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는 밥상] 사약을 마시면 진짜 죽을까?

2026-05-04 08:37

사약 18사발을 마셔도 죽지 않은 조선의 호걸들
독에 내성이 생겼다? 사약 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실화

폼나는 밥상

[역사 속 비화] "한 잔 더 없느냐"… 사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은 조선의 기인들

사극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사약은 흔히 마시자마자 피를 토하며 즉사하는 강렬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을 들여다보면 사약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집행 현장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사약은 임금이 내리는 마지막 배려이자 특별한 형벌이었지만, 체질과 운송 환경 등에 따라 약효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입니다.

■ "18사발도 모자라다"… 호걸 임형수의 기개

중종 시절의 호걸로 불렸던 임형수의 사례는 사약의 효능이 얼마나 불확실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에피소드입니다.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게 된 그는 사약을 가져온 관리에게 "같이 한 잔하지 못해 아쉽다"며 농담을 던질 정도로 대범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무려 18사발이나 되는 사약을 연달아 비우고도 멀쩡히 살아 있었습니다.

약효가 듣지 않자 그는 오히려 집행관들에게 "혀를 빼고 흉하게 죽기 싫으니 벽 구멍으로 밧줄을 넣어 목을 당겨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임형수는 자신의 목 대신 목침에 밧줄을 거는 장난을 치며,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 강직한 기개는 훗날 퇴계 이황이 그리워하며 기록으로 남길 정도였습니다.

■ "독에도 내성이 있다"… 83세 노장 송시열

조선 후기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송시열 또한 사약 앞에서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과거 병을 고치기 위해 비상을 약으로 복용해온 탓에 이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약 두 그릇을 마시고도 끄떡없이 버티자, 당대 최고의 거물을 교살(목을 졸라 죽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금부도사는 "대감 어르신, 제발 죽어주십시오"라며 부탁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국 송시열은 입안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세 사발을 연속으로 마신 뒤에야 비로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 고양이 덕분에 살았다? 기적의 생존자 박상

사약이 배달되는 길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연산군 시절, 아끼던 애첩의 아버지를 처벌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사약을 받게 된 눌재 박상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사약을 받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난 들고양이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고, 고양이를 따라가다 보니 사약을 들고 오던 금부도사와 길이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박상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 맺음말

왕이 하사한 약이라는 뜻의 사약(賜藥)은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게 하려는 국왕의 마지막 예우였습니다. 비록 제조법과 체질에 따라 약효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돌발 상황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 죽음의 순간마저 풍자와 여유로 승화시켰던 선조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home 허지혜 기자 hzezze04@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