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 HMM 나무호를 공격한 비행체의 정체와 타격 주체를 규명할 결정적 증거인 엔진 잔해 조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행체의 잔해 일부가 식별이 됐고 우리가 가지고 있다"며 "1차적인 감식은 했지만 좀 더 전문적인 조사를 요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향후 조사 방식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보려면 잔해를 분해해 볼 필요도 있고 물리적 화학적 검사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며 "그 작업까진 가지 않았지만 앞으로 예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정부 소식통 역시 이 같은 조사 방향에 동의하며 "피격 당시 정황과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엔진 잔해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며 "전문기관이 분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고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체 엔진 잔해는 HMM 나무호 피격 사건을 둘러싼 객관적 사실관계를 실체적으로 규명할 가장 핵심적인 단서로 꼽힌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4일 일어난 선박 화재 사건이 미상 비행체의 외부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선체 하단 외판에서 발견된 폭 5m, 깊이 7m 규모의 거대한 파공 사진도 함께 공개하며 폭발 피해 사실을 명확히 증명했다.
이번 공격에 동원된 비행체는 자폭 드론 또는 대함 미사일일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된다. 비행체의 종류에 따라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장착되는 엔진의 구동 방식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잔해 분석은 사용된 무기를 특정하는 필수 과정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왕복 엔진이면 이란의 샤헤드 드론일 가능성이 있고, 터보팬 엔진이면 지대함 미사일 또는 다른 종류의 드론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엔진 구동 방식의 구분을 넘어 잔해에서 수거된 세부 부품의 원산지와 고유 일련번호 등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질 분석 대상이다.
공격 수단과 무기 체계를 실체적으로 밝혀내는 과정은 곧 군사 공격을 감행한 배후 주체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정부가 아직 공격 주체를 이란으로 단정하지 않고 철저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엔진 잔해 정밀 조사 결과는 향후 우리 정부의 외교적 대응 방향과 항의 수위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요 변수로 작용한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군과 민간의 최고 전문 기관을 동원해 엔진 잔해에 대한 고도의 화학적 물리적 분석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정부는 자력 운항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HMM 나무호를 안전을 위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항으로 예인해 사고 원인에 대한 초기 현장 조사를 마친 상태다.
하지만 사고 해역 인근에서 수거한 무기 파편과 잔해를 두바이 현지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기에는 정밀 감식 장비와 연구 시설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큰 한계가 뒤따른다.
이에 따라 해당 잔해를 국내로 조속히 옮겨와 국방과학연구소 등 관련 분야를 전담하는 국가 기관에서 정밀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국내에서 진행될 엔진 잔해 분석은 두바이 현지 조사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러 관련 부처와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외교부와 해양수산부가 HMM 나무호 피격 관련 조사 과정을 앞장서 주도해 왔다.
현장 감식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관과 소방청 화재 감식 전문가가 합동 현장 조사단으로 두바이에 긴급 파견됐다.
군사적 외부 피격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폭발물 및 무기 체계 분석을 위해 군 당국도 현장 조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잔해 분석 과정 역시 정부 차원의 합동 조사가 중심축을 이루고 군에서 전문적 조언 및 고도의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유기적인 협력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에서 나무호 외부 공격 확인에 따라 군의 대응 범위가 확대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확인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유관 부처와 소통하고 있으며 필요한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HMM 나무호가 타격을 입은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5분의 1이 집중적으로 통과하는 핵심 물류의 심장부이자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쟁 지역이다.
과거부터 이곳에서는 특정 국가나 무장 단체가 민간 상선을 겨냥해 비대칭 군사 도발을 감행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국제 사회는 공해상이나 국제 통항로에서 비무장 민간 상선을 뇌관이나 미사일로 타격하는 행위를 항행의 자유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중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엄격히 규정한다.
무인기나 미사일 잔해를 확보해 폭발물 성분과 전자 회로망을 역추적하는 과학적 감식은 범행 주체가 사실을 은폐하거나 부인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법적 물증 확보 절차다.
과거 발생한 유사 해상 피격 사건에서도 금속 파편에 미세하게 남은 일련번호나 특정 제조국의 고유한 부품 조립 방식을 대조해 공격 배후의 꼬리를 잡았다.
엔진 내부를 정밀히 분해하면 밀수입된 상용 부품의 유통 경로를 파악할 수 있고 선체에 남은 잔여물을 채취해 분석하면 화약의 배합 비율까지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고도의 과학 수사를 통해 얻어낸 결과는 정부가 미국 등 우방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 강력한 외교적 제재를 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HMM 나무호 피격 사건은 단일 선박의 물적 피해를 넘어 대한민국 해상 물류망의 국가 안보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