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묘지 찾은 이재명 대통령 부부, 끝내 눈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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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맞아 광주 찾은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광주를 찾아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 항쟁 증언자를 직접 만났다. 이 대통령 부부는 역사적 현장 곳곳에서 당시의 아픔을 마주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5·18, 광주행
이 대통령 부부는 이날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뒤, 이날 정식 개관한 옛 전남도청으로 발길을 옮겼다. 김민석 국무총리,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등도 함께 했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최후 진압을 앞두고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항쟁의 현장이다. 200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성 과정에서 훼손 우려가 제기된 이후 광주·전남 시민사회와 오월단체의 복원 요구가 계속됐고, 복원추진단의 작업 끝에 본관 등 6개 건물이 전시·추모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김혜경 여사, 소설 '소년이 온다' 속 어머니와 함께 입장
김 여사는 입장부터 남다른 동행을 택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모티브가 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의 손을 잡고 나란히 들어섰다. 이후 관람 내내 김 여사는 김길자 씨의 팔을 붙잡으며 그 곁을 지켰다.
이 대통령은 본관 1층 서무과부터 둘러봤다. 당시 학생수습대책위원회와 시민군 상황실로 쓰였던 공간으로, 건물 내부에는 계엄군 진압 당시 남겨진 탄흔 의심 흔적과 실제 탄두가 확인된 지점이 표시돼 있었다. 이영희 해설사는 "이곳은 광주시민들이 남으면 죽을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지켜낸 최후의 항쟁지"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두 손을 모은 채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지"…46년 만의 만남
가장 뭉클한 장면은 방송실에서 연출됐다. 이 대통령은 서무과 바로 옆 방송실에서 19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마지막 가두방송을 했던 박영순(67) 씨와 마주했다.
당시 21세 대학생이었던 박 씨는 계엄군이 도청을 에워싸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라디오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이 대통령을 보자마자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며 울먹였다. 이어 "계엄군이 도청 안을 다 에워쌌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떨렸다.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박 씨가 직접 전한 방송 내용은 이렇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학생,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 20분 동안 이 방송을 이어간 뒤 계엄군이 가장 먼저 방송실로 들이닥쳤고, 박 씨는 구타를 당한 채 군보안대로 끌려가 고문과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는 "그 이후 폭도와 양아치라는 말을 들으며 2년 동안 견뎠고,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박 씨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어깨를 토닥이며 곁에 있었다. 박 씨가 직접 쓴 편지를 건네며 "힘드시더라도 직접 꼭 읽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그러겠다"며 편지를 받아 즉석에서 읽어 내려갔다. 박 씨가 다시 눈물을 쏟자 이 대통령은 그를 꼭 끌어안으며 "제가 12월 3일에 이 방송을 따라 똑같이 했다. 힘내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로 향하며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국회로 모여달라고 호소했던 일을 가리킨 것이다. 이른바 '빛의 혁명'으로 불리는 12·3 비상계엄 사태 극복의 뿌리에 5·18 민주화운동이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한"…유가족과 손 맞잡아
전시실에서는 또 다른 만남이 이어졌다. 1980년 5월 행방불명된 아들의 유해를 2002년 DNA 검사를 통해 22년 만에 찾아낸 이근례 씨가 이 대통령이 들어서자 눈물을 흘렸고, 관람이 끝날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해설사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한이 남았고, 그 한을 노래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 씨의 손을 잡고 조용히 다독였다.
이 대통령 부부는 옛 전남도청 경찰국 민원실에 마련된 개관 기념 특별전 《5·18 광주, 끝나지 않은 시간》도 관람했다. 전시는 '정보를 남기다', '되살려 간직하다', '잊지 않고 되새기다' 등 3부로 구성됐으며, 외신 기사 스크랩과 AP통신 텔렉스 원고, '민주수호 전남도민 총궐기문', '민주시민회보', 각종 성명서 등 5·18 당시 기록물이 전시됐다.
해설사는 "외신 자료에 비해 국내 기사 자료가 별로 없다"며 "국내 기자들은 보도하고 싶었지만 보도검열관실 등 권력에 의한 검열 때문에 국민들에게 5·18 상황을 전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 부부는 시민군 투사회보와 외신기자 기록물, 희생자와 유가족의 기억이 담긴 자료를 차례로 살폈다.
마지막 행선지는 상무관이었다. 이 대통령과 김 여사는 흰색 장갑을 착용한 뒤 국화를 들고 희생자들 앞에 헌화했다. 상무관 정면에는 당시 관을 묶었던 광목천이 걸려 있었고, 단상에는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희생과 용기를, 그리고 당신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 대통령, 기념사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약속…"오월 영령이 12월 3일 밤 산 자를 구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최선을 다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4·19 혁명과 부마항쟁,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은 6월 항쟁을 거쳐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졌다"며 "5·18 민주화운동의 이념을 대한민국 헌법 위에 당당하게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모든 정치권의 약속인 만큼 여야의 초당적 협력과 결단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 6개 정당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담은 헌법개정안 본회의 처리를 시도했으나, 국민의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지난 8일 표결이 무산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또 "'5·18 민주유공자 직권등록 제도'를 마련해 단 한 분의 희생도 놓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옛 전남도청을 두고는 "세계 시민들이 함께 배우고 기억하는 K 민주주의의 성지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5·18과 12·3의 연결 고리도 재차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다시 태어난 오월의 영령들이 2024년 12월 3일 밤, 오늘의 산 자들을 구했다"며 "19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처럼 2024년 위대한 대한 국민도 무장한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80년 광주가 온 힘을 끌어모아 꽃피웠던 '대동 세상'은 2024년 '빛의 혁명'으로 부활했다"고 했다.
지역 현안으로는 전남·광주 행정통합을 거론하며 "광주와 전남이 함께 맞잡은 손이 상생과 공존의 새로운 이정표로 우뚝 서고, 균형발전이라는 희망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갈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