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수비대, 나포 정당성 주장
혁명수비대 해군은 24일(현지시각) 성명에서 지난 22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컨테이너선 에파미노다스호와 MSC-프란세스카호를 나포한 경위를 공개했다.
혁명수비대는 에파미노다스호에 대해 "지난 6개월간 감시한 결과 이 선박이 2024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 항구 11곳에 모두 36차례 기항하면서 29만9000t의 화물을 하역했다"며 "여러 차례 경고를 무시하고 해상 규정을 상습 위반해 나포했다"고 밝혔다. 라이베리아 선적의 에파미노다스호는 그리스 선주 소유 선박으로, 나포 당시 오만 북서쪽 약 37㎞ 해상에서 혁명수비대 함정의 발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MSC-프란세스카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정권의 소유"라고 주장했다. 파나마 선적의 이 선박은 실제로는 이탈리아 선사 MSC(지중해해운) 소유 선박으로,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로 향하던 중 나포됐다. 이란 해안에서 약 15㎞ 지점에서 총격을 받았으나 선체 피해는 없었으며, 승무원 40여 명은 안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몬테네그로 해사부 장관은 "선박이 이란 해안 9해리 지점에 정박해 있으며 MSC와 이란 사이에 협상이 진행 중이고 자국 선원들은 안전하다"고 밝혔다. 크로아티아 외무부도 자국민 2명이 승선해 있다고 확인했다.
혁명수비대는 두 선박이 현재 이란 영해 내로 압송돼 화물과 서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 당국은 나포 과정에서 세 번째 선박 유포리아호에도 공격을 가했으나, 이 선박은 피격 후 탈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눈에는 눈' 갈등 격화
이번 나포는 미국이 해상봉쇄에 나선 이후 급격히 고조된 충돌 국면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은 지난 13일부터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시작했다. 그에 앞서 미국은 국제 제재를 피해 원유 등 불법 수송에 관여하는 이른바 '암흑 선단' 소속 이란 선박 2척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나포한 바 있다.
21일에는 미군이 이란 항구 반다르압바스로 향하던 이란 선적 컨테이너선 투스카호에 발포해 나포했다. 이란은 즉각 미국의 행위를 "해적 행위"라고 규탄했고, 그로부터 하루 뒤인 22일 혁명수비대가 에파미노다스호와 MSC-프란세스카호를 나포했다. 해양 정보 분석 업체 윈드워드AI는 이번 나포가 미군의 투스카호 나포에 대한 혁명수비대의 '눈에는 눈' 대응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투스카호 나포 직전 미국과 이란 사이의 2주 휴전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이란의 선박 나포는 이 발표 직후에 이뤄졌다. 파나마 외무부는 성명에서 이란의 MSC-프란세스카호 나포가 "해상 안보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자 불필요한 긴장 고조"라며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미군이 아라비아해 쪽 입구를, 이란이 페르시아만 쪽 출구를 각각 통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박들은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미군과 이란 양측의 승인을 각각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아라그치, 파키스탄 군 실세와 심야 회담
이 같은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외교적 움직임은 계속됐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24일 밤늦게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파키스탄 외무부에 따르면 이샤크 다르 부총리 겸 외무장관,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군 총사령관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라왈핀디 누르칸 공군기지에서 아라그치 장관을 직접 영접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도착 직후 무니르 총사령관, 다르 장관과 곧바로 심야 회담에 돌입해 동이 틀 무렵까지 약 5시간에 걸쳐 협의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오전에는 무니르 총사령관, 모신 나크비 내무부 장관과 별도로 회담을 가졌다. 이란 측에서는 카젬 가리바바디 외무부 차관, 레자 아미리 모가담 주파키스탄 대사, 에스마일 바가이 외무부 대변인이 함께했다. 이란 외무부는 회담 사진을 공개했으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무니르 총사령관은 그동안 미국과 이란 사이의 종전 협상에 핵심 중재자로 깊숙이 개입해온 인물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번 방문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이번 방문의 목적은 파트너들과 양자 현안을 긴밀히 조율하고 지역 정세에 관해 협의하는 것"이라며 파키스탄에 이어 오만, 러시아 모스크바를 순차적으로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고위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아라그치 장관이 미국의 평화 협상안에 대한 서면 답변을 갖고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했으며,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 및 재러드 쿠슈너 대통령 선임 고문과 이번 주말 만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도 "윗코프 특사와 쿠슈너가 파키스탄을 향한다"며 "파키스탄이 중재하는 직접 대화 형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국영 매체와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연계 매체 누르뉴스는 "아라그치 장관이 이번 방문 중 미국 측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도 "미국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아라그치 장관의 이슬라마바드 방문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강경파·협상파 내홍… 협상 성사 불투명
2차 협상 성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이란 내부의 극심한 파벌 갈등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이란 내 강경파와 협상파 간 내홍이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핵심 쟁점은 미국이 요구하는 우라늄 농축 중단 문제로, 강경파들은 핵 주권을 강조하며 이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1차 협상 당시 이란 대표단에 참여했던 초강경파 마흐무드 나바비안 의원은 이란 관영 뉴스통신사 학생뉴스네트워크(SNN)와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핵 문제는 애당초 협상 대상이 돼서는 안 됐다"며 이란 측 협상단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을 직격했다. 강경파의 수장인 아흐마드 바히디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역시 '지나친 타협'에 반대하고 있다고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이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협상을 지지하는 갈리바프와 이에 반대하는 바히디 사령관이 충돌하고 있으며 최근 이란 내 권력이 혁명수비대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바히디 사령관은 부상을 입어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접촉하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로 전해졌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이란 전문가 모하메드 아메르시는 WSJ에 "이란 최고위층의 의사결정 과정은 주저와 망설임으로 얼룩져 있다"며 "무엇이 이란의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내부 논쟁이 합의 도달 시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1, 12일 이슬라마바드에서 1차 종전 협상을 진행했으나 결렬됐다. 21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에서도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후 '2주 휴전' 시한을 앞두고 예정됐던 2차 협상도 불발됐다. 이란은 미국이 해상봉쇄를 먼저 해제해야 협상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봉쇄 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은 "21시간의 강도 높은 협상에도 돌파구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란의 핵 시설은 파괴됐지만 추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란 내부의 분열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이란은 누가 자신들의 지도자인지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2차 협상이 재개될 경우 핵심 의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핵연료 농축, 호르무즈 해협 항행 정상화, 대이란 제재 완화 및 동결 자산 해제 등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