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못 갈 줄 알았는데…설악산 끝자락, '이곳'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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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이천 봉의 끝자락을 걷다, 고성 신선대
금강산 제1봉 신선봉과 천년고찰 화암사

북측으로 향하는 금강산 관광의 길은 잠시 멈춰 있지만, 우리 국토 안에서도 그 산맥의 기운을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강원도 고성군의 신선봉이다. 금강산의 1만 2천 봉우리 가운데 최남단에 자리한 봉우리로, 남한에서 오를 수 있는 금강산의 제1봉으로 불린다.

금강산 신선대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정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신윤철)
금강산 신선대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정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신윤철)

남쪽에서 만나는 금강산의 끝자락

신선봉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속한다. 설악산국립공원과 인접해 있어 설악산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설악산이 아닌 금강산 줄기에 속한다. 이 때문에 고성 신선봉 일대는 남한에서 금강산의 산세를 가까이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신선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면 거대한 암반 지대인 신선대(성인대)를 만난다. 이 이름은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즐겼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신선대는 금강산 줄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자, 설악산의 명물인 울산바위를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신선대(성인대) / 한국관광공사 (촬영 : 허윤경)
신선대(성인대) / 한국관광공사 (촬영 : 허윤경)

신선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금강산 화암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이용하면 된다. 화암사 일주문을 지나 사찰 안쪽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숲길이 이어진다. 코스는 크게 두 갈래다. 1.2km 길이의 급경사 구간인 ‘등산하는 길’과 2km 길이의 완만한 ‘산림치유 길’이다.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체력 소모는 다르지만, 보통 성인 걸음으로 1시간 정도면 목적지인 신선대 인근 암반 지대에 닿을 수 있다. 등산로 주변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산림욕을 즐기기 좋다. 길은 대체로 뚜렷한 편이지만, 비가 온 뒤에는 흙길과 바위 구간이 미끄러울 수 있어 등산화나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신발을 갖추는 편이 좋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등 뒤로 동해의 푸른 수평선이 펼쳐져 걷는 내내 시야가 넓어진다.

신선대에 도착한 뒤 남쪽 숲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시야가 한층 트인다. 이곳에서는 금강산 신선봉 줄기와 설악산 울산바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둘레가 4km에 달하는 여섯 개의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 울산바위가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설악산 울산바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로,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악산 울산바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로,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울산바위에는 오래된 전설도 전해진다. 과거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에 들기 위해 울산에서 먼 길을 달려왔지만, 설악산 미시령 부근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의 봉우리가 모두 찼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는 이야기다.

고성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는 속초 방면에서 보는 모습과 또 다른 인상을 준다. 바위의 거친 질감과 웅장한 규모가 더 또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바위 능선의 굴곡과 절벽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다만 조망에만 집중하다 보면 발밑의 암반을 놓치기 쉬우므로 이동할 때는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걷는 것이 안전하다.

수바위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화암사

신선봉 자락의 청정한 화암골에는 천년고찰 화암사가 있다. 화암사는 서기 769년,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이후 여러 차례 부침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조선 인조 1년인 1623년 대화재로 소실됐고, 1625년에 다시 세워졌다. 고종 1년인 1864년에는 현재의 위치인 수바위 아래로 건물을 옮기며 ‘수암사’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후 1912년에 다시 ‘화암사’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화재 피해로 법당만 겨우 보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를 계기로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뤄지면서 지금의 정갈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사찰답게 화암사에는 자연과 역사가 차분하게 겹쳐 있다.

고성 화암사 / ⓒ한국관광콘텐츠랩-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고성 화암사 / ⓒ한국관광콘텐츠랩-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경내로 들어서는 길목에 우뚝 솟은 수바위는 화암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쌀 ‘화(禾)’ 자를 쓰는 사찰 이름처럼, 이 바위의 작은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들면 먹을 쌀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현재 화암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명부전, 설법전 등 여러 전각이 배치돼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군도 남아 있어 사찰의 깊은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경내는 규모가 크지 않아 산행 전후로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전각 사이를 걷다 보면 수바위와 숲, 멀리 보이는 산세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와 산사의 분위기를 더한다. 경내에 마련된 전통찻집은 수바위와 울산바위를 함께 바라보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산행 전후로 잠시 앉아 차 한 잔을 마시기에도 좋고, 고요한 산사 분위기 속에서 숨을 고르기에도 알맞다.

바람과 암반을 조심해야 하는 산길

고성군 일대는 지형적 특성상 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다. 특히 신선대 정상부는 미시령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직접 닿는 곳이어서 겨울철이나 환절기에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야 한다. 바람막이와 여벌 옷을 준비하고, 기온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바람만큼 주의해야 할 부분은 암반 지대다. 암반 끝부분은 난간이나 보호 시설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구간이 많다. 돌풍이 불 경우 안전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으므로 사진 촬영이나 조망을 할 때는 가장자리에서 충분히 떨어져야 한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무리한 산행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절에 따라 탐방 가능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 산불 조심 기간에는 입산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고성군청이나 국립공원 측의 공지 사항을 확인하면 입산 통제 여부와 현장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산행은 일몰 전에 충분히 하산할 수 있도록 여유 있게 계획하는 것이 좋다. 화암사와 신선대는 입장료가 따로 없지만, 화암사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소정의 주차료가 부과된다.

탐방 중에는 주변 환경을 살피며 머무는 태도도 필요하다. 쓰레기는 되가져가고, 숲길 주변의 식생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너른 암반 위에서는 취사나 음주처럼 자연환경에 부담을 줄 수 있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주말이나 단풍철처럼 탐방객이 몰리는 시기에는 좁은 길에서 서로 양보하며 이동하면 한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산행 뒤 즐기는 고성의 맛과 주변 여행지

산행을 마친 뒤에는 고성의 향토 음식을 맛보는 일정도 좋다. 고성은 예부터 명태와 인연이 깊은 지역이다. 차가운 해풍에 말린 황태로 끓인 해장국과 구이는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 산행 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은 몸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메밀을 주재료로 한 막국수도 고성의 별미로 꼽힌다. 고성 지역 막국수는 동치미 국물을 바탕으로 한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여기에 지역에서 나는 산나물을 곁들이면 부담 없이 든든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제철 도치나 장치 등을 활용한 생선찜과 탕 역시 동해안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메뉴다. 바다와 산이 가까운 지역인 만큼 계절마다 맛볼 수 있는 재료가 달라지는 점도 고성 여행의 즐거움이다. 오전에 산행을 마치고 점심으로 지역 음식을 맛본 뒤, 오후에는 해안이나 호수로 이동하면 하루 코스를 여유 있게 꾸릴 수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 연합뉴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 연합뉴스

고성에는 신선대 외에도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 많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통일전망대와 DMZ 박물관이 있다. 분단의 현실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석호인 송지호는 울창한 송림과 잔잔한 호수 풍경이 어우러져 산행과는 또 다른 여유를 준다. 송지호 철새관망타워에서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해변들은 동해 특유의 맑은 물빛을 품고 있어 사계절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고성에서 느끼는 금강산의 산세

화암사와 신선대는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뚜렷하게 달라진다. 봄에는 숲길의 새순과 야생화가 산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여름에는 짙어진 녹음이 그늘을 만들어준다. 가을에는 능선과 사찰 주변이 단풍으로 물들어 울산바위의 회색 암벽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겨울에는 바람이 매섭지만, 맑은 날이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동해와 산줄기가 한층 또렷하게 보인다. 어느 계절에 찾더라도 산과 바다, 사찰이 함께 어우러지는 고성만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화암사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화암사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국토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주는 막연한 거리감은 이곳에 서는 순간 한결 가까워진다. 발 아래 놓인 흙과 바위, 눈앞에 펼쳐진 능선을 통해 남북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의 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웅장한 바위 절벽과 푸른 바다, 산사의 고요함이 어우러진 풍경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한다. 금강산의 남쪽 끝자락인 고성 신선봉은 담백한 산세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신선대의 너른 암반 위에 서면 북쪽으로는 신선봉이, 남쪽으로는 설악산 울산바위가 시야에 들어와 두 산줄기가 이어지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신선대 탐방은 여유를 두고 걷는 편이 좋다. 급경사 코스를 따라 빠르게 오르는 것도 좋지만, 산림치유 길을 천천히 걸으며 숲의 결을 살피는 시간이 이곳의 매력을 더 깊게 느끼게 한다. 산사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정상부에서 마주하는 탁 트인 시야, 동해와 울산바위가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은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한다.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고성 신선대에서 금강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보는 것도 좋겠다.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