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병원 이승헌 교수, 란셋 실린 심장연구로 세계 의학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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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착 환자의 미세혈관 기능장애, 예상보다 2배 이상 높다
심장 진단·치료 기준을 바꾼 국내 연구의 도전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전남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승헌 교수가 참여한 심혈관 질환 임상연구가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 학술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국 ‘란셋(The Lancet)’에 게재되며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관상동맥 협착 환자에게서도 미세혈관 기능장애가 예상보다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규명해, 허혈성 심장질환 진단과 치료의 기준을 다시 써야 할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란셋에 연구 성과를 올리며 2년 연속 세계적 의학 학술지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란셋 게재와 국제학회 발표 동시에 성과
이번 연구는 논문 게재에 그치지 않고 국제 심장학계 주요 무대에서도 동시에 조명을 받았다. 이승헌 교수는 지난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심장중재학회(EuroPCR) 연례 학술대회에서 해당 연구를 직접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학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임상연구(Late-Breaking Clinical Trial)’로 선정돼 세계 각국의 심장질환 전문가들 앞에서 공개됐다. 세계 최고 수준 학술지 게재와 권위 있는 국제학회 발표가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은 이번 연구의 학문적 완성도와 국제적 파급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진다.
란셋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표적 의학 학술지로, 임상적 가치와 과학적 신뢰성이 높은 연구만을 엄격하게 선별해 게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학술지에 국내 지방 거점 국립대병원 연구진이 참여한 연구가 2년 연속 실렸다는 것은 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의 연구 역량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시사하는 상징적 성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논문 한 편의 성과를 넘어, 병원 차원의 연구 경쟁력과 임상 인프라가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협착 없을 때만 문제” 통념 뒤집은 결과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의학계의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 결과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허혈성 심장질환은 주로 심장 표면의 굵은 혈관, 즉 심외막 관상동맥의 협착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 미세혈관 기능장애는 큰 혈관의 뚜렷한 협착이 없는 환자에게서 주로 의심되는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다시 말해, 관상동맥이 좁아진 환자에게서는 상대적으로 미세혈관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진료 흐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런 인식을 크게 흔들었다. 연구팀은 2022년 4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국내 7개 주요 의료기관이 참여한 다기관 FLOW-CMD 레지스트리를 바탕으로 총 1,003명의 환자를 전향적으로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관상동맥 협착이 없는 환자군에서 미세혈관 기능장애 비율은 9.3%였던 반면, 오히려 협착이 동반된 환자군에서는 21.5%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는 미세혈관 기능장애가 협착이 없는 일부 환자의 문제라는 기존 인식을 넘어, 협착 환자에서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할 중요한 위험 인자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예후 악화 위험 1.91배…치료 패러다임 변화 예고
연구의 가치는 유병률 확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연구팀이 약 2년간 환자들을 추적 관찰한 결과, 미세혈관 기능장애를 동반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 심근경색,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 같은 주요 심혈관 사건이 발생할 위험이 약 1.91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미세혈관 기능장애가 단순한 검사상의 이상 소견이 아니라, 실제 환자의 생존과 예후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요인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결과는 앞으로의 진료 가이드라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의 글로벌 권고안은 대체로 관상동맥 협착이 뚜렷하지 않은 환자를 중심으로 미세혈관 기능 평가를 고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협착이 있는 환자에게도 미세혈관 기능장애가 상당한 비율로 존재하며, 예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줬다. 결국 향후에는 협착 환자에게서도 미세혈관 기능 검사를 더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국제 진료지침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연구가 임상현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단순한 학술적 발견을 넘어 실제 치료 전략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기관 연구 뒷받침한 병원 연구 인프라
이번 성과의 또 다른 의미는 대규모 다기관 전향적 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인프라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이다. 전남대병원 측은 의생명연구원 임상연구코디네이터(CRC)들이 연구 기획과 자료 관리, 현장 운영 전반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임상연구는 환자 등록부터 데이터 표준화, 추적 관리까지 복잡한 절차가 뒤따르기 때문에,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연구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이승헌 교수는 이번 성과에 대해 “개인의 영예라기보다 순환기내과 교수진과 중재시술팀 전체가 함께 만든 결실”이라는 취지로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미국 듀크대학교 연수 과정에서 쌓고 있는 글로벌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환자 치료와 삶의 질 개선에 실제 도움이 되는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는 단지 논문 실적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2년 연속 란셋 등재…전남대병원 연구역량 입증
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 중재시술팀은 복잡 관상동맥 질환과 급성 심근경색, 심혈관 생리학적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를 축적해 왔다. 지난해 안영근·김민철 교수팀의 연구에 이어 올해 이승헌 교수팀의 논문까지 란셋에 실리면서, 전남대병원은 2년 연속 세계 최고 수준 학술지에 이름을 올리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는 특정 개인의 우수성에 국한된 성과가 아니라 병원 전체의 연구문화와 임상 역량, 협업 시스템이 함께 만든 결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는 국내 심혈관 연구의 국제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지방 거점 국립대병원도 충분히 세계 의학계의 기준을 바꾸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한 상징적 성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환자의 예후와 직결되는 실제 임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와 의료 현장 적용 가능성을 동시에 갖췄다. 전남대병원이 이번 성과를 발판으로 연구중심병원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지 의료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