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아들이 쓴 편지, 아버지가 열어보기까지 '20년' 걸렸다 (영상)

2026-04-25 21:24

20년 만에 닿은 아들의 미완성 편지, 그리고 아버지의 통곡

봄이 오면 세상은 온통 화사한 꽃들로 일렁이지만, 누군가에게 이 계절은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통곡으로 터져 나오는 잔인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2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3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 현장은 서러운 눈물로 젖어 들었다. 2005년 군 복무 중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 한승우 이병의 아버지 한일석 씨가 20년 만에 발견된 아들의 편지에 답장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3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편지 낭독을 마친 故 한승우 이병의 아버지 한일석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26.4.24/뉴스1
김민석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3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편지 낭독을 마친 故 한승우 이병의 아버지 한일석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26.4.24/뉴스1

부치지 못한 아들의 편지, 20년의 기다림

한승우 이병은 생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 편지는 끝내 우체통에 닿지 못했다. 아들이 떠난 뒤 남겨진 유품 속에 잠들어 있던 이 미완성의 편지는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아버지의 손에 쥐어졌다.

기념식 단상에 오른 아버지 한일석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승우야, 하늘나라에서는 잘 지내고 있지." 운을 뗀 아버지는 곧이어 가슴 깊이 박혀 있던 통한의 고백을 쏟아냈다. 가난했던 시절, 아들이 먹고 싶어 하던 것 하나 제때 사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세월이 흘러도 가시지 않는 가시가 되어 목을 메게 했다.

유튜브 '국가보훈부'
유튜브 '국가보훈부'

금색 보자기에 싸둔 아들의 마지막 체취

아버지는 아들이 입대하던 날 입었던 옷을 차마 태울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옷은 20년 동안 금색 보자기에 싸여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에게 유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아들의 흔적이었다.

편지를 낭독하던 한 씨는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꽃비 내리는 4월을 보내며 절절한 그리움을 통곡으로 쓴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행사장 곳곳에서 참아왔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낭독을 마친 뒤에도 아버지는 한참을 서 있지 못했고, 곁에 있던 국무총리가 그를 부축해야 할 만큼 슬픔의 무게는 무거웠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3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편지 낭독을 마친 故 한승우 이병의 아버지 한일석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26.4.24/뉴스1
김민석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3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편지 낭독을 마친 故 한승우 이병의 아버지 한일석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26.4.24/뉴스1

국가가 기억해야 할 '영원히 푸르른 이름들'

이번 기념식의 주제는 ‘그리운 이름, 영원히 푸르른 당신을 기억합니다’였다. 국가보훈부는 공식 SNS를 통해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은 누군가에게는 자식의 빈자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에게 깊은 그리움의 시간"이라며 위로를 전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청춘의 계절에 멈춰버린 이들, 그리고 그들을 가슴에 묻고 20년 넘게 '통곡의 답장'을 써 내려가는 유가족들의 슬픔은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부채다. 영상을 접한 시민들은 "어떤 슬픔보다 고통스러운 심경이 느껴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애도의 물결을 보냈다.

한일석 씨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 국가보훈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공개되자, 온라인상에서는 수만 개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을 넘어, 국가의 부름을 받고 헌신하다 스러져간 수많은 청춘의 희생을 다시금 되새겼다. 특히 "세상 그 어떤 슬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심경이 절절하게 느껴진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들의 아픔에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이러한 유가족들의 슬픔은 매년 5월이면 더욱 깊어진다. 온 세상이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고 기쁨을 나누는 '가정의 달'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잔인한 빈자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보훈부는 이번 기념식을 통해 꽃피는 봄날에도 자식의 빈자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순직 의무군경 유가족들이 있음을 강조하며, 그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가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순직의무군경의 날은 단순한 추모의 날을 넘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승우 이병의 아버지가 겪은 20년의 세월은 국가가 유가족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 있어 얼마나 더 세심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유가족들이 겪는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치유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원 시스템과 더불어, 순직 장병들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보훈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낭독을 마친 아버지를 직접 부축하며 전한 위로는 국가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국가보훈부 역시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생을 달리한 청춘들을 기억하며,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는 공식 입장을 통해 보훈의 가치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순직 장병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가족을 끝까지 예우하겠다는 약속의 다짐이기도 하다.

유튜브, 국가보훈부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