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줄짜리 고민 글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제목은 ‘속쓸로 45억원 벌었는데 퇴사해도 될까’. 안전보건공단 재직자로 표시된 글쓴이는 "세금 뗄 것 다 떼고 부부 합산 45억 원 정도 벌었으면 그냥 퇴사할까? 30대 중반이다"라고 적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지금 회사를 그만둬도 되느냐는 것이다.
'속쓸'의 정체
글쓴이가 수익의 원천으로 밝힌 '속쓸'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레버리지 ETF인 SOXL을 뜻한다. 티커를 그대로 읽은 국내 투자자들 사이의 별칭이다. 하락장에서 속이 쓰리다는 중의적 의미도 담겼다.
SOXL의 정식 명칭은 '다이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셰어스(Direxion Daily Semiconductor Bull 3X Shares)'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하루 변동률을 3배로 추종하는 구조다. 지수가 하루 1% 오르면 약 3% 상승하고 1% 하락하면 약 3% 손실이 발생한다.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퀄컴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 30개가 편입돼 있어 AI 반도체 업황 전반에 대한 고위험 베팅 상품으로 분류된다. 운용사는 다이렉시온이며 2010년 3월 상장됐다. 운용보수는 연 0.94%로 일반 ETF에 비해 높은 편이다.
SOXL이 국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건 AI 반도체 호황과 맞물리면서다. 2025년 4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충격과 AI 거품론이 겹치며 SOXL 가격이 10달러 아래로 폭락하는 공포 구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반도체 업황이 급반전하면서 이달 기준 127달러대까지 치솟았다. 저점에서 매수한 투자자라면 1년 남짓 만에 1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45억원이라는 숫자가 허황된 것만은 아닌 이유다.
"퇴사하라" vs "다니라"
댓글 여론은 대체로 "퇴사해도 된다"는 쪽으로 모였다. LG화학 재직자는 "1년에 1억 원을 써도 45년인데 굳이 다녀야 하느냐"고 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재직자는 "왜 다님?"이라고 단칼에 잘랐다. SK하이닉스 재직자는 "시간도 돈이다. 돈은 벌어놨으니 시간을 너한테 쓰라"고 했다. 한국가스공사 재직자는 "회사를 평생 다녀도 20억원을 실수령하기 힘들다"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 재직자는 "예금이자 2.5%만 잡아도 연 1억원을 벌 수 있는 돈인데 어떻게 45억원을 벌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자산 운용 방안을 제시하는 댓글도 구체적이었다. 삼성전자 재직자는 30억원은 SCHD 같은 배당주에 묻어두고, 10억원으로 주식 계좌를 돌리고, 나머지 5억원으로 생활비를 쓰되 회사는 그냥 취미로 다니라는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LG화학 재직자는 "44억 원을 금융주에 넣어 배당금 4%만 받아도 세전 1억8000만원"이라며 "쓴 돈이 자동으로 복구된다"고 했다.
반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퇴사를 만류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삼성전자 재직자는 "회사 다니면 세금 처리하기 용이하니 그냥 다니라. 스트레스 없이"라고 했고, 현대건설 재직자는 "지역 의료보험료 내게 되면 되게 아깝다"며 건강보험료 문제를 짚었다. 퇴사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재산과 소득을 합산해 건보료가 크게 오를 수 있어서다. 또 다른 재직자는 아예 "4대보험 들어갈 정도의 최소한으로 일하라"라며 절충안을 내놓기도 했다.
고수익 뒤 고위험 구조
SOXL은 대표적인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이다. 하루 기준 3배 추종 구조 특성상 변동성이 극심하고, 시장이 횡보하거나 등락을 반복할 경우 장기 수익률이 기대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다. 레버리지 ETF 특유의 이른바 '변동성 잠식(Volatility Drag)' 현상 때문이다. 실제로 5년간 성과를 분석해보면 SOXL은 높은 변동성과 수수료 부담으로 비레버리지 상품인 SOXX나 S&P 500 지수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한 구간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이 SOXL을 "단기 트레이딩 목적으로 설계된 상품"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리스크도 상존한다.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으로, 관세 정책이나 수출 규제 변화에 따라 반도체 지수가 하루아침에 급락할 수 있다. 한 블라인드 댓글도 이 지점을 짚으며 "레버리지 안 할 거면 퇴사해도 된다. 계속할 거면 평생 다녀야 한다"라고 말했다.
예외적 사례가 던진 질문
30대 중반에 세후 45억원을 확보한 사례는 일반적인 직장인 경로에서는 드물다. 이 때문에 해당 글은 단순한 개인 고민을 넘어 "얼마가 있어야 일을 그만둘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됐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40·50대의 90.5%가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제로 준비가 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37.3%에 그쳤다. 노후 준비 수단으로는 공적연금이 69.5%로 가장 많았고, 개인연금 활용 비율은 6.8%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