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가면 또 간다” 대만인들이 너도나도 '부산병'에 걸린 이유

2026-04-29 16:24

대만 여행객 “일본 대신 부산”... 가성비와 K컬처에 중독되다

블루라인파크 / 뉴스1
블루라인파크 / 뉴스1

해운대 해변을 걷다가 주변을 둘러봤더니 들리는 말이 전부 중국어였다. 대만 여행 블로거 한 명이 쓴 후기다. "순간 대만에 있는 줄 착각했다." 과장이 아니다. 요즘 부산 곳곳에서 대만 여행자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대만에 본사를 둔 글로벌 여행 플랫폼 KKday가 발표한 '2025년 대만 여행객 여행 선호도 인사이트'에 따르면, 부산은 대만인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 종합 순위에서 오사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오키나와, 도쿄, 홋카이도, 교토, 서울, 홍콩, 마카오, 방콕을 모두 제쳤다. 더 놀라운 건 3일 이하 단기 여행 부문에서는 당당히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대만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부산병'이 번지고 있다. 한 번 부산에 다녀오면 또 가고 싶어지는 그 병 말이다.

비행기 타고 2시간 15분, 그리고 "여기 왠지 익숙한데?"

대만 여행자들이 부산에 처음 내리면 묘한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만 여행 블로거들 사이에서 부산은 "한국판 가오슝, 영국의 리버풀 같은 항구도시"로 자주 묘사된다. 바다를 낀 항구도시라는 지형적 유사성, 서울과는 달리 크고 털털한 항구 사람들의 기질, 산과 바다가 맞닿은 풍경이 대만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친근함을 준다는 것이다.

영도구에서 바라본 부산항 북항. / 부산시
영도구에서 바라본 부산항 북항. / 부산시

실제로 대만에서 부산까지 비행 시간은 고작 2시간 15분이다. 타이베이와 가오슝 모두에서 직항이 떠 있다. 화항(華航), 장영항공(長榮),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 외에도 부산항공, 제주항공, 대만 타이거항공 등 저가항공도 속속 취항하면서 선택지가 대폭 늘었다. 부산항공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타이베이와 가오슝 노선에서 대만 여행객 비중이 70~80%를 넘는다. 이 노선은 사실상 '대만인 전용 하늘길'이 됐다. 비자도 필요 없다. 대만 여권 소지자는 오는 12월 31일까지 K-ETA(대한민국 전자여행허가) 없이 무비자로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KKday는 직항 노선의 접근성과 도심 내 관광 동선이 짧은 구조가 부산의 경쟁력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1주일에 1만 5000 대만달러, 일본보다 압도적으로 싸다

부산이 대만인들을 반복 방문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돈이다. 대만 여행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후기를 보면, 왕복 항공권과 숙박, 식비를 모두 합쳐 1주일 여행에 1만 5000 대만달러(약 70만원)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경험담이 즐비하다. 항공권은 5000 대만달러 이하로 잡을 수 있고, 하룻밤 숙박도 800 대만달러면 깔끔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여행사 패키지 중에는 항공 포함 5박 기준으로 8000 대만달러 초반대 상품도 등장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 부산시
부산 감천문화마을. / 부산시

한국 현지 물가도 기대 이상이다. 부산의 돼지국밥 한 그릇이 한화 7000원이고, 해산물을 포함한 식사도 한화 2만 원 정도면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서울보다도 숙박, 교통, 식비 전반이 저렴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여행업계는 일본과 한국의 단체 여행 요금이 전년 대비 약 20% 내린 가운데 특히 부산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은 물가가 치솟으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이 대만 여행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그 반사이익을 부산이 온몸으로 받고 있다.

K컬처 체험부터 캡슐 열차까지... 볼거리가 한 도시에

가성비 하나만으로는 대만인들의 반복 방문을 설명하기 어렵다. KKday는 대만 여행 시장이 단순 관광에서 벗어나 현지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 부산은 그 흐름을 정확히 타고 있다. 한국식 댄스 스튜디오 체험, 한국식 증명사진 촬영, 메이크업·헤어 스타일링, 퍼스널 컬러 진단 등 K컬처 기반 체험형 콘텐츠가 대만 MZ세대의 단기·재방문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 기존 관광 명소들도 건재하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1층에서 해산물을 골라 2층에서 바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데, 중국어가 통하는 직원이 있어 흥정도 가능하다고 대만 블로거들은 전한다. 100번 좌판이 대만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부산 마린시티와 광안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는 나이트 리버 크루즈. / 부산관광공사
부산 마린시티와 광안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는 나이트 리버 크루즈. / 부산관광공사
해운대의 '블루라인파크' 캡슐 열차는 시속 4km의 느린 속도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며 바다를 조망하는데, 매주 화요일 예약 오픈 직후 매진된다. 감천문화마을은 대만 여행 매체에서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명으로 소개되며 SNS 인증샷 명소로 자리 잡았다. 부산시가 발행하는 '비짓 부산 패스(Visit Busan Pass)'도 인기를 끌고 있다. 48시간 통행증으로 롯데 월드, 스카이라인 루지, 캡슐 열차, 송도 해상 케이블카 등 수십 개 관광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대만 여행 블로거 실측 기준 최대 3843 대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후기도 나왔다.

돼지국밥부터 미슐랭까지... 대만인 입맛 저격한 부산 먹거리

부산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음식이다. 자갈치 시장의 킹크랩, 기장시장의 대게, 해운대 전통시장의 장어구이, 그리고 어묵까지. 대만 여행 매체들은 부산의 필수 먹거리로 돼지국밥, 씨앗 호떡, 어묵, 비빔당면, 동래파전, 장어구이 등을 꼽는다. 특히 어묵의 발원지가 부산이라는 점, 남포동 BIFF광장의 견과류 호떡도 부산이 원조라는 사실이 대만 여행 블로그에 자주 소개된다. 미슐랭 가이드가 2024년 처음으로 부산 편을 발행한 사실도 대만 미식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쇼핑도 빠지지 않는다. 서면 상권, 남포동, 해운대, 광안리까지 4개의 대형 쇼핑 거점이 펼쳐지고, 롯데백화점 면세 쇼핑도 대만 여행자들이 자주 활용하는 코스다. 한 대만 여행 블로거는 부산 롯데백화점에서 MCM 가방을 대만 전문점 가격보다 훨씬 싸게 샀다며 구매 금액까지 상세히 공개해 화제가 됐다.

"몇 번 가도 새롭다" 부산은 반복 여행의 도시

부산이 대만인들 사이에서 중독성 있는 도시로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는 반복 방문해도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KKday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만인의 20% 이상이 연 4회 이상 해외여행을 했으며, 중소 도시와 개인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일정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부산은 그 수요를 정확히 흡수하고 있다. 대만 여행 블로거들은 "처음에는 해운대와 자갈치 시장으로 기본 코스를 밟고, 두 번째 방문부터 영도, 기장, 통영, 경주 등 근교로 시야를 넓히게 된다"고 전한다. KTX를 타면 1시간이면 경주, 대구까지 닿는다. 부산 자체가 여러 번 방문해도 다 소화하기 어려운 도시라는 뜻이다. 실제로 한 대만 여행 블로거는 지난해 봄 가족과 함께 부산에 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2주 넘게 머물렀다고 썼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11월 부산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334만 9000여 명이었는데, 이 중 대만 관광객이 약 62만 8000명으로 국가별 방문객 수 1위를 기록했다. 부산병은 한동안 낫지 않을 것 같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