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 속 행위가 북한에서는 공개 총살로 이어진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공개됐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사람이 처형되는 나라. 믿기 힘들지만 이 모든 사실이 국제 인권단체의 체계적인 조사와 탈북민들의 직접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김정은 집권 13년, 확인된 처형자만 358명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탈북민 증언과 북한 전문 매체 보도를 분석해 28일 공개한 '코로나19 팬데믹 전과 후 북한의 처형 매핑—김정은 정권 하 13년간의 사형'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1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약 13년 동안 최소 136회의 사형이 집행됐으며 총 358명이 처형된 것으로 집계됐다.
숫자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 심각한 건 그 추세다. 2020년 1월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를 기점으로 전후 5년을 비교했을 때, 사형 집행 횟수는 30회에서 65회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처형 인원은 44명에서 153명으로 3.5배 가까이 급증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국경이 닫히자, 공포 정치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 닫히자...사형 사유 1위 바뀌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 이전까지 북한에서 사형으로 이어지는 가장 흔한 죄목은 살인 등 강력범죄였다. 그런데 봉쇄 이후 이 구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국경 봉쇄 이후 고의살인·과실치사 등 강력범죄로 인해 집행된 사형은 44.4% 줄어들었으나, 한국 가요(K-팝)·영화·드라마 시청이나 콘텐츠 유통, 종교 및 미신 행위를 이유로 한 처형은 250% 증가했다.
봉쇄 후에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 '외부 문화'를 접하거나 종교 및 미신 행위를 했다는 이유가 14회로 사형 사유 중 가장 많았다.
"남한 드라마 3편·K팝 70곡 유포했다고 공개총살"…탈북민 직접 증언
2023년 5월 일가족과 함께 어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탈북한 김일혁 씨는 "제가 알고 지내던 22세 남자애는 남한 드라마 3편과 K팝 노래 70여 곡을 유포했다는 죄로 공개총살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석 달에 두 번꼴로 공개총살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한 번에 12명씩 죽였다"고 말했다.
단 3편의 드라마, 70곡의 노래. 22살 청년의 목숨과 맞바꾼 죄목이었다.
실제로 2022년에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유포한 한 10대 청소년이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며, 2023년에도 한국 영상을 시청한 무역회사 직원이 공개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가 발간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는 더욱 생생한 증언이 담겼다. 2023년 목선을 타고 동해로 입국한 탈북민은 지인 3명이 남한 드라마 시청으로 현장에서 체포돼 처형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제가 살았던 지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평양, 평성, 함흥, 청진 등 여러 지역에서 영화·드라마 사건으로 인해 처형당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며, "우리한테는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10대도 예외 없다…비행장 활주로에서 즉결 총살
2022년 12월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지난 10월 혜산시에서 10대 학생 3명이 공개처형됐다"고 전했다. 처형된 학생들은 남한 영화와 영상물을 시청하고 유포한 학생 2명과 살인을 저지른 학생 1명이었다.
공개처형은 혜산 비행장 활주로에서 진행됐으며, 당국은 혜산 주민들을 활주로에 집합시킨 뒤 10대 학생들을 공개 재판장에 세워놓고 사형 판결을 내린 다음 즉시 총살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 체제에 반하는 서적이나 영상물 등을 단속하는 82연합지휘부는 주민들 중에 조사원을 심어놓는 방식으로 단속을 벌인다. 일반 주민으로 위장한 조사원이 직접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구매하면서 유포·판매자를 추적해 보고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처형된 학생들도 이러한 함정수사에 걸려든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법으로 만든 죽음 —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탄생
북한 당국은 공포 통치를 위해 법적 근거까지 마련했다.
북한은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한국 콘텐츠를 '인민의 혁명 의식을 마비시키는 썩은 사상'으로 규정했다. 한국 드라마·영화·음악 시청 또는 소지 시 5년에서 15년의 강제노동을 부과하며, 특히 대량의 콘텐츠를 유포하고 집단 시청을 조직하면 사형을 포함한 중형을 부과한다.
2018년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에 남한 가수를 초청해 직접 공연을 관람하기까지 했던 김정은이, 2020년 12월에는 이른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류 드라마·영화를 금지하고,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추가 제정하는 등 탄압을 이어오고 있다.
BTS 공연을 직접 관람했던 지도자가, 불과 2년 만에 한류 콘텐츠를 본 주민을 총살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2025년 탈북민 25명을 대상으로 개별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 결과 북한 정부는 외국 매체 접근 행위 단속을 목적으로 특수 법집행 부대 '109(백공구)상무'를 편성했으며, 이 부대는 가택과 거리에서 가방과 휴대전화를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참여자 15명이 109상무를 언급했다.

"돈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다"…극명한 불평등
국제앰네스티 인터뷰에 응한 탈북민 김준식(가명·28·2019년 탈북) 씨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시청 당시 적발됐지만 가족과 당국자와의 연줄로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고등학생들이 잡히면 가족이 돈이 있는 경우 그냥 경고만 받는다. 우리는 연줄이 있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씨 여동생의 고등학교 친구 3명은 201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 시청을 이유로 노동교화소에서 수년형을 선고받았다. 뇌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법은 있지만 권력과 돈이 있으면 피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목숨으로 값을 치르는 구조다.
가족까지 강제 참관…공개총살의 잔혹한 방식
TJWG 보고서는 처형 방식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했다.
처형은 대부분 공개적으로 집행됐다. 사형 방법은 확인된 111회 중 107회(96.4%)가 소총이나 기관총을 사용한 총살형이었으며, 교수형이나 쇠몽둥이·망치 등을 사용한 잔혹한 방식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처형 현장에는 일반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 탈북민 김은주(가명·40·2019년 탈북) 씨는 "우리가 16~17세 중학생이었을 때 당국이 처형장으로 데려가 모두 보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한국 매체를 시청하거나 유포했다는 이유로 처형됐고, 이는 '네가 보면 너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사상 교육이었다"고 증언했다.
처형된 이의 가족들도 현장에 끌려와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국은 시신조차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조치다.
전국 46곳에 처형 장소…김정은 집무실 인근에도
보고서는 김정은 집권 13년 동안 처형이 집행된 장소로 46곳을 식별했다.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된 이후 5년간 처형은 전국적으로 확산됐으며, 평양에서는 김정은 집무실로 알려진 노동당 본부청사 10km 반경 안에 5곳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도 한복판, 권력의 심장부 바로 옆에서도 처형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국가 시스템'임을 방증한다.
"남한 드라마는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약" 탈북민 인터뷰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한국 드라마를 보려 했을까.
한 탈북민은 "북한에서는 남한이 우리보다 훨씬 못산다고 배우지만 남한 드라마를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라며 "북한 당국이 그 점을 경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탈북민도 "남한 드라마는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약"이라고 표현했다.
드라마 한 편이 보여주는 한국의 평범한 일상, 자유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그 무엇보다 위험한 '사상 전복'이었던 것이다.
국제사회의 경고 — "북한의 디스토피아적 법, 폐지해야"
국제앰네스티의 사라 브룩스 동아시아 지역 부국장은 "(탈북민의) 증언은 북한이 한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법(dystopian laws)'을 어떻게 집행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북한 정부에 정보 접근권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존중·보호하고,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정보 접근 범죄화 법률의 폐지를 촉구했다.
TJWG의 이영환 대표 역시 "정권 4대 세습을 추구하며 문화 사상을 통제하고 정치적 지배를 위한 처형을 늘릴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