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산골 아이들의 꼬마 영화, 포화 속 우크라이나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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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초 전교생이 빚어낸 장편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작 전격 초청
"영화제 기간만이라도 휴전을" 유엔 서한 발송 예고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전라남도 화순의 작은 시골 마을 초등학생들이 고사리손으로 직접 빚어낸 한 편의 영화가 포연이 자욱한 우크라이나 땅에 평화의 홀씨를 띄워 보낸다.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무당벌레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무당벌레

화순 청풍초등학교 전교생이 참여해 만든 장편 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가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할 예정이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영화 제작사 '무당벌레' 측은 청풍초 학생들이 박기복 감독의 지도 아래 완성한 이 작품이 다가오는 9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리는 '2026 ICJ 국제영화상(ICJ Awards)'에 공식 초청받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발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뜻깊은 영화제의 개막 프로그램 상영작으로 당당히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오는 9월 12일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인 우즈호로드(Uzhhorod) 성에서 열리는 레드카펫 행사에서도 공식 상영되며 축제의 화려한 시작을 알릴 예정이다.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우크라이나 국제청소년영화제는 참혹한 포성이 멈추지 않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미래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평화의 가치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된 숭고한 문화 행사다. 행사가 열리는 우즈호로드는 상대적으로 포화에서 비켜나 있는 안전지대로 꼽히지만, 최근 양국 간의 교전 양상이 다시 격렬해짐에 따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장소 변경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청풍초 꼬마 영화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만이라도 무력 충돌이 멈추고 평화로운 축제가 진행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조만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및 주요 국제 기구에 공식 휴전 촉구 서한을 발송하기로 뜻을 모았다. 산골 아이들의 순수한 평화 메시지가 국제사회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가 모이는 대목이다.

바다 건너 전해질 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는 화순 지역의 잊혀가는 폐광촌을 아스라한 배경으로 삼은 가족 영화다. 전라남도교육청과 화순군의 적극적인 후원을 마중물 삼아, 청풍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모든 학생이 감독부터 주연, 조연 배우, 그리고 현장 스태프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과거 화순 경제의 심장이었던 탄광의 묵직한 역사와 칠흑 같은 막장에서 청춘을 바친 광부들의 숭고한 노동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고 이를 생생한 필름으로 기록해 냈다.
화순 청풍초등학교 전교생이 참여해 만든 장편 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를 촬영하고 있는 제작진. / 무당벌레
화순 청풍초등학교 전교생이 참여해 만든 장편 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를 촬영하고 있는 제작진. / 무당벌레

특히 이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김대중 교육감 후보가 1년 전 아이들과 했던 "영화에 꼭 출연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카메오로 깜짝 등장해 열연을 펼쳤고, '제2회 전라남도 작은학교 영화·영상제'에서 영예의 수상을 안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화순시네마에서 열린 무료 상영회 당시에는 극장을 가득 메운 지역 주민들의 뜨거운 눈물과 기립 박수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지휘한 박기복 감독은 "단순한 영상 제작을 넘어, 아이들이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의 아린 역사와 광부들의 치열했던 삶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영화라는 매체로 영원히 남기기를 바랐다"며, "우리 시골 마을 꼬마들의 순수한 진심이 담긴 이 영상이 매일 두려움에 떠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작은 온기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가슴 벅찬 소회를 전했다.

직접 슬레이트를 치고 연기를 펼쳤던 청풍초의 한 학생 역시 "촬영장 곳곳을 누비며 옛날 광부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소중하게 일하셨는지 깨닫게 됐다"면서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먼 외국 친구들에게도 보여진다고 하니 믿기지 않고 정말 자랑스럽다"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편, 국경을 뛰어넘은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의 훈훈한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글로벌 영화 교육 연대 프로젝트인 'Cinema in Schools'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영화제 상영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 전역의 100여 개 현지 학교 교실에서도 상영될 예정이어서, K-에듀와 예술이 결합된 평화의 메시지가 더욱 널리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