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영화의 원형과 발전 - '사랑은 비를 타고'부터 '마이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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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음악이 바꾼 할리우드의 변환점
팝스타 전기영화 열풍, 스크린 위에 부활한 음악 전설들
"You ain’t heard nothing yet(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는 시대를 관통하는 이 명대사를 남겼다. 이전까지 무성영화만을 관람했던 관객들에게 '재즈 싱어'는 단순한 소리를 넘어 음악까지 전달했고, 영화는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했다.
이처럼 음악은 영화가 소리를 만난 순간부터 함께했다. 음악영화의 시작이 곧 유성영화의 효시이며, 이후에는 다양한 방식의 음악영화가 생겨났다.

현대에는 뮤지컬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션의 생애를 다루는 전기영화가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2018)는 약 9억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역대 전 세계 흥행 음악영화 1위에 자리했다.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 제작진이 참여한 영화이자 최근 개봉한 '마이클' 역시 북미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음악영화는 꾸준히 사랑 받아왔다. 계보를 따라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1.할리우드 뮤지컬의 황금기를 연 고전
1952년 최고 영화사 MGM이 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는 현대 뮤지컬 영화의 원형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미국 영화 연구소 선정 25대 뮤지컬 영화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다. 감독 스탠리 도넌과 진 켈리가 공동 연출했으며 진 켈리가 주연까지 맡았다.

배경은 1927년에서 1928년 사이의 할리우드로, 무성영화가 인기 절정이던 시절 유성영화가 태동하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다룬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연예인과 새로운 물결을 타고 오르는 인물들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에서 소리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시기를 다루면서, 그것을 가장 극대화한 방식인 음악을 주요 소재로 택한 점은 주요했다. 유성영화의 막을 연 '재즈 싱어'와도 비슷한 결로 느껴진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돈 락우드(진 켈리)가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탭댄스를 추며 '싱잉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을 부르는 신이다. 이는 영화사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장면이 됐다. 도널드 오코너의 슬랩스틱 코미디 역시 영화의 리듬을 살리는 중요한 요소였다.
'싱잉 더 레인'은 미국 영화 연구소 선정 100대 음악 중 3위를 차지했다. 진 켈리 또한 미국 영화 연구소 선정 가장 위대한 남자 배우 15위에 올랐다. 이 외에도 '굿모닝(Good Morning)'과 '브로드웨이 멜로디 발렛(Broadway Melody Ballet)'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자신의 저서 '위대한 영화'에서 "뮤지컬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궁극의 예시"라고 이 작품을 평가했다.
영화는 오늘날의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데미언 셔젤 감독은 '라라랜드'(2016)와 '바빌론'(2022)에서 이 작품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바빌론'에서는 '사랑은 비를 타고' 촬영 장면이 스쳐 지나갈 정도이며, 영화는 동일한 시대를 배경으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을 다시 한 번 다뤘다.
2. 송 스루의 등장 -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송 스루(Song-Through)'는 대사를 극도로 제한하고 모든 이야기를 노래로만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적응만 되면 일반 대사보다 훨씬 리듬감 있게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지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피로감이 쌓일 수 있는 양날의 형식이다.
송 스루 방식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작품은 자크 드미가 감독한 프랑스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이다. 당대 프랑스 최고 미녀였던 카트린느 드뇌브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영상미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영화는 알제리 전쟁으로 징집된 연인과 홀로 남겨진 여인의 이별을 담았다. 송 스루 방식 덕에 영화 전체가 하나의 넘버처럼 흐르며, 미셸 르그랑의 음악은 영화사에 각인됐다.
자크 드미는 이후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로도 뛰어난 미장센을 선보이며 프랑스 뮤지컬 영화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이 형식을 할리우드로 가져온 첫 작품은 앨런 파커 감독의 '에비타'(1996)다.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완성도를 살리기 위해 송 스루 방식을 택했으며, 마돈나가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 역을 맡았다.
에바 페론은 노동자 계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이끌고 여성 참정권 실현에 앞장선 인물로 아르헨티나 역사에 깊은 자취를 남겼다. 영화 속에서 마돈나가 부른 'You Must Love Me'는 제69회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이 계보의 결정판은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2012)이다. '킹스 스피치'(2011)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톰 후퍼가 연출하고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주목할 만한 방식은 현장 동시녹음이다. 배우들이 실제 연기하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는데, 이는 뮤지컬의 날것의 감동을 스크린으로 가져오기 위한 선택이었다.
수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그중 판틴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부른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곡이다. 온갖 성추행을 당하고 머리카락마저 밀린 채 과거의 꿈을 상기하는 가사는 그가 느꼈을 서러움을 한껏 전달한다.
3. 인디 음악영화의 대표 - 존 카니
존 카니 감독은 오리지널 곡 중심의 현대 인디 음악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원스'(2006) '비긴 어게인'(2013) '싱 스트리트'(2016)로 이어지는 3부작을 통해 그만의 문법을 완성했다.

사운드트랙이 새롭게 창작된 곡들로만 이뤄진다는 점, 음악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서사의 핵심이 된다는 점, 소규모 제작으로 현실적인 감성을 살린다는 점이 존 카니 영화의 특징이다.
3부작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은 역시 '비긴 어게인'이다. 마룬5 보컬 애덤 리바인이 부른 '로스트 스타(Lost Stars)'를 필두로 다양한 명곡들은 인디 가수를 발굴해 데뷔 시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간단하지만 클래식한 스토리와 맞물려 영화의 시너지를 더했다.
마니아 팬들이 가장 많기로 알려진 작품은 최근 국내 재개봉을 앞둔 '싱 스트리트'다. 영화는 198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소년 코너(페리다 월시-필로)가 첫눈에 반한 소녀를 위해 난생처음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대표곡 '드라이브 잇 라이크 유 스톨 잇(Drive It Like You Stole It)'은 영화의 절정 장면과 맞물리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며, 엔딩 신은 존 카니식 엔딩의 최고봉으로 평가 받는다.
존 카니의 3부작이 고평가 받는 이유는 음악이 단순히 장면을 장식하기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리지널 음악들은 인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이 직접 내뱉는 가사는 인물의 내면과 갈등 상황을 대변하고 있어 영화를 더욱 입체적이게끔 돕는다.
4. 팝스타를 부활시키는 뮤지션 전기영화
뮤지션 전기영화의 선전은 스티브 래시 감독의 '버디 홀리 스토리'(1978)에서 시작됐다. 버디 홀리는 1950년대 로큰롤을 주도한 싱어송라이터로, 리드 기타 리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현대적 록밴드 편성을 처음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단 3년의 활동 기간 동안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꿨으나 1959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그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는 당시 약 143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고, 주연 게리 부시가 아카데미 최우수 편곡상을 수상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뮤지션 전기영화가 블록버스터급으로 성장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전기영화로 국내에서만 994만 명을 동원했고 전 세계에서 약 9억 1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작품의 성공은 팝스타의 일생을 영화로 소환하는 흐름에 불을 붙였다. 그 계보를 잇는 최신작이 지난 13일 국내 개봉한 '마이클'이다.
마이클 잭슨의 실제 조카 자파르 잭슨이 마이클 잭슨 역할을 맡았다. 제작비가 2억 달러나 들어간 대작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제작자 그레이엄 킹이 다시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매그니피센트 7', '해방' 등의 앤트완 퓨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1988년 솔로 전성기까지를 담으며 알려지지 않은 성장기를 조명한다.
뮤지컬 황금기의 고전을 보는 관객과 팝스타의 전기영화 앞에 줄을 서는 관객은 분명 다른 세대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온몸으로 그 리듬을 받아들이는 경험은 어느 시대나 동일하다. 음악이 인간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건드린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