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흙의 감촉과 숲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길이 있다. 부산 금정구 오륜동 회동수원지 일대 '땅뫼산 황토숲길'은 맨발로 걸으며 숲과 호수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산책 코스다.

대지의 생명력을 발바닥으로 느끼는 1.7km 치유 여정
부산 금정구 오륜동에 위치한 회동수원지는 오랜 기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곳이다. 2010년 개방 이후에는 시민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땅뫼산 황토숲길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 산책 코스가 됐다.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오랜 시간 축적된 자연의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장소다.
산책로의 총길이는 1.7km다. 전 구간이 비교적 완만한 평지로 조성돼 있어 노약자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도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 선반 위에 놓인 신발들이 먼저 눈에 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황토의 촉감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금세 익숙해진다. 평소 신발을 신고 지나던 길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진다. 땅의 온도와 질감을 직접 느끼며 걷는 경험 자체가 이 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이 길에 깔린 황토는 적절한 습도를 유지할 때 특유의 부드럽고 찰진 감촉이 살아난다. 비가 온 직후에는 황토가 한층 말랑해져 걷는 재미를 더하고, 맑은 날에는 적당히 단단해진 흙이 발바닥을 자극한다. 그래서 같은 길이라도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에 닿는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 맨발 걷기는 땅과 몸이 직접 맞닿는 경험 자체만으로도 일상과는 다른 휴식감을 준다.
1.7km 길을 천천히 걷는 데는 성인 기준 30분에서 40분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속도를 내기보다 일부러 보폭을 줄이며 걷는 사람이 더 많다. 발에 전해지는 감촉을 느끼고 숲과 호수의 변화를 함께 바라보려면 자연히 걸음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길의 끝자락에는 시원한 지하수로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 시설도 마련돼 있다. 붉은 황토를 씻어내고 나면 발끝까지 개운해지는 느낌이 남는다. 개인 수건을 미리 챙겨가면 한층 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길의 시작과 끝이 뚜렷해 처음 찾는 이들도 동선에 대한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편백과 호수가 어우러진 산책길
황톳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울창한 편백 숲과 넓게 펼쳐진 호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곧게 뻗은 편백 군락은 숲길에 짙은 그늘을 만들고, 걷는 동안 서늘하고 맑은 공기를 더한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황톳길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는 숲길의 분위기를 한층 차분하게 만든다.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숲 안으로 들어서면 한층 고요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숲길 바로 옆으로 펼쳐지는 회동수원지 풍경도 이곳의 큰 매력이다. 잔잔한 수면 위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산책로 중간에 마련된 팔각정 쉼터는 주변 경관을 한눈에 바라보기 좋은 지점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풍경의 흐름이 한층 또렷하게 들어온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나무데크 산책로에서는 수변 식생도 비교적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물가에 자리한 버드나무와 여러 수생식물은 이곳의 생태 환경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과 숲이 맞닿는 경계가 부드럽게 이어져 풍경 전체가 안정감 있게 다가온다. 잔잔한 수면과 숲의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장면은 이 구간의 인상을 더욱 또렷하게 남긴다.
땅뫼산 생태숲은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뚜렷하게 달라진다. 봄에는 연둣빛 새순이 숲 전체에 생기를 더하고, 여름에는 짙어진 녹음이 호수의 푸른빛과 어우러져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가을에는 단풍이 수면에 비치며 색의 층을 더하고, 겨울에는 잎이 걷힌 자리에 고요하고 단정한 풍경이 남는다. 같은 길이라도 어느 계절에 찾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른 아침 호수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간대에는 이 일대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더 잘 드러난다. 계절의 변화가 분명한 만큼 한 번 찾았던 이들이 다른 시기에 다시 방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정의 맛과 역사
산책을 마친 뒤에는 금정 일대의 향토 음식으로 여정을 이어가기 좋다. 회동수원지 인근 오륜동과 선동 일대에는 민물 요리와 오리 요리를 내는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다. 산책로 주변 식당가에서는 비교적 신선한 재료를 활용한 식사를 만날 수 있다. 대표 메뉴로는 오리 불고기와 백숙이 꼽힌다. 각종 재료를 넣고 오래 끓여낸 오리백숙은 든든하게 한 끼를 채우기 좋고, 부추와 버섯을 곁들여 볶아내는 오리 불고기는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메뉴다. 산책 뒤 허기를 달래기에도 잘 맞는 구성이다. 몸을 많이 쓰는 산행 뒤의 식사라기보다, 가볍게 걸은 뒤 편안하게 이어가는 한 끼에 더 가까운 분위기다.
금정구를 대표하는 금정산성 막걸리도 함께 떠올릴 만하다. 전통 방식으로 빚는 금정산성 막걸리는 구수한 누룩 향과 적당한 산미가 어우러진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계절에 따라 상에 오르는 곁들이 음식도 다채롭다. 봄에는 취나물과 두릅 같은 산나물이 오르고, 가을에는 잘 익은 단감이 후식으로 곁들여지기도 한다. 흑염소 불고기 또한 이 일대에서 찾는 이들이 많은 보양식 메뉴다. 전체적으로 자극적인 맛보다 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이 많아 숲길 산책 뒤 편안하게 식사를 이어가기 좋다. 지역 음식의 결이 과하지 않아, 하루 일정 안에서 자연과 식사를 무리 없이 연결하기에도 알맞다.
땅뫼산 황토숲길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는 영남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범어사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범어사는 오랜 역사와 함께 단정한 건축미, 고즈넉한 분위기로 꾸준히 찾는 이가 많은 곳이다. 범어사 계곡을 따라 형성된 등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5월이면 보랏빛 등꽃이 장관을 이룬다. 여기에 국내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꼽히는 금정산성을 함께 둘러보면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을 한 동선 안에서 이어볼 수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구간에서는 부산 시내를 넓게 조망할 수 있어 또 다른 분위기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황토숲길 중심의 짧은 산책에 주변 명소를 더하면 하루 일정이 한층 풍부해진다.
갈맷길과 이어지는 '힐링의 완성'
땅뫼산 황토숲길은 부산의 대표 도보 여행길인 갈맷길 8구간과 연결돼 있어 도보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코스다. 회동수원지를 크게 도는 둘레길 일부에 해당하는 이 구간은 숲과 수변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선호도가 높다. 길 중간중간에는 벤치와 쉼 공간이 마련돼 있어 무리하게 걷기보다 풍경을 보며 쉬어가기에도 좋다. 사진을 남길 만한 지점도 곳곳에 있어 가볍게 둘러보는 산책부터 여유 있는 도보 여행까지 폭넓게 소화할 수 있다. 맨발 황톳길 구간과 일반 산책 구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체력과 일정에 맞게 동선을 조절하기도 어렵지 않다. 코스 구성이 단순해 처음 찾는 방문객도 큰 부담 없이 동선을 이어갈 수 있다.

이곳은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다만 상수원 보호구역 안에 위치한 만큼 환경 보호를 위한 기본 수칙은 꼭 지킬 필요가 있다. 취사와 쓰레기 투기는 금지되며, 반려동물과 동행할 경우에는 리드줄 착용과 배설물 수거가 필요하다. 숲의 정숙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주차는 인근 공영주차장이나 마을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주말과 공휴일에는 혼잡할 수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더 편할 때도 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장전역이나 구서역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오륜본동 마을 입구까지 쉽게 닿을 수 있다. 방문 전에는 날씨와 현장 이용 정보를 한 번 확인해두면 한층 여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다.
신발을 벗고 흙 위를 걷는 경험은 단순하지만 또렷하다. 1.7km 붉은 길을 따라 걸으며 호수의 바람과 숲의 공기를 마주하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땅뫼산 황토숲길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길이다. 부산 안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싶은 날 찾기 좋은 장소로 남는다. 짧은 거리에도 숲과 호수, 황톳길의 감각이 고르게 담겨 있어 짧은 시간 안에 기분 전환을 하기에도 알맞다. 도심과 멀지 않으면서도 산책의 밀도는 가볍지 않아, 계절을 바꿔 다시 찾기에도 충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