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 지형을 이끄는 500대 기업 대표이사들의 거주지가 서울 강남권과 용산, 성남 분당 등 특정 지역에 압축적으로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대표이사 10명 중 9명이 수도권에 둥지를 틀었으며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신축 대단지인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단일 단지 기준 가장 많은 최고경영자(CEO)를 확보하며 새로운 ‘부촌 지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대한민국 부의 재편과 수도권 집중 현상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법인등기부등본에 명시된 500대 기업 대표이사 640명의 주소지를 전수 조사한 결과 수도권 거주 비중은 91.6%에 달했다. 서울 거주자가 429명으로 전체의 67.0%를 차지했고 경기 152명, 인천 5명 순으로 집계됐다. 비수도권 거주자는 54명에 불과해 경제 권력의 서울 집중화가 주거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 내에서는 이른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 전체의 50.2%인 321명이 몰려 살고 있다. 강남구가 107명으로 가장 높은 밀도를 보였으며 서초구 73명, 용산구 56명, 송파구 36명이 뒤를 이었다. 경기도에서는 성남시 분당구가 49명으로 가장 많아 대기업 대표들이 선호하는 전통적 부촌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동별 거주지 분포를 보면 서초구 반포동과 서초동이 각각 25명으로 공동 1위에 올랐다. 용산구 한남동 24명, 강남구 대치동 20명, 송파구 잠실동 17명 순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입주가 이어지면서 전통적인 평창동이나 성북동 같은 단독주택 밀집 지역보다 커뮤니티 시설과 보안이 강화된 대단지 아파트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다. 실제 비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대표이사가 거주하는 부산(11명)조차 서울의 특정 동 단위 거주자 수보다 적어 지역 균형 발전의 격차를 실감케 했다.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개포와 전통의 한남
가장 많은 대표이사가 거주하는 단일 단지는 강남구 개포동 소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총 6702세대 대규모 재건축 단지)다. 이곳에는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 최수연 네이버 사장 등 11명이 거주 중이다. 과거 도곡동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가 가졌던 상징성을 개포동의 초대형 신축 단지가 이어받은 형국이다.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에는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강대현 넥슨코리아 대표 등 8명이 살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는 7명,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은 5명의 대표이사를 입주자로 두고 있어 여전히 건재한 인기를 증명했다.
경기 지역에서 유일하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판교푸르지오그랑블(성남 분당구 소재)에는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등 4명이 거주한다. 이는 IT 및 금융 거점인 판교와 분당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외국인 대표이사들의 경우 주거 형태가 사뭇 다르다. 무뇨스 바르셀로 호세 안토니오 현대자동차 사장은 조선팰리스서울강남 호텔을 거주지로 등록했다. 유지 야마사키 노무라금융투자 대표는 그랜드머큐어앰배서더, 저우유 오비맥주 대표는 노보텔앰배서더서울강남에 머물고 있다. 보안과 서비스가 철저한 고급 호텔 레지던스(취사가 가능한 숙박 시설)를 선호하는 외국인 경영진의 주거 트렌드가 반영된 대목이다.
직주근접과 보안 중심의 주거지 선택 변화

대표이사들의 주거지 선택 기준은 점차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것)과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호로 수렴되고 있다. 최근 5년 사이 강남권 대표이사 거주 비율은 약 15% 상승했는데 이는 강남권에 본사를 둔 기업이 늘어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출퇴근 시간의 교통 체증이 심화되면서 도로 위에서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려는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보통신(IT) 및 바이오 기업 대표들은 테헤란로나 판교 테크노밸리에 인접한 서초동, 역삼동, 분당 일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신축 단지에 도입된 고도화된 보안 시스템도 주요 요인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외부인 출입 통제와 전용 엘리베이터 시스템은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고위 경영진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실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택을 선정하거나 거주지를 추천할 때 스마트 홈 보안 등급과 단지 내 프라이빗 커뮤니티 운영 여부를 최우선 순위로 고려한다. 지방에 본사를 둔 기업이라 하더라도 대표이사는 서울에 거주하며 주중에는 본사 근처 숙소를 이용하는 '이중 거주' 형태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다. 이는 수도권의 인프라와 교육, 네트워크 환경이 경영 활동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