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13년…500원에 산 예명으로 마흔둘에 신인상 5개 휩쓴 한국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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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말금, 재연배우 시절부터 '모자무싸' 고혜진이 되기까지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지난 24일 최종회를 끝으로 종영한 가운데, 영화사 대표 고혜진을 연기한 배우 강말금을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허세와 자격지심으로 휘청이는 사람들 사이에 끝까지 두 발로 현실을 버티며 영화판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다독이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인물 고혜진. 강말금은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흔들림 없는 눈빛만으로 매회 시청자들의 막힌 속을 뚫어줬고,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고혜진 앓이'를 호소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속 고혜진은 영화로는 먹고살 수 없을 것 같아 한때 영화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다. 놀랍게도 이 설정은 강말금의 실제 삶과 꽤 닮아 있다.
강말금의 본명은 강수혜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6년을 다녔다. 배우의 꿈을 안고만 사는 나날이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었고, 서른 살이 되던 2007년 사표를 내고 서울 대학로로 올라왔다.
그렇게 시작한 극단 생활은 월급이 없는 삶이었다. 고정 수입이 없으니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야 했고, 강말금이 택한 일이 KBS 예능 '스펀지2.0' 재연 코너였다. 처음에는 짧게 얼굴을 비추는 수준이었지만, 연기를 눈여겨본 제작진이 다음 편에는 아예 주인공으로 불렀다.

강말금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극단에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못 받았는데 TV 화면에 나오니 기뻤다"고 했고,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이건 되는구나 싶었다"고도 했다.
그 작은 확신 하나를 쥐고 오디션 공고를 뒤지며 단편영화 현장을 찾아다녔다. 1년 동안 단편 10편을 소화했다. 돌아보면 버티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던 시간이었다. 강말금이 스스로 "일기장에 '나는 망했어'라고 매일 썼다"고 밝힌 것도 그 무렵이다.
그렇게 쌓아온 단편들이 결국 문을 열었다. 김초희 감독이 강말금의 단편을 보고 직접 연락을 해왔고, 2020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삶이 통째로 뒤집힌 영화 프로듀서를 연기하며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영화의 주인공 자리에 섰다.

그해 강말금은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들꽃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까지 신인여우상 5개를 모조리 쓸어담았다. 강말금은 시상대에서 스스로를 "43살 중고 신인"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강말금이라는 이름은 500원짜리 예명이다. 대학 시절 과에서 시를 가장 잘 쓰던 친구의 필명이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단돈 500원을 건네고 사들였다. 받침이 많아 포스터에 새겨졌을 때 꽉 차 보이는 느낌이 좋았다고 했고, 본명보다 단단하고 강한 인상이 든다는 것도 이유였다. 그 500원짜리 이름이 결국 청룡영화상 트로피 위에 올라갔다.

이번 '모자무싸' 종영 인터뷰에서 강말금은 자신도 무가치함과 싸운 시절이 있었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드라마 속 자격지심으로 주변을 상처 입히는 황동만(구교환),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천진한 척 방어하는 박정민이 모두 30대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강말금은 "그때는 매일이 나 자신과의 전쟁이었다"고 덧붙였다. 지금 화면에서 가장 단단한 어른을 연기하는 배우가, 실제로는 그 드라마에서 가장 흔들리는 인물들과 가장 닮은 시절을 보냈다는 고백이었다.
한편 강말금의 차기작은 ENA 드라마 '혹하는 로맨스'로 확정됐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 '옷소매 붉은 끝동', '나쁜엄마', '경성크리처', '폭싹 속았수다', 그리고 이번 '모자무싸'까지. 서른에 직장을 버리고 대학로로 올라와 500원짜리 예명 하나 달랑 들고 버텨온 배우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