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생활의 달인'이 또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촬영을 거부한 베이커리 매장을 몰래 촬영해 방송에 내보냈다가 문제가 됐다. '생활의 달인'은 그동안 조작 논란, 부실 취재 등 숱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생활의 달인' 제작진이 12일 또 고개를 숙였다. 전날 방송된 '빵의 전쟁-대한민국 최고의 크루아상' 편에서 촬영을 거부한 베이커리 매장을 몰래 찍어 방송에 내보낸 것이 문제였다.
해당 업주 A씨는 인스타그램에 경위를 공개했다. 이른 아침 찾아온 제작진에게 촬영 거부 의사를 밝히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경고했지만 제작진이 휴대전화로 매장을 몰래 촬영했다는 것이다. A씨는 "사전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무단으로 촬영해 방송에 내보냈다"며 "지상파가 이렇게까지 고지 없이 방송을 할 수 있느냐"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운영하고 싶은 자영업자에게 기만이자 횡포"라며 "방송 이후 닥쳐올 후폭풍은 남의 일이고, 정작 당사자는 바빠서 대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고 지적했다. 실제 다른 업주 인터뷰가 나오지 않고 외부와 내부만 짧게 담은 방송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제작진은 논란이 커지자 하루 만에 "방송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의 과욕으로 인해 발생한 과오를 인정하며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내놨다. 논란이 확산하자 영상을 삭제하고 재편집 후 재게시하겠다고 밝혔다.
'생활의 달인'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5월 13일 방송된 '막국수 달인' 편을 내보냈을 때도 강원 원주시의 한 막국수 집을 '40년 전통'의 달인 식당으로 소개한 게 문제가 됐다. 방송 직후 원래 장사하던 사람이 시내에서 따로 장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 속이는 방송이냐"는 시청자 지적이 잇따랐다.
열흘 뒤 제작진은 시청자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렸다. 해당 식당은 창업주 할머니가 41년간 운영하던 곳이란 점, 이후 할머니 아들이 이어받았다는 점, 방송 출연자가 2009년부터 합류해 2016년 가게를 인수했다는 점을 밝혔다. 출연자의 경력이 10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었다. 제작진은 "출연자가 40년간 운영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라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방송은 "해당 코너인 '은둔식달'은 코너 특성상 사전 취재가 충분하지 못한 한계가 있어 일부 내용은 제작진도 방송 이후 인지하게 됐다"고 했다. 사전 취재 부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라 더 큰 역풍이 일었다.

방송 업계 내부 사정에 밝은 네티즌 사이에선 무단 촬영, 부실 취재 등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네티즌은 '생활의 달인' 측과 출연 희망 업체를 연결해주는 이른바 '외주 브로커'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음식점뿐 아니라 기술 달인들도 사전 촬영을 거쳐 통과해야 본 촬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평범한 식당이 사전 촬영에서 탈락하거나 실력 있는 맛집이 촬영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 외주 업체가 평범한 식당을 온갖 희귀 재료와 특이한 조리법으로 치장한 '기획된 달인'으로 만들어 본 촬영에 올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과정을 작가와 PD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란 주장도 따라붙는다.
실제로 방송에 등장하는 레시피에 일반적인 상식으론 납득하기 어려운 재료 조합이 자주 등장한다. 단가 수백 원짜리 길거리 꽈배기에 냉동 가리비 관자를 손질해 넣는다거나 단호박으로 단맛을 낸다는 식이다. 가리비 관자를 다져 밀가루 반죽에 섞는다고 식감이 달라지지 않고, 단호박으로는 정백당의 당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조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재료비를 고려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일부 시청자는 무단 촬영이 단순한 실수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진짜 달인을 찾기 어렵고 섭외에 응하는 업체도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촬영 동의조차 무시하게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방송 제작 내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훨씬 전부터 시청자들은 이미 이상함을 감지하고 있었다. 한 시청자는 단골 분식집이 '생활의 달인'에 나왔는데 시청 후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했다. 그는 싼 맛에 다니던 곳이 지극정성으로 떡볶이를 만드는 집으로 소개돼 당황했다고 밝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작가가 대본을 써주고 출연자는 그걸 읽는 구조라고 전했다. 실제로 대학 시절 방송 단골 역할로 출연했다는 한 네티즌은 ”그 집은 그날 처음 갔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그날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라면서 ”작가가 앞에서 써준 멘트를 읽었다“고 밝혔다.
이연복 셰프를 비롯한 진짜 장인이 등장한 방송 초기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은 달인 풀이 고갈된 이후 프로그램이 음식점 홍보 콘텐츠로 방향을 틀면서 자연스럽게 연출된 달인의 비중이 높아진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지상파 제작진의 고질적인 특권 의식이 부른 결과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서라면 일반인의 사생활이나 영업권쯤은 무시해도 된다는 오만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게 아니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