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비하하지 말라”… 故 이순재가 생전 말한 ‘인생을 망치는 생각 1위’

2026-04-25 07:45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정진해야”… 자기 비하 경계

짧고 빠른 콘텐츠가 일상이 된 시대다. 몇 초 만에 소비되고 사라지는 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오래 곱씹게 되는 문장도 있다. 배우 고(故) 이순재가 생전 남긴 말이 그렇다.

고 이순재 선생님을 추억하며 / 뉴스1
고 이순재 선생님을 추억하며 / 뉴스1

고(故) 이순재는 생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며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정진하면 결국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낮추는 순간, 가능성도 닫힌다


단순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의 말은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나는 안 된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이런 무의식적인 자기 부정을 그는 경계했다.

70년간 연기 인생을 이어오며 세대를 넘어 사랑받은 배우 이순재가 지난해 11월 91세 일기로 별세했다. / 뉴스1
70년간 연기 인생을 이어오며 세대를 넘어 사랑받은 배우 이순재가 지난해 11월 91세 일기로 별세했다. / 뉴스1

이순재는 인간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태어나는 조건은 각자 다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의미가 있다”며 “누구도 덤으로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환경의 차이가 가능성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자기 비하가 만든 보이지 않는 한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이순재는 “존재는 항상 대상을 전제로 한다”며 “관객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든 그 자체가 의미”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태도는 이런 관계를 보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봤다.

생전 유퀴즈에 출연한 이순재 선생님. / 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생전 유퀴즈에 출연한 이순재 선생님. / 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또한 자기 비하가 종종 ‘겸손’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욕심을 줄이고 기대를 낮추는 태도가 미덕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결국 스스로를 한계 안에 가두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를 이유로 대접받으려 하면 늙는 것”이라며 자신을 규정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방송에서 유재석은 이순재에 대해 “자만이 없고,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그는 “철저히 준비하는 건 동료와 후배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엄격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순재는 “인생에는 완성이 없다”고도 말했다. 이어 “어느 시점에 성취가 있을 뿐, 그것이 끝은 아니다”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삶”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안 되는 일이 된다”며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순간 새로운 길이 생긴다고도 강조했다.

고 이순재 선생님을 기억하며 / 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고 이순재 선생님을 기억하며 / 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고 이순재 선생님을 기억하며 / 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고 이순재 선생님을 기억하며 / 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한편, 고(故)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시절 영국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결심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하며 TV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를 오갔다. 이후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말년까지 무대를 지킨 그는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건강 악화로 재활 치료를 받아오다 같은 해 11월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home 김태성 기자 taesung1120@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