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긴급조정권 발동해 삼성전자 노조 총파업 강제로 저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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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아직 발동 결정할 단계 아냐”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정부 중재에도 불구하고 사후조정에서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오는 21일 총파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총파업이 이뤄지면 반도체 생산이 전면 중단되고 최대 100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파업을 강제 중단시킬 수 있는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 정부 내부까지 삼각 충돌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 안에서도 엇박자
긴급조정권 논란에 불을 댕긴 것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페이스북 게시물이다. 김 장관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삼성전자 총파업 예고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며 "우리 경제에서 삼성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삼성전자는 국내 GDP 대비 매출 비중 12.5%, 고용 인원 12만9000여명에 달하는 국가대표 기업"이라고 전제한 뒤 "산업부 장관으로서는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투자의 '속도'와 '규모'로 경쟁하는 승자독식 산업"이라며 "1~2년 단위로 공정을 혁신해야 하고, 팹(Fab) 1개 건설에 6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장 정지 시 하루 최대 1조원의 생산 차질이 예상되고, 현재 가공 중인 웨이퍼 전량이 손상된다면 최대 100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신뢰 저하 등 무형의 국가적 손실이 더 우려된다"고 밝혔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이미 삼성전자 생산 차질 시 한국의 글로벌 파트너 위상이 훼손된다고 경고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문제는 긴급조정권이 법적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권한이라는 데 있다. 주무 부처 장관이 아닌 산업부 장관이 먼저 카드를 꺼낸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는 이날 브리핑에서 진화에 나섰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아직까지 그걸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노사간 협의가 잘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부 장관의 발언이 청와대와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재정경제부 역할, 산업부 역할, 노동부 역할을 장관으로서 각자 하고 있는 것이고, 어제 발언은 산업부 장관으로서 할 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바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며 "삼성전자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이 엄청나게 크지 않느냐. 파업 같은 상황이 오지 않도록 상당한 우려와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긴급조정권은 검토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민주주의는 대화의 힘을 믿는 것이다. 노동자 없는 기업 없고 회사 망하라고 설립된 노조 없다"며 "내 경험으로 파업만큼 어려운 것은 교섭이었다. 파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결국 교섭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 장관이 노동계와의 관계를 의식해 신중론을 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등은 파업 현실화 시 성장·수출·금융시장 전반에 상당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으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OPI 제도 개편이 핵심 쟁점
정부가 긴급조정권까지 거론하며 나선 것은 노사 협상이 사실상 모든 절차를 소진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삼성전자 과반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와 사측은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사후조정 협상을 이어갔다. 1차 회의는 11시간30분, 2차 회의는 자정을 넘겨 새벽 3시까지 계속됐다. 이틀간 협상 시간이 28시간을 넘겼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새벽 3시쯤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조정안을 요청했고 약 12시간 가까이 기다려 나온 결과였지만 오히려 퇴보한 안건이었다"며 공식 결렬을 선언했다. 그는 "조정안엔 성과급 투명화 내용은 없고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만 담겼다"며 "성과급 상한 50%도 그대로 유지됐다"고 밝혔다.
핵심 쟁점은 OPI 제도의 개편 방식과 명문화 여부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기존 OPI 상한(50%)을 폐지하는 한편 이를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 직원 1인당 약 6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측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일정 조건 달성 시 추가 재원을 활용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후퇴한 안"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 결렬 이후 사측은 전날 노조에 자율 협상을 제안하는 공문을 발송했고, 중노위도 16일 사후조정 재개를 공식 요청했다. 노조는 성과급 투명화·상한 폐지·제도화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며 전영현 대표이사의 직접 답변을 이날 오전 10시까지 요구했다. 이에 전영현 부회장은 이날 오후 김용관 경영전략총괄 사장,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사장 등 경영진을 이끌고 초기업노조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교섭 재개를 요청했다. 삼성전자 사장단은 별도 입장문에서 "반도체는 다른 산업과 달리 24시간 쉼 없이 공정이 돌아가야 하는 장치 산업이므로 결코 파업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 자산을 완전히 잃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직원들의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며 성과급 투명화, 상한 폐지, 제도화 안건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재계에서는 노조 요구안이 현실화할 경우 반도체 사업부 성과급 규모가 40조원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구개발에 투입한 약 37조7000억원보다 큰 규모다. AI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 투자보다 더 큰 규모의 성과급을 고정비처럼 제도화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금속노조 "헌법 훼손" 반발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6조에 근거한 제도로,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예외적 조정 절차다. 발동되면 노조는 최대 30일간 파업을 할 수 없고 중노위 조정이 진행된다. 지금까지 총 4차례 발동됐으며 가장 최근 사례는 2005년이다.
노동계는 이 카드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정부가 직권으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금속노조는 "헌법은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긴급조정권 발동은 노동3권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삼성전자에 긴급조정권이 적용된다면 자동차·조선·철강 등 금속노조 사업장 전반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제계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는 다음 주 긴급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성명에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철회와 노사 간 대승적 타협을 촉구하는 한편, 협상이 끝내 결렬될 경우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갈등은 삼성전자 한 곳의 임금 협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계의 긴장이 높다. 카카오, 현대자동차그룹,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기업의 노조도 영업이익 기반 성과급 확대 요구를 잇달아 제기하고 있어 삼성전자 협상 결과가 대기업 임금 협상 전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정치적 부담과 정부 내 신중론을 감안할 때 긴급조정권이 실제 발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21일 총파업이 현실화하고 반도체 생산 차질이 본격화할 경우 셈법이 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이 전면 중단되면 1700여 개 협력업체로 피해가 번지고, 글로벌 공급망 신뢰 저하와 수출 감소, 일자리 축소 등 경제 전반에 연쇄 충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끝내 긴급조정권 카드를 꺼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