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천만영화, 톱스타 주연 한국영화 싹 다 제치고…넷플릭스 1위 오른 '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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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혈액형 때문에 쫓기던 중 암살자 가족에게 거둬진 소녀의 이야기

다소 뜻밖의 작품 하나가 국내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11일 오후 기준)에 올라 눈길을 끈다. 이성민 주연의 '비스트', 비공식 천만영화로 불리는 작품 '바람' 등을 제치고 당당히 정상에 이름을 올렸다.

'친애하는 나의 킬러' 주연 핌차녹 류위셋파이분. / 넷플릭스 제공
'친애하는 나의 킬러' 주연 핌차녹 류위셋파이분.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차트에서 한국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 제작사 한국영화도, 스타 배우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태국에서 만들어진 액션 멜로 영화 '친애하는 나의 킬러'가 국내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왜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짚어본다.

희귀 혈액형 소녀와 암살자 가족, 이야기의 출발점

'친애하는 나의 킬러'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베트남 소녀 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란의 부모는 냉혹한 보물 사냥꾼 프륵에게 살해된다. 프륵이 란을 노리는 이유는 단 하나, 란의 몸속에 흐르는 희귀한 피다. 쫓기던 란은 암살 조직 하우스 89의 수장 포에게 구출돼 태국으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란은 포의 친아들 쁘란, 고아 출신으로 포가 거둔 M과 함께 자란다. 세 사람은 가족처럼 생활하며 성장하고, 쁘란과 란은 시간이 흐르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프륵이 다시 나타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균열을 맞는다. 란은 하우스 89가 자신을 거둔 이유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표적이 된 상황에서 복수를 다짐하며 스스로 싸움에 나선다.

란 역은 영화 '프렌드 존'으로 알려진 핌차녹 르위셋파이분이 맡았고, 쁘란 역에는 드라마 '호르몬즈', 영화 '고스트 랩' 출신의 타나폽 리라따나카쫀이 캐스팅됐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와 거친 액션 장면이 맞물리며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평이 많다.

'친애하는 나의 킬러'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친애하는 나의 킬러'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피가 저주가 되는 세계, 장르 이면의 불편한 질문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로맨스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설정 자체가 품고 있는 질문 때문이다. 희귀 혈액형은 소재로서 극적 긴장을 만드는 장치지만, 영화는 그 장치를 통해 인간의 몸이 자본과 권력의 욕망 앞에서 어떻게 자원으로 취급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란의 피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희귀한 것이지만, 란 본인에게 그 피는 평생 도망쳐야 하는 이유가 된다. 부모를 잃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험을 불러오며, 보호받는다고 여겼던 집에서도 결국 이용당한다. 프륵 일파가 란을 쫓는 이유는 란의 마음도 삶도 아닌 오직 피 하나다. 그들에게 란은 인격이 아니라 채굴 가능한 저장고다. 영화가 잔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피 튀기는 액션보다 이 세계관 자체에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숨겨진 감금, 하우스 89의 두 얼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하우스 89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구점 형태를 띠지만 내부는 킬러 조직의 은신처다. 란에게 이곳은 두 번째 집이었고, 쁘란과 M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함께 자라고, 비를 맞으며 놀고, 서로의 결핍을 채운다.

문제는 하우스 89가 란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란을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란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실은 철저히 감춰진다. 보호는 어느 순간 감금이 되고, 안전은 어느 순간 선택 박탈의 형태로 나타난다.

란이 나중에 마주하는 진실은 이것이다. 하우스 89가 자신을 거둔 이유는 자신이 쁘란을 살릴 수 있는 희귀 혈액의 보유자이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라 여겼던 공간이 사실 자신을 예비 혈액 공급원으로 보관해온 구조였다는 사실은 란에게 두 번째 상실로 작용한다. 첫 번째는 부모를 잃은 것, 두 번째는 믿었던 집을 잃은 것이다.

영화는 하우스 89 구성원들의 마음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란을 진심으로 아꼈기 때문에 관계가 더 복잡해진다. 진심이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선택권을 빼앗는 순간 그 사랑은 폭력의 그림자를 갖게 된다는 것, 영화는 그 불편한 명제를 란의 이야기를 통해 꺼낸다.


'친애하는 나의 킬러'에 출연한 태국 배우 핌차녹 류위셋파이분. / 넷플릭스 제공
'친애하는 나의 킬러'에 출연한 태국 배우 핌차녹 류위셋파이분. / 넷플릭스 제공

란과 쁘란, 보호와 통제 사이에서 흔들리는 로맨스

쁘란은 란을 지키고 싶어 하고, 그 마음은 분명 사랑에 가깝다. 하지만 그 사랑은 동시에 란이 바깥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란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다 란의 선택을 대신하는 것, 영화는 이를 사랑과 통제 사이의 위험한 경계로 그린다.

쁘란 역시 자유롭지 않은 인물이다. 하우스 89의 후계자이자, 몸의 취약함을 안고 살아온 그는 갇힌 방식으로 사랑을 배운 사람에 가깝다. 란을 가두려는 악인이 아니라, 자신도 어떤 구조 안에 묶여 있는 존재다. 쁘란이 란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묻는 장면은 이 관계의 본질을 압축한다. 란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곁에 남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M은 단순한 삼각관계의 보조 인물이 아니다. 란을 향한 감정이 있지만, 그것을 앞세워 관계를 흔들기보다 두 사람을 지키는 쪽에 선다. M의 사랑은 소유가 아닌 돌봄의 형태에 가깝다. 란과 쁘란의 관계가 보호와 통제의 경계 위에서 흔들린다면, M의 마음은 상대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쪽에 더 가까이 놓인다. 이 세 인물의 감정 구도가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층위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킬러가 되겠다는 선언, 생존이 아니라 자기 삶의 탈환

란이 스스로 킬러가 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폭력을 향한 욕망이 아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피 저장고로 남지 않겠다는, 자기 삶에 대한 선언이다. 안전한 곳이 없다면 자신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겠다는 결론이다.

이 각성은 완전히 낭만적이지 않다. 란이 무기를 드는 순간, 그는 자신을 위협하던 폭력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그 선택을 승리의 환호로만 그리지 않는다. 란의 선택 안에는 두려움, 복수심, 생존 본능, 죄책감이 동시에 뒤섞여 있다. 부모도 자신 때문에 죽었고, 하우스 89 사람들도 자신 때문에 죽어간다는 무게를 안은 채로 란은 움직인다. 이 복합성이 란의 변화를 단순한 액션 히어로 탄생보다 더 묵직하게 만든다.


'친애하는 나의 킬러' 스틸컷. 주연 핌차녹 류위셋파이분. / 넷플릭스 제공
'친애하는 나의 킬러' 스틸컷. 주연 핌차녹 류위셋파이분. / 넷플릭스 제공

태국 장르영화의 에너지와 감정 과잉이라는 양날의 검

'친애하는 나의 킬러'의 액션은 할리우드식으로 미끈하게 정돈된 형태가 아니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통증을 앞세우고, 인물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추격전과 근접전이 반복되는 장면들은 쾌감과 절박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특히 후반부 액션은 란이 보호받는 존재에서 스스로 싸우는 존재로 전환되는 서사와 맞물리며 힘을 얻는다.

동시에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적 감정도 강하게 끌어올린다. 액션, 로맨스, 가족 서사, 복수극, 신체 착취의 은유까지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감정의 밀도를 충분히 쌓기 전에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있다. 특히 란이 하우스 89를 집으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그 배신감을 느끼는 과정은 더 촘촘하게 축적될 여지가 있었다. 관객에 따라 이 감정의 과잉과 빠른 전개가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잉은 결함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영화는 애초에 차갑게 계산된 스릴러가 아니다. 울고, 피 흘리고,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다시 싸우는 인물들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성격이다. 투박하지만 뜨겁고, 정교하지는 않지만 강하게 밀어붙이는 태국 장르영화 특유의 에너지가 그 안에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는 것은 누가 살아남았는지의 결과가 아니다. 란이 어떤 사람으로 남았는가다. 그는 모든 상처를 지운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것을 잃었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착취의 대상이었던 피가 기억과 사랑의 증거로 전환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마지막에 말하려 하는 지점이다.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