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귀신조차도...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한국인들만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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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민원 넣는 나라... 공적 시스템 신뢰의 유전자

AI 툴로 만든 사진.
AI 툴로 만든 사진.

'세계 유례 없는 한국인 특징'이란 게시물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최근 올라온 이 게시물은 지난 3월 이란 전쟁 여파로 쓰레기봉투 대란 우려가 번지며 사재기가 극성을 부렸을 당시 정필승 변호사가 유튜브 채널 '강성범TV'에 출연해 한 말을 소개한다.

당시 환경부 차관이 직접 나서 "재고가 충분하니 사재기하지 말라"고 공식 해명하자 소동이 잦아들었다. 정 변호사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국민이 국가 기관의 공식 발표를 믿고 곧바로 행동을 바꿨다는 것, 즉 한국인은 공적 시스템을 본능적으로 신뢰하는 민족이라는 얘기다. 정 변호사는 자신도 부랴부랴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봉투를 쟁여왔다고 웃음 섞인 고백을 하면서 "그게 바로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꺼낸 사례가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자기가 복수하는 게 아니라 사또한테 가서 민원을 넣어요. 전 세계 어디 전래동화 찾아보세요. 그런 게 있나. 일본 귀신, 중국 귀신은 '내가 억울하다, 가서 죽여버리겠다'예요. 한국 귀신들은 그게 아닙니다. 사또한테 가서 '제가 죽었는데요, 정말 억울하게 죽었거든요'라고 민원을 넣는다고요."

‘장화홍련전’의 줄거리를 들여다보면 정 변호사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평안북도 철산의 좌수 배무룡의 두 딸 장화와 홍련은 계모 허씨의 흉계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 허씨는 죽은 쥐의 가죽을 벗겨 장화가 낙태한 것처럼 꾸며 간음 누명을 씌웠고, 장화는 연못에 빠져 죽었다.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된 홍련도 같은 연못에서 뒤를 따랐다.

원한귀가 된 두 자매가 택한 방법이 흥미롭다. 허씨 모자를 직접 해치는 대신 새로 부임하는 철산 부사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민원 신청이다. 문제는 자매의 혼령을 마주한 사또들이 번번이 충격으로 급사했다는 것. 몇 명의 부사가 귀신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가자 철산 부사직은 기피 보직이 됐다.

그러던 중 담력이 강하기로 이름난 정동우가 자원해 철산 부사로 부임했다. 그 역시 처음엔 혼령을 보고 놀랐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두 자매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이튿날 관아 사람들이 또 사또가 죽었겠거니 여기고 상여까지 준비해왔다가 멀쩡히 살아있는 정동우를 보고 기겁했다는 대목이 소설의 명장면 중 하나다.

정동우는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허씨의 장남 장쇠는 "어머니가 장화를 죽이라고 해서 죽였다"고 실토했고, 정동우는 의원을 불러 장화가 임신한 적이 없음을 의학적으로 입증해 누명을 벗겼다. 정동우는 허씨 모자를 독단으로 처결하지 않고 감사에게 보고했으며, 감사는 다시 국왕에게 상주했다. 국왕은 허씨에게 장살형을, 장쇠에게 교살형을 내렸다. 일부 판본에서는 허씨가 한양으로 압송돼 조리돌림 끝에 능지형에 처해지고, 시신은 전국 팔도에 보내져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됐다고 전한다.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1656년(조선 효종 7년) 평안도 철산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소설 속 정동우의 실제 인물은 전동흘(全東屹)이다.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 출신에 효종의 신임을 받은 무인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한 뒤 총융사·포도대장·삼도수군통제사 등 군부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705년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화홍련전’이 세계 여느 나라의 귀신 설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복수의 주체'다. 원한을 가진 존재가 직접 복수에 나서지 않고 공적 시스템에 문제 해결을 위임한다. 귀신조차 법과 행정 절차를 신뢰하는 서사다. 이는 조선이 유교적 법치 질서를 기반으로 한 관료제 국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격쟁이나 신문고 제도를 통해 국가에 구제를 요청할 수 있었던 전통이 설화에까지 투영됐던 셈이다. 뭔가 불합리하다 싶으면 일단 신고부터 하는 습성은 어쩌면 수백 년 된 유전자인지도 모른다.

정필승 변호사가 민원이 한국인의 특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 '강성범TV'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