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한국 산 살리고도 누명 쓴 ‘이 나무’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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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로 불린 아까시나무, 산림녹화·양봉 이끈 뒤 오해 속 감소

5월이면 길가와 산자락 곳곳에서 흰 꽃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면 달콤한 향이 먼저 코끝에 닿는다.

아까시나무에 핀 꽃. / 국립생물과학관
아까시나무에 핀 꽃. / 국립생물과학관

많은 사람이 이 냄새를 ‘아카시아 향’으로 기억한다. 꽃 이름도, 나무 이름도 자연스럽게 ‘아카시아’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봄마다 흔히 보는 그 나무의 정확한 이름은 ‘아카시아나무’가 아니다. 국명은 ‘아까시나무’다.

두 이름은 비슷하지만 같은 나무가 아니다. 아카시아는 아프리카와 호주 등지에 많은 다른 무리의 나무다. 노란 꽃이 둥근 공처럼 피는 종이 많고, 한국 산야에서 흔히 마주치는 나무도 아니다.

반면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콩과 낙엽교목이다. 흰 꽃이 긴 꽃대에 포도송이처럼 달리고, 가지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우리가 봄마다 길가에서 보는 흰 꽃 나무는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나무인 셈이다.

이름이 뒤섞인 데는 과거 명칭이 얽혀 있다. 아까시나무의 학명은 ‘Robinia pseudoacacia’다. 여기서 ‘pseudo’는 가짜 또는 닮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카시아와 닮았지만 아카시아는 아니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니세 아카시아’, 곧 가짜 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시간이 지나며 앞말이 빠진 채 ‘아카시아’라는 이름만 널리 퍼졌다는 설명도 있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시기를 두고는 기록이 엇갈린다. 1891년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설명이 있고, 1907년 수원농과대학 구내에 심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도입 시점을 하나로 못 박기는 조심스럽지만, 이후 아까시나무가 한국 산림녹화와 연료림 조성에 널리 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헐벗은 산에 먼저 뿌리내린 한국 나무

아까시나무가 한국에서 맡은 일은 작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거친 뒤 국내 산림은 크게 훼손됐다. 산에는 나무가 드물었고,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갔다. 땔감 부족까지 겹치면서 산은 더 빠르게 헐벗었다.

당시 필요한 나무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수종이었다. 기름진 땅에서만 자라는 나무로는 민둥산을 덮기 어려웠다.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내리고, 빠르게 자라며, 흙을 붙잡을 수 있는 나무가 필요했다.

벌통이 놓여진 인근의 아카시아 꽃에서 꿀을 모아 집으로 운반하는 꿀벌들의 모습. / 뉴스1
벌통이 놓여진 인근의 아카시아 꽃에서 꿀을 모아 집으로 운반하는 꿀벌들의 모습. / 뉴스1

아까시나무는 그런 조건에 맞았다. 생장이 빠르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버텼다. 콩과 식물인 아까시나무는 뿌리혹박테리아와 함께 공기 중 질소를 토양에 더한다. 비료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메마른 산지에 먼저 들어갈 수 있었던 까닭이다.

국내에는 1980년대까지 국토녹화와 연료림 조성 등을 위해 약 32만㏊에 아까시나무가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헐벗은 산에서 흙을 붙잡고, 뒤이어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땅을 마련한 셈이다.

아까시나무는 햇빛을 좋아한다. 숲이 우거지고 그늘이 짙어지면 힘을 잃는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서서히 줄어든다. 먼저 척박한 산을 덮고, 토양을 되살린 뒤, 숲이 자라면 뒤로 물러나는 길을 걷는 나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까시나무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빗대기도 한다. 좋은 땅을 차지한 나무가 아니라, 다른 나무가 들어가기 어려운 땅에 먼저 뿌리내린 나무였기 때문이다.

산림녹화의 공신에게 따라붙은 낭설

그러나 산을 살린 나무에게 돌아온 평가는 고맙다는 말만은 아니었다. 1980~90년대 들어 아까시나무가 곳곳에서 흔해지자 이상한 소문이 따라붙었다. 대표적인 말이 “뿌리가 묘 속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오랫동안 묘지 주변에서 아까시나무를 꺼리게 만든 결정적 이유가 됐다. 벌초를 하러 간 사람들이 묘 주변에 아까시나무가 보이면 가장 먼저 베어내야 할 나무로 여겼다. 산을 덮었던 나무가 어느 순간 기피 대상이 된 것이다.

대청호 변인 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와정마을 뒷산에 분홍색 아까시나무 꽃이 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 옥천군 제공
대청호 변인 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와정마을 뒷산에 분홍색 아까시나무 꽃이 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 옥천군 제공

하지만 아까시나무 뿌리는 깊게 파고드는 쪽보다 옆으로 퍼지는 성질이 강하다.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약한 낭설에 가깝다. 오히려 뿌리가 지표 가까이 퍼지며 흙을 붙잡아 토양 유실을 줄이는 데 쓰였다는 설명이 더 타당하다.

“다른 나무를 죽인다”는 말도 아까시나무를 향한 오해를 키웠다. 번식력이 강해 빠르게 퍼지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까시나무를 해로운 나무로만 볼 수는 없다. 척박한 산을 먼저 덮은 뒤 숲이 짙어지면 점차 줄어드는 성질도 함께 봐야 한다.

그럼에도 아까시나무는 산림 정비와 수종 갱신 과정에서 먼저 베어야 할 나무로 취급되는 일이 많았다. 새로 심는 면적은 줄었고, 땔감으로 베어졌다. 묘지 주변에서는 낭설 때문에 잘려 나갔다. 한때 넓은 산지를 덮었던 아까시나무 숲은 한국에서 점차 줄어들었다.

흰 꽃과 꿀을 내어준 밀원수

아까시나무가 내어준 것은 흙뿐만이 아니다. 봄마다 피는 흰 꽃은 국내 양봉 농가에 중요한 밀원이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은 국내 양봉 산물의 약 70%가 아까시나무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아까시나무에 핀 꽃. / 국립생물과학관
아까시나무에 핀 꽃. / 국립생물과학관

아까시나무 꽃이 피는 기간은 길지 않다. 그 짧은 시기에 날씨가 맞지 않거나 꽃이 줄면 채밀량도 크게 줄 수 있다. 양봉 농가가 아까시나무 숲 보전과 조림을 꾸준히 요구해 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에게는 향기로운 봄꽃이지만, 양봉 농가에는 한 해 수확을 좌우하는 꽃이기도 하다.

꽃은 먹거리로도 쓰였다. 아까시나무 꽃을 튀겨 먹거나 술을 담그는 데 쓰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도로변이나 오염 우려가 있는 곳에서 딴 꽃은 피하는 편이 좋고, 농약 사용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아까시나무는 땔감, 밀원, 토양 회복 등 여러 자리에서 쓰였다. 이름은 잘못 불렸고, 산을 살린 뒤에는 낭설에 시달렸지만, 이 나무가 한국 산림과 사람들에게 내어준 것들은 적지 않다.

사라지는 아까시나무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아까시나무를 다시 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전처럼 산마다 대규모로 심는 방식은 지금의 산림 여건과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밀원수 조성이나 훼손지 복구, 산림 관리 차원에서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2026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 예측지도. /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2026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 예측지도. /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중요한 것은 아까시나무를 무조건 좋은 나무로 치켜세우거나, 반대로 무조건 베어내야 할 나무로 몰아가는 일이 아니다. 어느 땅에,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심고 관리할지 따져야 한다. 한때 민둥산을 덮었던 나무라는 과거만으로도 부족하고, 번식력이 강하다는 점만으로도 부족하다. 이 나무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 봐야 한다.

이름도 빼앗기고, 공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민둥산에 첫발을 내디뎌 다른 나무들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고, 때가 되자 서서히 물러난 나무. 5월 길가에서 흰 꽃향기를 풍기는 나무를 만난다면 잠깐 발걸음을 멈춰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