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서울 지하철에서 승강장 추락에 의한 사망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매일 7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철도망 중 하나에서 나온 결과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지하철 선로에선 매년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사망자 수는 스크린도어 설치 전후로 극명하게 갈린다. 설치 이전인 2001~2009년 연평균 37.1명이었던 사망자는 2010~2024년 연평균 0.4명으로 급감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에는 사망자가 0명을 기록했다. 수십 년간 반복됐던 선로 위 비극이 구조적 개입 하나로 멈췄다.
승강장과 선로 사이, 물리적 장벽이 만든 변화
원리는 단순하다. 승강장과 선로를 물리적으로 분리해 사람이 선로로 떨어지거나 밀릴 수 있는 상황 자체를 구조적으로 없앤 것이다. 스크린도어 설치 이전에는 열차 진입 시 풍압, 혼잡한 승강장에서의 접촉, 예기치 못한 밀침 등 다양한 경로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모든 위험 요소들은 스크린도어 하나로 원천 차단됐다.
서울시는 2009년 지하철 1~8호선 262개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 설치를 완료했다. 당초 목표 기간보다 약 1년을 단축한 결과였다. 이후 9호선과 경전철까지 확대돼 현재 서울 시내 345개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시는 전 역사에 설치하지 않으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특정 지점에 사고가 집중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부분 설치가 아닌 전면 설치 방침을 고수했다.
이런 서울의 사례는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2024년 스크린도어가 없는 뉴욕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을 선로로 밀어 떨어뜨리는 이른바 '서브웨이 푸싱' 범죄가 잇따르면서, 스크린도어의 유무가 단순한 시설 문제가 아닌 도시 안전의 구조적 문제로 재조명됐다. 뉴욕 지하철 운영사 MTA는 2022년 역사 노후화를 이유로 스크린도어 전면 설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연이은 추락 사망 사건 이후 일부 역에 시범 설치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은 여전히 설치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안전을 넘어 공기질·냉방 효율까지 개선
스크린도어의 효과는 사고 예방에 그치지 않았다. 설치 이후 역사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하철역 내 미세먼지 농도는 스크린도어 설치 전 106.7㎍/㎥에서 설치 후(2010~2017년) 86.5㎍/㎥로 약 20% 감소했다. 일평균 기준치인 100㎍/㎥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기존에는 열차 진입 시 발생하는 풍압과 함께 선로의 먼지와 오염물질이 승강장으로 그대로 유입됐지만, 스크린도어가 이 흐름을 차단하면서 공기 질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소음도 줄었다. 열차가 진입할 때 발생하는 공기 압력과 소음이 스크린도어에서 한 차례 걸러지면서 승강장 체감 소음이 약 7.9% 감소했다. 특히 지하 밀폐 구간에서 열차 진입 소음은 이용객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불편 요소 중 하나였다.
냉방 효율 개선 효과는 경제적 수치로도 확인된다. 터널을 통해 유입되던 외부 공기가 줄어들면서 냉방 손실이 감소했고, 하루 약 6억 원에 달했던 전력 비용이 4억2500만 원 수준으로 약 30% 낮아졌다. 이 같은 절감 효과가 냉방 가동이 집중되는 6~8월 92일 동안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연간 약 167억 원의 비용이 절감되는 셈이다. 시설 투자가 장기적으로 운영 비용 절감으로 되돌아온 구조다.
세계는 지금 스크린도어를 향해 가고 있다
스크린도어의 역사는 1961년 소련 레닌그라드(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설치된 것은 대리석으로 선로 쪽을 막고 철제 셔터가 좌우로 열리는 방식이었다. 현대적인 유리문 형태의 스크린도어는 1981년 일본 고베의 포트 아일랜드선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각국으로 확산됐다. 한국에서는 2004년 광주 도시철도 1호선 금남로4가역·문화전당역에 처음 상용화된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전국 도시·광역철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스크린도어 설치는 확장 추세다. 싱가포르는 1987년 개통 당시부터 지하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운영 중이고, 대만은 2018년 모든 도시철도 승강장에 설치를 완비했다. 중국은 신규 노선에 스크린도어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존 역에도 추가 설치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스크린도어 미설치로 인한 추락 사고가 반복되자 2027년까지 전국 모든 역에 100% 설치를 목표로 국책사업을 추진 중이다. 예산 규모만 약 1조 엔(약 10조 원)에 달한다.
반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오래된 지하철 시스템은 노후화된 역사 구조와 예산 문제로 설치 속도가 더딘 상태다. 런던 지하철은 2020년대 후반까지 전면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19세기에 지어진 노선들이 많아 리모델링 공사와 맞물려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는 스크린도어 외에도 곡선 형태의 승강장에 자동 안전 발판을 도입하고, 설치가 어려운 역사에는 밝기가 높은 LED 경고판을 설치해 발 빠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추가 장치를 갖췄다. 시에 따르면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서울의 경험이 지하철 안전을 고민하는 세계 여러 도시에 기준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