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의 품격, 전통문화의 미래를 열다…장성 필암서원, ‘K-선비문화’ 중심지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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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史)랑방콘서트 성황 속 문화·예술 거점 가능성 확인
하반기 ‘풍류 다이닝’·과거시험 재현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기대

오랜 세월 선비정신과 학문의 가치를 간직해 온 필암서원이 이제는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 사람들이 직접 찾고 체험하며 공감하는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장성군은 지난 5월 9일 설민석 강사를 초청해 진행한 ‘역사토크 사(史)랑방콘서트’를 시작으로, 올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하며 필암서원을 ‘K-선비문화’의 중심지로 키워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번 ‘사랑방콘서트’는 세계유산 필암서원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능성을 널리 알린 첫 무대이자, 장성군이 추진하는 ‘세계유산 필암서원 K-선비문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특히 행사 당일에는 예상 인원을 크게 웃도는 400여 명의 방문객이 필암서원을 찾으며 큰 관심을 모았다. 이는 필암서원이 단순히 조용히 둘러보는 유적지를 넘어, 역사와 문화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콘텐츠를 통해 대중과 충분히 호흡할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에서 돋보인 것은 콘텐츠 자체의 힘이었다. 강연에 나선 설민석 강사는 필암서원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선생의 삶과 정신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고도 깊이 있게 풀어냈다. 그는 김인후 선생과 인종 임금 사이의 각별한 우정, 그리고 인종의 승하 이후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하게 된 사연, 그 안에 담긴 충절과 지조의 의미를 약 1시간 동안 몰입감 있게 전달했다. 자칫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살아 있는 서사로 재구성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필암서원의 역사적 배경과 인물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강연이 일방적인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설민석 강사는 중간중간 어린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도 함께 집중하며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는 필암서원이 특정 세대만의 공간이 아니라,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역사와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세계유산이 지닌 가치가 보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대 간 공감과 소통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행사의 성공에는 세심한 공간 구성도 한몫했다. 야외 잔디밭에는 붓글씨 체험, 장명루 만들기, 유생복 입기, 전통놀이 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돼 방문객들이 강연 전후로 자연스럽게 전통문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무대를 바라보는 관람형 행사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필암서원이라는 공간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가족 단위 관람객과 어린이들에게 특히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전통문화 콘텐츠의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관객 동선을 고려한 현장 운영 역시 호평을 이끌었다. 서원 경내 안쪽에는 주무대를 조성해 집중도 높은 관람 환경을 만들었고, 늦게 도착한 방문객들을 위해 입구 쪽에는 별도 스크린과 추가 좌석을 설치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 없이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말을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주차 공간 확보와 안내 인력 배치 등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부분까지 꼼꼼히 신경 쓴 점도 편안한 관람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전통문화 행사의 품격은 프로그램 내용뿐 아니라 현장 운영의 세심함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이번 ‘사랑방콘서트’는 이름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선비들이 담소를 나누던 공간인 ‘사랑방’의 정취에 역사의 의미를 더한 ‘사(史)랑방콘서트’라는 명칭은, 필암서원이 지닌 전통적 상징성과 현대적인 문화콘텐츠 감각을 동시에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성군은 이번 행사의 호응이 매우 컸던 만큼, 하반기에도 사랑방콘서트를 이어가며 필암서원을 찾는 이들에게 보다 다양한 역사문화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더욱 다채롭고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이 예고돼 기대를 모은다. 먼저 필암서원의 고즈넉한 밤 풍경을 배경으로 선비들의 밥상을 체험할 수 있는 ‘풍류 다이닝’이 운영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식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통 공간에서 옛 선비들의 음식문화와 정취를 함께 체험하는 감성형 콘텐츠로, 필암서원만의 독창적인 야간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요한 서원의 밤과 전통 한 상이 어우러지는 경험은 방문객들에게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기억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선비문화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별빛서원 풍류 아카데미’도 마련된다. 이 프로그램은 단발성 체험을 넘어, 서원과 선비정신, 전통문화의 가치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히 ‘보는 문화유산’에서 그치지 않고 ‘배우고 공감하는 문화유산’으로 필암서원의 역할을 확장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문불여장성 과거시험 재현행사’도 개최될 예정이다. 유생이 되어 과거를 치르고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에게는 색다른 역사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람객들에게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불여장성’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장성은 예로부터 학문과 문풍이 융성했던 고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행사는 그러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장성군은 오프라인 행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필암서원의 가치와 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축적·확산하기 위한 기반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앞으로 필암서원 대표 누리집을 제작하고, 관련 고문서를 디지털 정보로 전환해 ‘선비문화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세계유산의 역사적 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교육과 연구, 관광 콘텐츠 활용 가능성까지 넓히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문화유산의 현대적 활용과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다.
심우정 장성군수 권한대행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선비문화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이 올해 빛을 발하고 있다”며 “세계 속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K-선비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필암서원을 단순히 지역의 자랑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와 품격을 국내외에 알리는 대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한편 장성 필암서원은 1590년, 인종 승하 이후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한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덕과 굳은 지조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이후 오랜 세월 교육과 제향의 공간으로 기능해왔으며,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전남 지역의 유일한 세계유산 서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까지 고루 갖춘 필암서원이 이제는 전통을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과 이야기가 모이는 문화예술의 요람으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이번 ‘사랑방콘서트’의 성공은 그 변화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세계유산의 가치를 대중과 나누고, 선비문화를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내며, 지역의 정체성을 새로운 콘텐츠로 확장하는 장성군의 시도가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장성 필암서원이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세계에 알리는 진정한 ‘K-선비문화 중심지’로 우뚝 설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