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병 특집②] “남들보다 일찍 겪었을 뿐”…간병 11년 차 청년이 나아가는 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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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뇌병변 장애 판정, 23살부터 시작된 직접 간병 생활
건축학 자퇴 후 영상 제작자로 전환, '간병 콘텐츠' 주목받아
간병 인식 개선 필요…'기초 돌봄 교육' 보편화 제안도
[가족간병 특집①]에서 이어집니다.

"엄마 때문에 인생을 이렇게 살았다고 원망하기보다 엄마 덕분에 멋있게 살다 죽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최종 꿈입니다."
93년생 조범희(34) 씨는 올해로 11년째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곁에서 돌보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간병 생활은 범희 씨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돌봄에 관해 아는 게 없어 주변에 귀동냥했던 20대 초반의 청년은 이제 비슷한 고민을 겪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만의 꿈을 일궈내고 있다. 유튜브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돌봄 생활을 공유하고 있는 범희 씨와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물셋 청년에게 펼쳐진 24시 간병 생활

범희 씨의 어머니는 심한 뇌병변 장애 1급 상태다. 사지 마비와 의식 장애 판정을 받았다. TV를 보고 눈으로 소통할 수 있지만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2년 6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마친 뒤부터는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고 있다. 낮에는 간병사의 도움을 받고 밤에는 범희 씨와 가족들이 돌보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 어머니는 어쩌다 쓰러지셨나.
"2015년에 벌어진 일이다. 군대 전역 후 복학하기에 앞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가 오전부터 전화를 주셨길래 조짐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아프셨던 분은 아니시다. 다만 군대에 있을 무렵부터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말씀하셨단다.
(쓰러지신 당일에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실랑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외부에 나가 계셨고, 어머니가 일을 도우러 가게를 지키고 계셨는데 한 손님과 언성이 높아지신 것 같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그분이 놀라서 신고하지 않고 가셨다. 나중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발견하고 그제야 병원에 모셨다."
- 매우 놀랐을 것 같은데 당시 심경이 어땠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의식이 있는 상태가 아니셨다. 수술이 진행되는데 현실감이 없었다. 누나는 울었고 아버지도 많이 힘들어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수술하면 나아지시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6개월간의 대학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어머니를 재활병원으로 모시면서는 24시간 옆에서 직접 돌봤다."
- 가족 구성원 중 특별히 간병을 담당한 이유가 있나?
"당시 대학교 휴학 상태였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셔야 했고, 누나 역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또, 대학병원에서 반년 동안 지내면서 간병사분 대신 직접 간병하면 어머니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휴학계를 내고 재활병원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했다."
- 간병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초반에는 나이가 어려서 에너지가 많았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6인실에서 공용 생활을 해야 하니 새벽 4시부터 홀로 일어나 어머니를 씻겨드릴 준비를 했다.
그러다 재활병원에 들어가 일 년 정도 지내면서 '어머니가 더 이상 예전과 같아지실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인 고민도 들었다. 주변 친구들은 복학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렇지만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어머니는 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평생 간병해 주셨을 것 같았다. 어머니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 집으로 모시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재활병원에서 평생 동안 24시간 어머니 옆에 있을 수는 없었다. 계획을 세워야 했다. 다만 이제 와서 요양 병원으로 모시는 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야 했다.
문제는 어머니가 목관을 뚫고 콧줄로 식사를 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집으로 모시려면 이 두 가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조 의료 기구가 없어야 집에서도 생활이 가능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병원 측에서 (이런 결정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조율을 해갔다.
6개월간 훈련 과정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목으로도 호흡하셨는데, 목관의 뚜껑을 1초, 3초씩 닫으면서 시간을 늘려갔다. 목관을 막으니 콧줄이 아닌 입으로 식사하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입을 벌리는 것부터 훈련했다. 식도로 쉽게 넘어가지 않는 꾸덕꾸덕한 요플레부터 시작해 가장 고차원적인 기능이 필요한 물 삼킴까지 하나씩 단계를 높이며 마침내 콧줄까지 제거했다. 주변에서 안 될 거라고 했지만 어머니랑 같이 열심히 훈련한 과정이 지금도 가장 인상 깊다."
- 가정 돌봄에선 어떤 점이 어려운가.
"어머니가 주무시지 못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보통 밤에는 누나와 며칠씩 교대하며 어머니 곁을 지킨다. 내가 3일 동안 어머니와 자면 다음 3일은 누나가 자는 식이다. 밤에는 어머니가 종종 중간에 깨신다. 또 자세 변경도 이따금 해드려야 한다. 간병사분에게 이런 일을 맡기기 어려워 직접 하고 있다.
그런데 한두 달 정도 어머니가 내내 못 주무신 적이 있다. 옆에서 지켜봐야 하니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아마 많은 보호자가 환자 수면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 간병 과정에서 가족 갈등은 없었나.
"다행히 나를 비롯해 어머니, 아버지, 누나 네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갔다. 갈등이 한꺼번에 닥치면 너무 힘들 것이다. 어느 관계가 삐걱거릴 땐 나머지 바퀴들이 잘 굴러가서 지탱이 됐다.
물론 간병 초반에는 개인적인 서운함과 불만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누나는 왜 회사를 그만두지 않나'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각자 선택하고 그걸 존중하자. 그 선택에 최선만 다하자'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 말을 이해한다. 누나가 당시 눈치를 보고 자신이 원치 않는 선택을 했다면 상황이 오히려 좋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 자퇴 후 찾아온 새로운 꿈
범희 씨는 2017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간병사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대학 복학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병과 생업을 병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찾아왔다. 범희 씨는 자퇴를 결정했다. 영상 제작자로서 콘텐츠를 만들며 자신만의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 지난해 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 간병 영상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간병사분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복학해서도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중단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건축 분야는 업무 프로젝트에 따라 지방 이동이 잦다. '과연 취업 후 일을 하면서 어머니를 간병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그때 한 친구가 편집을 알려줄 테니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고등학교 때 PD를 꿈꾼 적도 있었다. 특히 편집은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일을 시작하면서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영상 제작 분야에 나서게 됐다.
간병 10년 차였던 지난해에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루는 나영석 PD님의 유튜브를 보던 중이었는데, 다른 PD들은 10년 동안 차곡차곡 배워서 굵직한 프로그램을 메인으로 맡더라. '나는 그동안 뭘 했을까' 싶은 한탄이 나왔다.
이때 주변에서도 잘한다고 인정하는 간병 경험을 떠올렸다. 실제로 이 경험을 영상화하라는 권유도 받아봤다. 한번 시작해 보자 싶었다. 간병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자 많은 분이 봐주셨다. 자존감이 엄청 올라갔다. 이제 사회에서도 '간병'과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점점 주목받고 있구나 싶었다."
-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사연이 있나?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젊은 친구들의 연락이 많이 온다. 20대 초반인데 직접 돌봄을 시작하는 게 맞을지 묻기도 한다. 대답까지 며칠을 고민한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지 않나. 다만, 어떤 선택이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고 무엇보다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영상을 만들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간병과 돌봄이 당연한 사회가 오고 있다. 나는 그걸 조금 일찍 겪은 것뿐이다. 부모님은 대부분 언젠가 아프거나 노쇠하신다. 그럼에도 간병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비슷한 돌봄이지만 육아는 밝게 생각하는 반면 간병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겪은 간병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며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고 싶다."

"아는 게 없어 어려웠다"…'기초 돌봄 교육' 보편화 필요
- 간병에 정부 지원을 받은 부분이 있나?
"하루 4시간씩 간병사 지원을 받고 있다. 무료로 심리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좋은 경험이 돼서 최근 자퇴했던 학교에 '심리상담학과'로 사이버 대학 3학년에 편입했다. 간병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돌봄과 가족 갈등 문제를 상담하면 좋을 것 같다."
- 제도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안은 무엇인가.
"우선 기초 돌봄 교육의 보편화가 필요하다. 사회에서 돌봄과 간병에 관한 교육을 기본적으로 제공하면 좋겠다. 처음 간병에 나섰을 때 아는 게 없어 어려웠다. 간병 커뮤니티도 많지 않아 주변분이나 간병사분께 보고 배웠다. 기본적인 돌봄 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간병에 대한 사회 인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일자리도 창출된다고 본다. 오랫동안 간병을 경험한 보호자가 직접 교육자로 나선다면, 현실적인 노하우도 전하고 경제 활동도 지원받게 된다.
아울러 많은 보호자가 원하는 것은 경제적 지원일 거라고 본다. 간병은 결국 돈으로 굴러간다. 돈이 있어야 보호자에게 시간이 생기고 심리적인 여유도 생긴다. 관련해서 섬세한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간병과 돌봄을 말하는 사회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식 개선이 그 시작일 것 같다. 얼마 전 서점에 간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간병 관련 도서가 주로 에세이 분야에 치중됐더라. 정보 위주의 책은 앞서 고령화사회에 들어간 일본 서적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정책적으로, 문화·사회적으로 간병과 시니어 케어 등에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