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지급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노사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의 최승호 위원장은 11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 사후조정 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지급 및 상한 폐지, 제도화를 계속 말하고 있다"며 "회사가 제도화에 대해 입장이 없으면 오늘이라도 저희는 조정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측은 그동안 성과가 잘 나왔을 때 쌓아뒀다가 적자 때 보전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명문화라는 말은 믿지 못하겠고 명확하게 제도화 관점에서 보려 한다"고 했다. 이어 "회사의 전향적 변화가 있으면 저희도 그에 대한 고민은 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이외 부문에도 성과급을 배분하기 위한 전사 공통재원 설정에 대해서는 이번 협상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최 위원장은 노조 내 이견이 정리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3개 노조가 같이 결정한 사항을 지금 말을 바꾸기는 어렵다. 불성실 교섭이라는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저희 방향은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희가 과반수 노동조합으로 법적으로 인정받은 만큼 내년에는 이 부분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과 12일 이틀간 사후조정 절차를 통해 협상에 나선다. 사후조정은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가 한 차례 종료된 뒤 노사 양측이 동의할 경우 노동위원회가 다시 중재에 나서는 제도를 뜻한다. 노조는 오는 21일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예고했다. 파업 전 사실상 마지막 협상 자리다. 지난 3월 27일 교섭이 중단된 후 45일 만에 공식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렸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3월 진행된 조정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조정 중지가 결정됐으나, 고용노동부 설득으로 사후조정 절차에 다시 나서게 됐다. 사후조정을 통해 조정안이 도출되면 단체협약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다.
노조 내부에서도 균열이 감지된다. 2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과 완제품 사업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 조합원들은 전사 공통재원을 확보해 성과급을 고르게 배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초기업노조 전체 조합원 7만 3000여 명 가운데 약 80%가 반도체 부문인 DS(디바이스솔루션) 소속인 만큼 협상이 DS 부문 성과급 요구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대 노조인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은 공동투쟁본부 참여를 철회하고 교섭 정보 공유와 차별 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등 노조 사이의 갈등이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상태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과 한국의 투자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800여 개 회원사를 둔 국내 최대 외국상의가 특정 기업의 노사 문제에 대해 입장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암참은 삼성전자가 AI 인프라·클라우드 컴퓨팅·첨단 제조·자동차·에너지 산업 등에 필수적인 메모리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총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공급 병목 현상과 가격 변동성 확대, 조달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주요 기업이 공급망 집중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생산 및 조달 거점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경쟁국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했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 겸 대표이사는 "암참은 삼성전자 노사 갈등을 비롯해 전반적인 경영 및 투자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현안들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회원사 및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과정에서도 공급망 회복력과 운영 안정성, 장기적인 경영 예측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이 삼성전자 측에 파업으로 인한 공급 차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메타·구글·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데이터센터·스마트폰·PC·서버·AI 가속기 등 핵심 사업 영역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메모리 확보가 절체절명의 과제인 글로벌 기업이 노조 파업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납기 지연이 현실화하면 위약 청구 등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