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된 문항을 현직 교사들과 불법적으로 거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명 수학 일타강사 현우진 씨 측이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현 씨 측은 첫 재판에서 해당 거래가 강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정상적인 문항 거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검찰의 공소 사실을 강하게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 이재욱 부장판사는 24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현 씨와 관련 피고인들의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현 씨는 수능 및 모의평가 대비를 위한 수학 문항 제작을 조건으로 현직 고등학교 교사 3명에게 총 4억여 원의 거액을 건넨 혐의를 받으며 지난해 12월 재판에 공식적으로 넘겨졌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 씨는 2020년 3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약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학 교사 A 씨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교재 및 모의고사 출제용 수학 시험 문항을 제공받는 대가로 총 1억 7909만 원을 송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또 다른 현직 교사 B 씨에게는 총 20회에 걸쳐 1억 6777만 원을 지급했으며 교사 C 씨에게도 37회에 걸쳐 7530만 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청탁금지법 규정에 따르면 사립학교 소속 교원은 그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1회 100만 원 또는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해서는 안 되며, 이를 제공하는 행위 역시 엄격하게 금지된다. 다만 사적 거래로 인해 발생한 채무의 이행 등 정당한 권원에 의해 제공되는 금품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여기서 권원이란 어떠한 법률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의미한다.
현 씨와 피고인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교사들과 문항을 거래하고 돈을 지급한 사실관계 자체는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해당 금품이 불법적인 뇌물이나 청탁의 대가가 아니라 정당한 권원에 의해 체결된 정상적인 거래의 대가라는 취지를 강조하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현 씨 측은 "교재에 수록할 문항이 필요해 정상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약속한 금액을 지급한 것이며, 전액을 계좌로 이체하고 세금까지 투명하게 납부했다"며 "일타강사로서 학생들에게 양질의 문항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현직 교사들로부터 제공받은 문항이 실제 학교 정기 고사 등에 출제돼 공정성 시비가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교사들이 사전에 소속 학교장으로부터 겸직 허가를 받고 문항을 거래해야 할 법적 의무가 금품을 제공한 피고인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현 씨 역시 기소 직후 자신의 입장을 통해 "현직 교사 신분인 EBS 교재 저자와 문항 거래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문항 공모나 외부 전문 업체를 포함해 회사가 운영하는 다양한 문항 수급 채널 중 하나였을 뿐이다. 교사라는 특정 신분을 이유로 부당한 프리미엄을 지급한 사실이 결코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한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근절 조치의 연장선에 있다. 교육부와 감사원은 2023년부터 대형 입시 학원과 유명 강사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및 모의평가 출제 경험이 있거나 현직에 있는 교사들로부터 고액을 주고 문항을 사들이는 관행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정부는 이러한 은밀한 거래가 공교육의 신뢰를 훼손하고 수능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카르텔이라고 판단해 대규모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현 씨 사건 역시 이 과정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며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수능 출제 위원과 사교육 업계 간의 유착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수사 결과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의 기소 취지에 대해 법리적인 의문을 일부 제기했다.
재판부는 "청탁금지법 제10조(외부 강의 등의 사례금 수수 제한)에 따르면 기고 등에 대한 초과 사례금은 과태료 부과 규정만 있고 형사 처벌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에 "해당 사건을 과태료 사안이 아닌 형사 처벌 규정인 제8조(금품 등의 수수 금지)를 적용해 기소한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양측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고된 가운데 현 씨 등에 대한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5월 29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