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고 4시간 걸려도 간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백패킹 성지'

2026-04-28 17:14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외딴 섬
대한민국 3대 백패킹 성지로 꼽히는 '인천 굴업도'

인천항에서 뱃길로 수 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서해의 작은 섬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현대 사회의 소음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고즈넉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최근 백패킹과 생태 관광의 명소로 급부상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수만 년의 세월이 깎아 만든 해안 절벽과 드넓게 펼쳐진 초원은 방문객들에게 비현실적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인천 굴업도.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인천 굴업도.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인천 굴업도는 옹진군 덕적면에 자리해 있다.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13km 떨어진 해상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섬의 전체 면적은 약 1.7㎢에 불과하다. 섬의 이름은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려 일하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 붙여졌다. 실제로 지형을 살펴보면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 끝이 툭 튀어나온 독특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굴업도는 지질학적으로도 화산 활동과 파도의 침식 작용이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섬 곳곳에는 파도에 깎여 나간 해식와와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다. 특히 섬의 서쪽은 완만한 초원이 발달한 반면, 동쪽과 북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형성돼 있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독창적인 풍광 덕분에 환경 전문가들과 여행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굴곡진 시간을 지나온 굴업도

굴업도.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굴업도.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굴업도는 고요한 풍경과는 달리 파란만장한 굴곡을 거쳐 왔다. 이곳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서해안 최대의 민어 산지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 척의 어선으로 불야성을 이뤘던 '민어 파시'(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923년 발생한 대태풍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 점차 쇠퇴하게 됐다.

현재 굴업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섬 서쪽 끝에 위치한 개머리언덕이다. 이곳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탁 트인 구릉지가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가을이면 허리 높이까지 자란 수리취와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능선을 따라 걷는 산책로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탁 트인 뷰를 자랑한다. 저녁 무렵 붉게 물드는 낙조와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가 굴업도의 백미로 꼽히기도 한다.

이 초원의 주인은 야생 사슴이다. 과거 주민들이 방목해 키우던 사슴들이 야생화돼 번식하면서 현재는 수십 마리의 사슴 떼가 언덕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슴들은 사람의 활동이 적은 새벽녘이나 해 질 녘에 가장 활발히 움직인다. 다만 수컷 사슴은 뿔이 있어 번식기 등 예민한 시기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 3대 백패킹 성지

개머리언덕.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개머리언덕.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굴업도는 '대한민국 3대 백패킹 성지'로 불릴 만큼 캠퍼들에게 독보적인 사랑을 받는 곳이다. 굴업도를 찾는 백패커 10명 중 9명이 선택하는 개머리언덕은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일몰과 일출을 한자리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밤이면 텐트 위로 은하수가 쏟아지고, 이른 아침에는 안개 속에서 풀을 뜯는 야생 사슴과 마주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수크령과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편리함을 선호한다면 마을 바로 앞의 큰말 해변을 추천한다. 고운 모래사장과 함께 마을 민박집, 공공화장실, 매점이 가까이 위치해 있어 비교적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개머리언덕까지 짐을 메고 올라가기 부담스러운 초보 백패커들이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기 좋다.

개머리언덕.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개머리언덕.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정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고요한 연평산과 덕물산 능선을 추천한다. 목기미 해변 너머에 위치한 두 산의 정상에 오르면 굴업도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발 128m의 연평산은 굴업도 최고의 조망처로 꼽힌다. 목기미 해변을 지나 연평산으로 접어들면 산세가 가팔라지며 거친 암릉 구간을 드러낸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거대한 파충류의 등줄기를 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바위 지형이 발달해 있다.

연평산과 마주 보고 있는 덕물산(138m)은 굴업도의 최고봉이다. 연평산보다 조금 더 듬직하며, 상대적으로 수풀이 우거져 있어 섬 특유의 생태계를 관찰하기에 적합하다. 산행 중에는 해풍을 견디며 자란 소나무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을 가장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만조 시 바닷물이 차올랐을 때와 간조 시 갯벌과 사구가 드러날 때의 풍경 차이가 확연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튜브, 여담

굴업도 가는 길

굴업도에 닿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다. 직항로가 없어 반드시 덕적도를 거쳐 가는 환승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행객들은 우선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이나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항에서 덕적도행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인천항 기준 쾌속선으로는 약 1시간 10분, 차도선으로는 약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덕적도에 도착한 후에는 섬들을 순회하는 차도선 '나래호'로 갈아타야 굴업도에 입도할 수 있다.

나래호 이용 시에는 날짜에 따른 운항 경로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홀숫날에는 문갑도를 거쳐 굴업도로 곧장 가기 때문에 약 1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짝숫날에는 주변 섬들을 거꾸로 돌아 마지막에 굴업도에 들르기 때문에 2시간 넘게 걸린다. 또 섬의 기상 상황에 따라 결항이 잦으므로 여행 전 반드시 해운사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운항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굴업도의 숨겨진 비경

굴업도에는 개머리언덕은 물론 숨겨진 비경이 가득하다. 섬의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목기미 해변은 양쪽에서 파도가 들이치는 독특한 지형으로, 과거 마을이 있었던 흔적인 전신주들이 모래 속에 파묻힌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해변 뒤쪽으로는 바람이 만들어낸 거대한 모래 언덕인 사구가 형성돼 있다. 이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고요함을 자아낸다.

목기미 해변과 맞닿은 토끼섬은 물이 빠지는 간조 때만 길이 열린다. 해안가 바위들이 파도에 깎여 나간 해식와가 국내 최대 규모로 발달해 있어 독특한 형태를 띤다. 특히 거대한 바위 밑둥이 깊게 파여 들어간 모습은 대자연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만 만조 시에는 길이 완전히 잠겨 고립될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물때표를 확인하고 이동해야 한다.

개머리언덕 아래편에는 붉은 모래 해변이 숨겨져 있다. 이 해변이 붉게 보이는 이유는 해안을 둘러싼 절벽과 바위들의 성분 때문이다. 굴업도는 과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섬인데, 이곳의 암석들은 산화철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공기와 물을 만나며 붉은색이나 갈색빛을 띠게 됐다.

해변 뒤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붉은 응회암 절벽은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기괴하고 웅장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짙은 붉은색 바위와 서해 특유의 푸른 바다, 절벽 위 초원의 초록색이 어우러져 강렬한 색채 대비를 보여준다. 붉은 모래 해변은 접근이 다소 까다로운 편이라 굴업도의 비밀해변이라 불린다.

마을 앞 큰말 해변에서 개머리언덕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능선을 타기 전 해안 절벽 아래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정식 탐방로가 아니라 길이 험한 구간이 많다. 특히 만조 시에는 길이 끊겨 접근이 불가능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이름은 '붉은 모래 해변'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고운 모래보다 붉은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굵은 모래와 작은 자갈들이 섞여 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붉은 자갈들이 굴러가며 내는 소리가 매우 독특하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만 들리는 완벽한 고립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해변 끝자락에는 파도가 깎아 만든 작은 해식동굴들과 코끼리 코를 닮은 기암괴석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개머리언덕 정상에서 보는 낙조도 훌륭하지만, 해질녘 붉은 절벽 아래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노을은 절벽의 색을 더욱 붉게 물들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글지도, 인천 굴업도

home 이서희 기자 sh0302@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