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그라운드를 덮친 순간, 경기도 관중도 모두 멈췄다.

지난 6일 오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의 경기가 느닷없이 중단됐다. 원인은 야구장 외부 쓰레기장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1만 2531명의 관중이 들어찬 구장 안으로 연기가 밀려들면서 경기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7회초 그라운드를 덮친 연기
롯데가 6-1로 앞선 7회초였다. 선두타자 빅터 레이예스가 2루타를 치며 추가 득점 기회를 만든 상황, 갑자기 김갑수 주심이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이때 시간은 오후 8시22분.
구장 외부에서 발생한 화재 연기가 그라운드 안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연기는 1루 관중석과 외야 쪽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졌다. 경기장 내부는 점차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변했고, 팬들은 웅성거렸다. 일부는 자리를 피해 이동했다.
KT 구단은 전광판을 통해 "야구장 외부 쓰레기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구장 안으로 유입됐다"고 안내했다. 소방 신고와 함께 구단의 초동 조치가 이뤄지면서 불은 비교적 빠르게 진화됐다. 그러나 연기가 좀처럼 걷히지 않아 선수단과 관중은 약 20분간 대기해야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의 담배꽁초

이날 경기장 내 매점 아르바이트생이 남긴 안내 문구도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알바생도 대피했습니다 살고 봐야죠 일단"이라는 문장은 웃음을 자아기면서도 당시 현장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현명한 알마생" "피하는 게 맞다" "그렇지 그렇지 생명보다 소중한 건 없다" "상황판단 goat" "그래도 아무도 안 훔쳐가는 대한민국" "이게 맞다...일단 살고 봐야지"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담배꽁초, 왜 이렇게 위험한가
담배꽁초가 화재의 원인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위험성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제기됐다. 작은 꽁초 하나가 어떻게 수만 명이 입장한 야구장을 마비시키는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핵심은 온도다. 피우고 있는 담배 끝부분의 온도는 700~800도에 달한다. 꽁초를 버린 직후에도 중심부는 200~300도 이상의 온도를 상당 시간 유지한다. 눈에 보이는 불꽃이 없다고 해서 불씨가 꺼진 것이 아니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무염 연소'다. 불꽃 없이 서서히 타들어 가는 현상으로, 주변의 마른 잎, 종이, 먼지, 비닐 등에 지속적으로 열을 축적시키다가 산소 공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뤄지는 순간 순식간에 발화한다. 쓰레기통 내부처럼 가연성 물질이 밀집한 공간에서는 이 과정이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또 하나 주목할 변수는 시간이다. 꽁초를 투척한 직후 즉시 불이 붙는 경우는 드물다. 발화까지 10분에서 1시간 이상의 잠복기를 거치는 경우가 많아, 화재가 발생해도 원인 파악과 최초 발견이 늦어지기 쉽다. 이번 사고 역시 경기 중 갑작스럽게 연기가 유입된 것은 그 잠복기가 지난 시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풍속과 습도도 화재 확산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바람이 강할수록 산소가 지속 공급돼 불씨가 살아나고, 주변으로 빠르게 번진다. 습도가 낮을수록 주변 물질의 발화점이 낮아져 불이 옮겨 붙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쓰레기장, 고층 베란다, 풀밭…꽁초 화재의 주요 경로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는 특정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야외 풀밭이나 산에서는 대기가 건조한 봄·가을철이 가장 위험하다. 습도가 50% 이하일 때 낙엽이나 마른 풀에 꽁초가 닿고 바람이 더해지면 불꽃으로 살아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대형 산불의 상당수가 담배꽁초에서 출발하는 이유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으로 꽁초를 던지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낙하하는 동안 공기와 마찰하면서 불씨가 오히려 강해진다. 아래층 세탁물, 실외기 주변에 쌓인 먼지, 쓰레기 수거함 등으로 떨어질 경우 즉각적인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쓰레기통이나 쓰레기장에 완전히 꺼지지 않은 꽁초를 버리는 것도 동일한 위험을 내포한다. 내부의 종이, 비닐, 음식물 포장재 등은 열이 가해지면 최초에는 연기만 발생하다가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는 순간 화염으로 전환된다. 이번 KT위즈파크 사고와 가장 유사한 경로다.

경기는 재개됐지만, 파장은 남아
연기가 걷힌 후 경기는 재개됐다. 그러나 이날 사고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 어렵다. 1만 명이 넘는 관중이 화재 연기에 노출됐고, 진행 중인 프로야구 경기가 중단됐다. 야구장이라는 밀집 공간에서의 화재 대응 매뉴얼과 쓰레기 관리 체계에 대한 점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T 구단은 초동 대응을 통해 화재를 빠르게 진화했다고 밝혔지만, 연기가 구장 안으로 유입되는 상황 자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사전 예방 측면의 허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야구장 외부 쓰레기장은 일반 관람객과 내부 직원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담배꽁초 투기는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사고가 구장 내 흡연 관리와 쓰레기장 출입 통제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지 여부는 KT 구단의 후속 조치에 달려 있다.
이날 경기는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롯데는 우완 선발 제러미 비슬리의 6이닝 1실점 호투와 나승엽의 대형 2점 홈런을 앞세워 kt를 제압했다. 경기는 최종 스코어 8-1로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