 국민의힘 강원지사 후보였다. 그는 지난 2월 9일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머리를 깎고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표면상 법안 처리 지연에 대한 항의였지만, 당내 컷오프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단수공천을 따냈지만, 선거에서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김영환 국민의힘 충북지사가 3월 19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결정에 반발해 삭발하고 있다.  / 김영환 페이스북 캡처
김영환 국민의힘 충북지사가 3월 19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결정에 반발해 삭발하고 있다. / 김영환 페이스북 캡처

두 번째 삭발 주자인 김영환 국민의힘 충북지사 후보는 신용한 민주당 후보에게 10%p 이상 차이로 완패했다.

그는 3월 19일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결정에 삭발로 맞섰다. 법원이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경선을 거쳐 후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재임 중 제천 봉양읍 산불, 청주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등 잇단 재난 상황에서 술자리를 갖거나 현장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발목을 잡았다. 유권자들은 삭발 대신 부적절한 위기 대처를 기억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3월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 뉴스1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3월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 뉴스1

세 번째로 머리를 깎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는 전재수 민주당 후보에게 압살당했다. 3월 23일 국회 본청 앞에서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한 그는 가까스로 공천받았지만 역풍을 피하지 못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실패 논란에 배우자 명의 해운대 엘시티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까지 겹친 결과다.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지난달 21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인근 쌈지공원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삭발하고 있다. 옆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은 노모. / 뉴스1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지난달 21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인근 쌈지공원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삭발하고 있다. 옆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은 노모. / 뉴스1

마지막 삭발 주자는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 후보였다. 5월 21일 출정식에서 어머니 손에 머리를 맡긴 그는 '북갑 토박이'임을 앞세워 한동훈 무소속 후보와 하정우 민주당 후보를 '침입자'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2022년 성남 분당갑 보궐선거 출마 당시 "20여 년을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분당"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조명되며 타격을 받았다. 18·19대 부산 북구강서구갑 의원을 지내면서도 실생활은 분당에서 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지면서 '토박이' 주장의 신빙성이 흔들렸다. 결과는 3위 낙선이었다.

네 명 모두 머리를 깎았고, 네 명 모두 졌다. 이들이 남긴 것은 상대를 향한 거친 메시지와 유권자를 향한 읍소, 그리고 휑한 머리뿐이었다.

삭발은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온 대표적 결의의 상징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삭발 자체가 더 이상 정치적 메시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삭발이 희생과 결단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머리카락보다 정책과 성과, 책임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특히 이번에 삭발한 후보들 상당수는 공천 갈등이나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삭발을 선택했다. 지역 현안 해결이나 국가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비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를 통해 정치인의 과거 발언과 행적이 실시간으로 검증되는 시대에 상징적 퍼포먼스만으로는 여론을 돌리기 어려워졌다. 삭발이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논란이나 실책, 공약 불이행에 대한 평가를 덮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에서 다시 확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