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입소문 나더니…한국 넷플릭스 2위까지 올라버린 19금 '시대극'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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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없이 2위 등극한 이 영화의 비결
백색 공포 시대를 다룬 134분의 감정 여정
한국 넷플릭스에 조용히 올라온 대만 영화 한 편이 입소문만으로 순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화제의 작품은 바로 '안개 낀 시절'. 2일 오후 기준 이 영화는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영화' 2위를 기록 중이다. 국내 오리지널도 아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아닌 대만 시대극이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별다른 마케팅도, 유명 배우의 한국 내 인지도도 없이 오직 콘텐츠 자체의 힘으로 올라온 순위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넷플릭스 상위권 뚫은 대만 영화
넷플릭스 국내 영화 상위권은 통상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나 미국 대형 스튜디오 작품이 장악하는 구조다. 그 틈에서 대만 영화가 2위에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안개 낀 시절'은 넷플릭스 전 세계 스트리밍 공개 직후 한국에서도 공개 초반 톱10에 진입한 뒤 빠르게 순위를 끌어올렸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 외적 권위다. '안개 낀 시절'은 제62회 금마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극영화상을 수상했다. 금마장은 중화권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으로, 한국의 청룡영화상에 비견되는 위상을 지닌다. 이 수상 이력이 스트리밍 공개 이후 볼 만한 이유를 제공하는 공신력으로 작용했다.
극장 개봉 당시 대만 박스오피스에서도 1억 대만달러를 돌파했는데, 이 소재의 작품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성과였다는 평가가 대만 현지에서 나왔다.

'안개 낀 시절', 어떤 영화인가
이 작품은 2025년 개봉한 대만 영화로, 천위쉰 감독이 연출했다. 러닝타임은 134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원제는 '大濛(대몽)'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짙은 구름과 안개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제목 자체가 시대의 불투명함을 은유한다.
이야기는 1954년 대만에서 시작된다. 15세 농촌 소녀 아웨(방욱정)는 하나뿐인 오빠 위원(증경화)이 국가에 의해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웨는 오빠의 시신을 되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하고, 언니 아샤(9m88)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길을 안내할 운전사 자오공다오(가위림)와 함께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국가의 감시와 폭력이 짙은 안개처럼 사방을 에워싼 시대 속에서, 오빠의 흔적을 쫓아 맨몸으로 부딪히는 세 사람의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주연 배우들은 누구?
주연을 맡은 방욱정은 대만의 실력파 배우로, 극을 이끄는 소녀 아웨 역을 맡아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굳건히 나아가는 인간의 강인함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가위림은 운전사 자오공다오 역으로 출연해 두 자매의 여정에 묵직한 존재감을 더한다.

'백색 공포'란 무엇인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백색 공포'라는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한다. 대만 백색 공포 시대는 중국국민당 통치 하에서 벌어진 정치적 억압 전반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대만에서는 이 시기를 백색 공포 또는 대만 백색 공포 시대라고 지칭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백색 테러'와는 뉘앙스가 다소 다른 부분이 있는데, 대만 역사에서의 이 용어는 국민당 억압적 통치가 이뤄진 하나의 시대 자체를 지칭한다.
이 시기의 시작점은 통상 1947년 2.28 사건 또는 1949년 대만 계엄령 선포로 보며, 종점은 1987년 계엄 해제 혹은 1992년 푸젠성 계엄령 해제까지로 본다. 그러나 정확한 시작과 종결 연도는 학계에서 아직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영화의 배경인 1951년~1960년은 억압이 가장 극심하게 작동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좌익 혐의를 받은 이들은 정식 재판 없이 처형되거나 투옥됐고, 가족들은 연좌제의 형태로 고통을 이어받았다. 침묵이 생존의 방식이 되던 시절이었다.
대만에서도 파격이었던 이유
이 영화가 대만 현지에서 화제가 된 이유는 단순히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분단, 5.18 민주화 운동 같은 역사적 상처가 수십 년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로 반복 소환되며 사회적 논의의 장이 넓게 열려 있다. 반면 대만에서는 백색 공포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는 콘텐츠가 여전히 정치적 민감성을 수반한다.

대만 사회 안에는 현재도 국민당 지지층과 대만 독립 성향의 집단 등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공존한다. 이 시대를 다루는 것 자체가 특정 집단에 대한 역사적 단죄로 읽힐 수 있어 논란의 소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스오피스 1억 대만달러를 돌파한 배경에는 영화의 연출 방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안개 낀 시절'은 특정 집단을 일방적인 악으로 규정하거나 선악 구도를 단순화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시대의 구조 안에 놓인 개인으로 그리며, 억압과 폭력 속에서 상처받고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 접근 방식이 정치적 논란을 일부 비켜가면서도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왜 한국 관객이 이토록 반응했을까
한국 시청자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는 이유는 낯설지 않은 감정의 결에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 억울한 죽음을 감당해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반복돼온 서사다. 언어와 국적이 달라도, 시대가 달라도 그 감정은 유사하게 닿는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만, 19금 지정의 주된 이유가 선정성보다는 역사적 폭력의 묘사에 있어 성인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진중한 역사 드라마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13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몰입이 유지된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안개의 이미지로 국가 폭력을 시각화한 연출, 금마장 최우수 극영화상이라는 작품 공신력, 한국 관객에게도 이질감 없이 닿는 보편적 감정선이 맞물리며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만들어가고 있다.

비슷한 시대의 다른 아픔…넷플릭스에서 함께 보는 영화 '난징사진관'
'안개 낀 시절'과 함께 최근 한국 넷플릭스에서 중화권 역사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또 하나의 작품이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중국 영화 '난징사진관'이다.
이 작품은 1937년 난징 대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젊은 우편 배달부 쑤류창(류하오란)으로, 대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창'이라는 가명을 쓰며 일본군 종군 기자의 눈에 띄어 사진 인화 기사 행세를 하게 된다. 아창은 난징의 한 사진관을 임시 피난처로 삼아 숨어 지내면서, 일본군이 촬영한 만행이 담긴 사진 수백 장을 비밀리에 인화한다. 정체가 탄로 날 위기 속에서도 아창과 사진관에 모인 피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그 필름을 외부로 폭로하려 고군분투하며, 결국 숨겨둔 필름 한 통이 전 세계에 알려지며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을 담았다.
중국 현지에서의 흥행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7월 개봉 후 17일 만에 누적 매출 21억 9천만 위안, 한화 약 4천억 원 이상을 돌파했고, 개봉 한 달 만에 4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의 흥행과 맞물려 중국 내 반일 감정과 애국주의 분위기가 고조됐으며, 이와 관련된 현상이 현지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됐다.

한국에서는 같은 해 11월 5일 극장 개봉했으나 관객 수는 약 3만 4천 명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넷플릭스 스트리밍이 시작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제강점기라는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내 시청자들이 이 작품에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평단은 역사 왜곡이나 일부 과장된 전투 장면을 지적하면서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역사적 기록으로서 사진이 지니는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는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마주해야 할 증언자의 시선"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안개 낀 시절'이 억압받는 개인의 슬픔에 집중했다면, '난징사진관'은 역사적 참상의 기록 행위 자체에 무게를 둔다. 두 작품 모두 국가 폭력 앞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시대와 국적이 달라도 한국 관객에게 유사한 감정의 결로 닿는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