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에서 시작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확산 우려를 키우고 있다.

7일 AP통신과 로이터통신, BBC 등에 따르면 대서양을 항해 중이던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 의심 사례가 발생해 현재까지 3명이 숨지고 최소 8명이 의심 환자로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선박에는 승객과 승무원 등 약 140여 명이 탑승해 있었으며 남극과 남대서양 일대를 도는 항로를 운항하던 중 감염이 발생했다. 첫 환자는 지난 4월 초 발열과 두통, 설사 증상을 보이다가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네덜란드 국적 남성으로 파악됐다. 이후 그의 배우자와 독일 국적 승객 등 추가 사망자가 잇따르면서 집단 감염 사태로 번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네덜란드인 2명과 독일인 1명 등 총 3명이다. 의심 환자 8명 가운데 일부는 이미 스위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6일에는 중증 환자 2명을 포함한 3명이 추가로 하선해 구급 항공편으로 네덜란드로 이송됐다.
당초 이 크루즈선은 서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인근 해역에 정박했지만 현지 당국이 공중보건 위험을 이유로 입항을 거부하면서 한 달 가까이 바다 위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스페인이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카나리아 제도 입항을 허가하면서 선박은 현재 해당 지역으로 이동 중이다.
선내 감염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초기 환자가 크루즈 탑승 전 남미 지역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일부 환자는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야생동물 탐사 활동을 한 뒤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와는 다르다”…WHO, 확산 위험 선 긋기
집단 감염 소식이 알려지면서 코로나19 초기 크루즈 집단 감염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WHO는 선을 그었다. 한타바이러스가 심각한 감염병인 것은 맞지만 코로나19처럼 일상적 대화나 기침, 재채기만으로 빠르게 번지는 바이러스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현 단계로선 전반적인 공공 보건 위험이 여전히 낮다”고 밝혔다. 그는 운항사와 협력해 승객과 승무원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각국 당국과 함께 이미 하선한 승객들에 대한 의료 모니터링과 후속 조치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WHO 유행병관리국장 머라이어 밴 커코브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 간 전파에서 말하는 ‘밀접 접촉’은 객실을 함께 쓰거나 의료 돌봄을 제공하는 경우처럼 매우 가까운 신체 접촉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코로나19나 인플루엔자와는 크게 다르다”고 밝혔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대규모 확산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한타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 배설물, 타액 등에 오염된 먼지나 환경에 노출될 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번 사태에서는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안데스 변종이 일부 환자에게서 확인돼 보건당국이 추가 전파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아공에서 치료 중인 환자와 스위스 취리히에서 치료 중인 환자에게서 해당 변종이 확인됐고 WHO 당국자도 카보베르데, 남아공, 스위스에서 채취한 샘플에서 같은 변종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밀폐된 공간 영향 컸다”…크루즈 특수 환경 변수
이번 사태가 더 크게 주목받은 이유는 감염병 자체보다 크루즈선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선박은 승객과 승무원이 객실, 식당, 복도, 의료공간 등을 공유하며 장기간 이동하는 구조라 밀접 접촉 가능성이 일반적인 생활공간보다 높다. 특히 이번 선박은 남극과 남대서양의 외딴 섬을 거치는 장거리 항해 중이었고 중간에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의료 대응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업체가 운영하는 탐험형 크루즈선 ‘혼디우스호(MV 혼디우스)’는 지난 4월 1일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를 출항해 남극 대륙 본토와 사우스조지아섬, 나이팅게일섬 등 오지를 도는 항로를 운항했다. 이후 카보베르데 프라이아 앞바다에 정박했지만 카보베르데 당국은 공중보건 위협 등을 이유로 입항을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스페인이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카나리아 제도 입항을 허가하면서 선박은 테네리페로 이동하게 됐다.
현재 선박에는 승객과 승무원 약 140여 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보건당국은 남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현재로선 한타바이러스 증상이 없다고 설명했다. 카나리아 제도 도착 이후 스페인 국적 승객 14명은 마드리드 군병원에 격리하고 다른 국적 승객은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현지 반발도 있다. 카나리아 제도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의 입항 허가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며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감염 위험이 낮다는 WHO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이미 3명 나온 상황이라 현지 주민과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한타바이러스는 무엇인가…초기엔 감기처럼 시작
한타바이러스는 쥐 등 설치류가 보유한 바이러스로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이나 배설물, 타액 등에 오염된 먼지를 들이마시거나 접촉할 때 사람에게 전파되는 감염병이다. 일반적인 호흡기 바이러스와 달리 사람 간 전파는 매우 제한적이며 코로나19처럼 일상적인 접촉만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유형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바이러스는 한국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열 환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연구가 시작됐고 1976년 이호왕 박사가 한탄강 유역 들쥐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해내며 ‘한탄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같은 계열 바이러스 전체를 통칭해 ‘한타바이러스’로 부르게 됐다.
증상은 초기에 감기나 독감과 비슷하게 시작된다. 발열과 두통, 근육통, 피로감, 위장장애 등이 나타나며 일상적인 질환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며칠 사이 급성 폐렴과 호흡부전으로 빠르게 악화될 수 있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치명률은 최대 40%에 이를 정도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형태도 다르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주로 신장 기능에 영향을 주는 ‘신증후군 출혈열’ 형태로 나타나는 반면 남미에서는 폐를 공격하는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이 주로 발생해 더 위험한 양상을 보인다.
이번 크루즈선 사례에서 주목되는 이유는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안데스 변종’ 때문이다. 이 변종은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남미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형으로 드물지만 밀접 접촉 시 사람 간 감염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객실을 함께 쓰거나 돌봄 과정처럼 매우 가까운 접촉이 있어야 전파되는 만큼 대규모 확산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잠복기는 보통 2주에서 3주 정도로 비교적 긴 편이며 증상이 나타난 뒤 전파 위험이 커지는 특징이 있다. WHO는 이번 사태의 첫 환자 역시 크루즈선 내 감염이 아니라 승선 전 남미 지역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년 일정 수준의 환자가 발생한다. 특히 야외 활동이 많은 봄과 가을철 농촌 지역에서 감염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며 등줄쥐가 주요 매개체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야외 활동 후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설치류 접촉 차단 등 기본적인 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