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코스피가 또 역사를 다시 썼다. 이날 오전 9시 1분 코스피지수는 6401.97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연초 대비 상승률이 50%에 육박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증시와 비교해도 단연 세계 최상위권 수익률이다. 그런데 이 상승장을 더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 올해 들어 코스피가 이렇게 뛰었음에도 시장 밸류에이션이 오히려 싸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7.5배다. 기업이 1년간 벌어들일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인데, 과거 코스피가 고점에 달했을 때 평균 PER은 10배 안팎이었다. 지수가 사상 최고가임에도 반도체 중심 이익 추정치가 급등하면서 코스피 선행 PER은 팬데믹 수준인 7.5배에 머물러 있다. 지수가 계속 신고가를 경신하는데도 현재도 여전히 매력적인 구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주가보다 빠른 이익 성장... '반도체 투톱'이 만든 신기록
이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AI 열풍이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를 폭발시키면서, 주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이익이 훨씬 빠르게 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3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데, 영업이익이 40조 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4%, 368% 증가가 예상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역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55%나 폭증한 57조2000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한 분기에 두 회사 합산 이익이 100조 원에 육박하는 것은 제조업 역사에 전례가 없는 수치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한국 시장에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7000포인트에서 8000포인트로 1000포인트 끌어올렸다. 보고서를 쓴 티모시 모 아시아태평양 수석 주식 전략가는 국내 반도체와 산업재 전반의 펀더멘털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목표치 상향의 핵심 근거는 이익 성장이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코스피 전체 이익 전망치를 종전 130%에서 220% 성장으로 대폭 올렸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반도체만의 잔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더라도 나머지 시장 전체의 이익 성장률이 48%에 달할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와 직결된 반도체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확대되면서 한국 기업들에게 이례적으로 유리한 영업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밸류에이션 매력도 짚었다. 현재 PER 7.5배는 역사적 평균에서 2.1 표준편차나 벗어난 수치라는 게 골드만삭스의 분석이다. 아직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도 있다. 진행 중인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주주환원 정책 개선이 현재 밸류에이션에 아직 녹아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급도 변수다. 글로벌 펀드와 신흥국 펀드 내 한국 비중은 여전히 '언더웨이트', 즉 적게 담긴 상태다. JP모건 집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3월 한 달에만 240억 달러, 연초 이후 330억 달러를 순매도하며 지분율이 130bp나 줄었다. 팔 만큼 팔았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반대로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돈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코스피 8000 시대" 글로벌 IB들의 잇따른 눈높이 상향
골드만삭스 이전부터 코스피 8000을 외친 곳이 있었다. 노무라증권은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상반기 코스피 목표치를 7500으로 잡고 낙관적 시나리오로 8000까지 가능하다고 봤다. 노무라는 "한국이 원유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2026~2027년 코스피 주당순이익(EPS)은 반도체가 견인하고 금융·자동차 등이 뒤를 이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한 반도체 사이클과 함께 한국 증시 리레이팅(재평가)이 중기적으로 시장을 밀어 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JP모건은 8500을 제시했다. 기본 시나리오 목표치도 6000에서 7000으로 올렸다. 기술주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올해 이익 추정치가 37% 대폭 상향돼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을 충분히 상쇄할 것이라고 봤다. JP모건은 "한국 시장의 핵심 펀더멘털인 메모리 사이클·지배구조 개편·테마별 성장이 궤도에 올라와 있는 만큼 코스피의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며 한국을 아시아 내 최선호 시장으로 꼽았다. 국내 증권사들도 목표치를 잇따라 올렸다. 하나증권은 7900, NH투자증권은 7300, 한국투자증권은 7250을 제시했다.
KBS에 따르면 싱가포르 주피터 자산운용의 투자 매니저 샘 콘래드는 "한국 시장은 매우 강력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동시에 저평가돼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했다. 전 세계 시장을 들여다보는 전문가가 '특이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통 많이 오른 시장은 비싸진다. 그런데 한국은 많이 올랐는데도 여전히 싸다.
'기업 밸류업' 정책과 AI 추론 시대의 도래
이 흐름의 배경에는 구조적 변화도 깔려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되고 있다. 상법 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혁, 주주환원 정책 강화가 맞물리면서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일제히 올린 배경이기도 하다. 블룸버그는 세계적인 펀드들이 새 정부가 주주 친화적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보고 한국 증시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AI·바이오·방산 등 전략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 역시 투자 기회로 꼽혔다.
반도체 산업 자체의 구조도 바뀌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매출은 7917억 달러로 전년 대비 25.6% 늘었는데, AI 인프라 수요가 그 한 해 만에 판을 바꾼 것이다. 2026년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6333억 달러로, 전년 2163억 달러 대비 193%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시장 전체의 절반을 메모리가 차지하는 구조가 처음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가 학습 단계를 넘어 실생활에 적용되는 '추론 시대'로 접어들면서 HBM 수요는 물론 서버용 D램, 기업용 SSD 수요까지 동시에 폭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단기 과열 신호와 리스크... 현명한 투자 접근법은?
물론 장밋빛만인 건 아니다. 연초 대비 50%에 가까운 급등은 그 자체로 단기 과열 신호이기도 하다. 골드만삭스도 보고서 안에 보수적 시나리오를 함께 담았다. 이익이 33% 하향되고 PER이 11배로 압축되는 최악의 경우 코스피 하단을 6250선으로 봤다. 하방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지만, 조정 자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정학 리스크도 살아 있다. 미국·이란 평화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시장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협상이 틀어지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다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JP모건도 "이란 관련 리스크가 줄어들면서 긍정적 변화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 표현은 달리 말하면 이란 리스크가 다시 커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골드만삭스가 특히 주목한 투자 유형은 우선주, 순자산가치 대비 할인 폭이 큰 지주사, 주주환원 개선이 기대되는 저PBR 기업들이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어 중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접근으로 꼽힌다. 코스피200 ETF나 반도체 ETF를 활용한 분할 매수는 이 상승 흐름의 수혜를 가장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