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상징하던 카네이션 중심의 선물 문화가 실용적 선물과 여행 등 경험 소비 위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 속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전통적인 꽃 선물 대신 현금이나 실질적인 만족감을 주는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결과다. 여기에 중동 전쟁 여파로 인한 부자재 가격 상승과 수입 원가 부담까지 겹치면서 대목을 맞이해야 할 화훼 농가와 꽃집 상인들은 유례없는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반 토막 난 카네이션 거래량… ‘꽃보다 경험’으로 이동하는 민심
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산업센터의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올해 어버이날을 앞둔 기간의 카네이션 거래량은 기록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거래된 카네이션 절화(자른 꽃) 물량은 총 1만 6716속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집계된 3만 8183속과 비교했을 때 무려 56%나 감소한 수치로, 사실상 1년 만에 시장 수요가 절반 이하로 꺾인 셈이다.
이러한 급락의 배경에는 어버이날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가슴에 다는 빨간 카네이션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필수 매개체였다면, 최근에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현금이나 가전제품,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수요가 분산되었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외식이나 국내외 여행 등 '경험'을 선물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일회성 소비인 꽃에 대한 선호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화려함보다 가성비’… 꽃 선물 시장도 소형화·차별화 바람
수요가 줄어들자 꽃집 운영자들은 생존을 위한 전략 수정에 나섰다. 과거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대형 꽃다발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의 부담 없는 소형 상품이 주력 모델로 떠올랐다.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가볍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실속형 제품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장의 상인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단가를 낮춘 저가형 상품군을 강화하는 한편, 디자인 차별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30대 초반의 한 꽃집 운영자는 경기가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단가가 저렴한 상품 위주로 구성을 조정하고 있으며, 다른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중동 전쟁이 쏘아 올린 고물가… 부자재값 폭등에 상인들 사면초가
화훼 업계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내부적인 수요 감소만이 아니다. 외부적으로는 중동 전쟁 등 국제 정세 불안이 불러온 원가 상승 압박이 상인들의 목을 죄고 있다. 고유가 기조가 유지되면서 비닐, 포장 봉투, 리본 등 꽃 장식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부자재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안 오른 품목이 없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운영자는 비닐이나 포장 봉투 등 필수 소모품 가격이 전방위적으로 올랐다고 토로했으며, 또 다른 운영자는 고유가 여파로 부자재 가격이 예전보다 20~30%가량 폭등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 심리로 인해 판매가를 올리기 어려운 상인들에게 고스란히 수익성 악화라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과 물류비 상승 역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유통되는 카네이션의 상당량은 콜롬비아 등지에서 들여오는 수입산인데, 전쟁 여파와 운송 비용 상승으로 인해 수입 원가 자체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수입 물량을 주로 취급하는 한 상인은 수입 원가가 오르면서 판매 가격 설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위기의 화훼 산업, 구조적 변화에 대응해야
어버이날 대목을 통해 한 해 수익의 상당 부분을 기대했던 화훼 업계는 올해 유독 차가운 봄을 맞이하고 있다. 카네이션이라는 단일 품목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영업 방식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대외 경제 변수에 취약하다는 점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화훼 소비 패턴이 실용성과 경험 위주로 변화하는 흐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추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단순히 꽃을 판매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여행이나 외식 등 다른 경험 소비와 결합한 상품을 개발하거나 다양한 가격대의 기능성 상품을 선보이는 등 산업 전반의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어버이날 카네이션의 쇠퇴와 화훼 업계의 위기는 고물가 시대의 팍팍한 살림살이와 변화하는 가족 문화가 맞물려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고물가와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전통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노력과 실용을 쫓는 소비자의 요구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위한 업계의 시름은 당분간 깊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