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곡] 브릿팝이 끝난 자리에서... 냉소가 스타일이었던 시대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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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의 ‘어 송 포 더 러버스’를 듣다
파괴된 삶을 견디게 하는 ‘결코 늙지 않는 소리의 위로’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브릿팝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은 많다. 오아시스와 블러의 차트 전쟁, 리암 갤러거의 막말, 자비스 코커의 비틀린 냉소, 브렛 앤더슨의 퇴폐적인 포즈. 하지만 그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장면은 의외로 훨씬 조용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1995년 어느 날이었다. 오아시스는 웨일스 록필드 스튜디오에서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만들고 있었다. 영국 전체가 오아시스 열병에 휩싸이기 직전이자 노엘 갤러거가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작곡가처럼 행동하던 시기였다. 노엘은 입만 열면 자기 밴드가 비틀스 이후 최고라고 떠들었고, 경쟁 밴드들을 조롱하는 걸 즐겼다. 거리의 자신감과 노동계급 청춘의 허세, '우리가 세상을 먹는다'는 감각을 가장 완벽하게 음악으로 바꿔낸 사람이었다. 그런 노엘이 유독 다른 태도를 보인 인물이 있다. 더 버브의 리더였던 리처드 애시크로프트다.

당시 노엘은 막 완성한 '캐스트 노 섀도(Cast No Shadow)'를 애시크로프트에게 들려줬다. 노래는 애초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쓰인 곡이었다. 훗날 노엘은 그를 두고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노엘이 그에게 매료된 건 단순히 그의 처연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바탕에는 동시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애시크로프트만의 독보적인 작곡 능력에 대한 깊은 존중이 깔려 있었다. 노엘이 명징하고 찬란한 멜로디로 시대의 찬가를 썼다면, 애시크로프트는 사이키델릭한 안개 속에서 영혼의 심연을 건드리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선율을 빚어내는 데 탁월했다. 자신이 비틀스 이후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노엘이었지만, 애시크로프트가 가진 이 결이 다른 재능만큼은 세상보다 먼저 알아보고 기꺼이 무장해제됐던 셈이다. 그 인정의 증거가 바로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 슬리브 노트에 적힌 ‘천재 리처드 애시크로프트(the genius of Richard Ashcroft)’라는 문구다. 자기 밴드 앨범에 다른 밴드 보컬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올리는 일은 거의 전례가 없다. 오만한 작곡가 노엘 갤러거가,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가 있는 또 다른 천재에게 바친 가장 정중하고도 투명한 경의였던 셈이다.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캐스트 노 섀도’란 제목엔 애시크로프트가 너무도 투명해 빛이 그대로 통과할 정도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곡을 들은 애시크로프트는 거의 울먹였고, 노엘은 "정신 차려!(Hold yourself together!)"라고 말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 상대에게 당황한 사람이 건넨 말이었다. 브릿팝 시대를 대표하는 일화 중에서도 유독 오래 남는 장면이다. 그 순간이 단순한 우정담이 아닌 이유는 브릿팝이라는 시대의 핵심 모순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당시 브릿팝은 기본적으로 '쿨함'의 문화였다. 감정보다 태도가 먼저이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재치 있고 싶어 했고, 감정은 아이러니 속에 숨겼다. 상처는 농담으로 포장했고, 진심은 스타일 안에 감췄다. 블러는 도시적 냉소를 세련되게 소비했고, 펄프는 자기 비참함조차 유머로 바꿨다. 오아시스 역시 감정의 밑바닥에는 허세와 자신감이라는 갑옷이 있었다. 그런데 애시크로프트는 달랐다. 그는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었고, 자기 비극에 지나칠 정도로 몰입했다. 브릿팝이 현실의 거리 문화를 노래할 때, 애시크로프트는 혼자 존재 자체의 공허를 노래했다. 그래서 더 버브의 음악은 브릿팝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브릿팝 바깥의 음악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그걸 알아봤다.

'캐스트 노 섀도'는 그래서 단순한 헌정곡이 아니다. 브릿팝 시대 한복판에서, 허세로 무장했던 인간이 가장 감정적인 인간에게 바친 고백이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나이였고, 세상에 할 말도 참 많은 사람이었지(He was a man with a lot of pride / He had a lot to say)." 가사는 애시크로프트를 정면으로 묘사한다. '프라이드(pride)'는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다. 쉽게 꺾이지 않는 인간, 자기 안의 것을 타협하지 않는 인간. 그리고 그 무게가 너무 커서 오히려 스스로를 짓누른다는 것. 그 지점까지 노엘은 가사에 담았다.

더 버브는 브릿팝 밴드임에도 시대를 초월한 인상을 준다. 오아시스가 시대의 에너지였다면 더 버브는 시대의 그림자였다. 오아시스 음악이 '함께 소리치는 청춘'이라면, 더 버브의 음악은 '혼자 남겨진 새벽'이었다. 초기 더 버브는 전형적인 브릿팝 밴드라기보다 사이키델릭과 슈게이즈의 연장선에 있었다. 기타는 안개처럼 퍼졌고, 음악은 현실감보다 부유감을 만들었다. 그들의 곡을 듣고 있으면 밴드 음악을 듣는 기분보다 거대한 감정 상태를 통과하는 기분에 가까워진다. 그 끝에 1997년 '어번 힘스(Urban Hymns)'가 있었다.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1997년은 영국 대중음악이 결정적으로 꺾인 해였다. 브릿팝의 외향적 에너지가 소진되던 바로 그 시점에 라디오헤드가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를 내놨다. 거리와 술집을 노래하던 시대에 혼자 이탈한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전면에 내세운 앨범이었다. 차갑고 기계적인 언어로 내면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이 앨범의 충격은 록음악계 전반을 바꿔놨다. '어번 힘스'는 그 전환점과 정확히 겹쳐 있었다. 라디오헤드가 소외를 해부했다면, 애시크로프트는 같은 감각을 뜨겁고 감정적인 언어로 받아냈다. 한쪽은 인간을 차갑게 해체했고, 다른 한쪽은 인간을 끌어안으며 무너졌다.

지금 돌아보면 '어번 힘스'는 브릿팝 시대 전체를 마감하는 에필로그다. '비터 스윗 심포니(Bitter Sweet Symphony)', '더 드럭스 돈트 워크(The Drugs Don't Work)', '소넷(Sonnet)', '럭키 맨(Lucky Man)' 같은 곡이 한 앨범 안에 몰려 있다. 특히 '비터 스윗 심포니'는 록 음악을 넘어 대중문화 전체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도입부 스트링 루프가 흐르는 순간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1990년대 후반의 공기를 떠올린다. 끝없이 팽창하던 도시, 소비문화의 황홀, 그러나 그 속에서 점점 공허해지는 인간들.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교향곡, 그게 바로 인생이지(Cause it's a bittersweet symphony, that's life)." 이 문장이 힘을 갖는 이유는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이다. 삶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견딜 수 없이 씁쓸하다는 것. 인간은 앞으로 걸어가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조차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 애시크로프트는 그 막연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 감각을 하나의 문장에 봉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곡이 브릿팝인데도 브릿팝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록은 대체로 현실적이었다. 축구, 술집, 노동계급 정체성, 거리 문화. 그런데 '비터 스윗 심포니'는 현실 위를 떠다닌다. 런던 한복판을 걷고 있는데 동시에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곡은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시대의 송가가 됐다.

'비터 스윗 심포니'에는 브릿팝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저작권 분쟁의 일화도 담겨 있다. 더 버브는 롤링 스톤스의 '더 라스트 타임(The Last Time)' 오케스트라 버전을 샘플링했는데, 사용 범위를 두고 법적 분쟁이 일었다. 당시 롤링 스톤스의 권리를 관리하던 앨런 클라인 측이 승소했고, 애시크로프트는 곡 수익 대부분을 잃었다. 심지어 작곡 크레디트에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이름까지 올라갔다. 삶의 씁쓸함을 노래한 곡이 실제로 창작자에게 가장 씁쓸한 사건을 안긴 셈이다. 애시크로프트는 훗날 이 일을 두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롤링 스톤스 곡"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2019년이 돼서야 롤링 스톤스 측이 권리를 돌려주면서 긴 분쟁은 끝났다.

뮤직비디오 역시 마찬가지다. 애시크로프트는 런던 거리를 직선으로 걸어간다. 사람들과 계속 부딪히는데 절대 비켜주지 않는다. 행인을 어깨로 밀치고 지나가고 차와 충돌할 듯 걸어간다. 영국 음악 팬들 사이에서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어깨빵 뮤직비디오"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이 장면이 전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실제 애시크로프트 역시 세상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앞으로 밀고 나가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브릿팝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기 확신이 강한 프런트맨 가운데 하나였다. 인터뷰에서는 늘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드러냈고, 자기 음악과 자기 존재를 거의 신화처럼 이야기했다. 그 강렬한 자의식이 밴드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긴장을 만들었다. 더 버브는 전성기에도 늘 해체 직전 같은 분위기였고, 멤버들 사이 갈등도 반복됐다. 브릿팝 시대가 냉소를 소비할 때 그는 혼자 지나치게 진지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었고, 지나치게 자기 비극에 몰입했다.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리처드 애시크로프트 / 애시크로프트 인스타그램

여자 문제 역시 유명했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 리더 제이슨 피어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지금도 브릿팝 시대 가장 악명 높은 인간관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애시크로프트의 현재 아내 케이트 래들리는 스피리추얼라이즈드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고, 당시 피어스의 연인이기도 했다. 결국 케이트는 애시크로프트와 관계를 맺게 됐다. 이 사건은 피어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걸작 '레이디스 앤 젠틀맨 위 아 플로팅 인 스페이스(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는 대부분 이 사건과 연결해서 받아들여진다. 앨범은 사랑의 붕괴와 자기 파괴를 해체 수준까지 밀어붙인 작품이었다. 피어스는 무너져가고 있었고, 애시크로프트는 반대로 브릿팝의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흥미로운 장면은 남았다. 애시크로프트는 2021년 자신의 대표곡들을 어쿠스틱으로 재해석한 '어쿠스틱 힘스 볼륨 1(Acoustic Hymns Vol. 1)'을 발표했는데, 앨범 커버에 래들리가 등장한다. 한때 피어스와 애시크로프트 사이에서 영국 인디 록 신의 유명한 연애사로 회자됐던 인물이, 수십 년 뒤에는 애시크로프트의 음악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다시 등장한 셈이다. 애시크로프트의 음악에는 늘 이런 아이러니가 따라다닌다. 낭만과 파괴, 사랑과 상실, 구원과 자기 붕괴가 동시에 존재한다. 바로 그런 인간이 솔로로 발표한 첫 싱글이 '어 송 포 더 러버스(A Song for the Lovers)'다.

2000년, 브릿팝은 사실상 끝나가고 있었다. 오아시스의 시대적 위상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블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더 버브 역시 '어번 힘스'라는 지나치게 완벽한 앨범을 남긴 뒤 자기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다. 그 폐허 위에서 애시크로프트는 솔로로 돌아왔다.

곡은 시작부터 벅차게 달려간다. 드럼은 거침없이 앞으로 밀고 나가고, 스트링은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처음 들으면 거의 승리의 음악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정작 애시크로프트의 목소리는 그 사운드 한가운데서 공허하게 떠다닌다.

"난 호텔룸에서 밤새 텅 빈 내 안을 더듬지(I spend the night, yeah, looking for my insides in a hotel room)." 첫 소절부터 이미 뭔가 어긋나 있다. 사랑 노래인데 화자는 이미 자기 내면을 잃어버린 상태다.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모순이야말로 애시크로프트 음악의 핵심이다.

더 버브 시절부터 그는 늘 그런 노래를 만들었다. '비터 스윗 심포니'가 삶이 허무한지 알면서도 계속 걸어가는 인간의 노래였다면 '어 송 포 더 러버스'는 그 모든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려는 사람의 노래다. 그래서 이 곡에는 묘한 시대감각이 남아 있다.

2000년이라는 시점은 중요하다. 한때 영국 전체를 뒤흔들었던 청춘의 에너지와 낭만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고, 1990년대 특유의 낙관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어 송 포 더 러버스'는 축제가 끝난 뒤의 풍경이다. 모두가 떠나버린 무대. 새벽까지 이어졌던 소음이 멈춘 거리. 그런데도 어떤 인간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삶과 사랑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채 다시 몸을 일으킨다.

애시크로프트는 그 감정을 끝까지 냉소로 처리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록 음악이 아이러니와 거리감으로 감정을 조절했다면, 그는 자기 감정을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때로는 과할 정도였고, 때로는 민망할 정도로 진지했다. 노엘 갤러거가 일찌감치 알아봤던 것도 결국 그것이었다. 허세와 냉소로 가득했던 시대에서 혼자 지나치게 진심이었던 인간. 그래서 그의 음악은 그 시대가 끝난 뒤에도 낡지 않는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