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무심코 지나쳤는데…읽고 나면 세상을 보는 속도가 달라지는 책

2026-04-25 16:02

속도의 시대,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는 책

우리는 너무 빠르게 마침표를 찍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의 성격은 MBTI 네 글자로 요약되고 복잡한 감정은 '답답하다'거나 '킹받는다'는 식의 휘발성 강한 유행어 아래 뭉뚱그려진다. 효율과 속도가 미덕이 된 세상에서 대상의 본질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은 흔히 시간 낭비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결론짓고 정의하려는 성급한 마침표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내면은 오히려 더 흐릿해진다.

내가 지금 느끼는 슬픔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인지, 따스한 봄 날씨에 느꼈던 모호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깊게 깨닫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 일상을 마무리하기 바쁘다.

여유있게 책 한 권을 읽는 현대인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여유있게 책 한 권을 읽는 현대인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과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은 이러한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섬세한 쉼표를 찍도록 권한다.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내가 지금 내딛는 발걸음 속도와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골라낸 단어 하나에 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산책이 발견하는 계절의 변화

한정원의 '시와 산책'은 2020년 세상에 나왔다.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일상의 세세한 부분,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했다. 책의 곳곳에는 우리가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이면을 나직한 목소리로 일깨우는 대목들이 담겨 있다.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 / 출판사 '시간의흐름' 제공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 / 출판사 '시간의흐름' 제공

벚꽃이 지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다.


"금방 여름이 오는 거 아냐? 중간이 없어, 중간이", "사실은, 중간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때만을 봄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 한정원, '시와 산책' 中


작가는 “봄이 짧다는 탄식은 어쩌면 봄꽃만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봄꽃, 특히 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벚꽃이 피어야만 우리는 봄을 실감하고 벚꽃이 지는 시기가 되면 봄이 지났다고 말한다.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는 고작 열흘 남짓인데도 그 열흘 동안만을 우리는 ‘봄’이라고 단정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 찍는 가장 성급한 마침표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돌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월이 오면서부터 이미 흙이 부풀고 나무줄기의 색이 바뀌며 벌레들이 나왔고 고양이들의 소요가 길어졌다. 봄은 이미 오래전부터 단서를 한껏 뿌리고 다녔지만, 도시의 건물 안에서 꽃이라는 완결된 결론만을 기다리던 이들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감각이 무뎌진 것이지 봄이 짧았던 것이 아니다. 작가에게 산책은 이처럼 세상이 던져주는 숨겨진 쉼표들을 찾아내고 세계와 나 사이의 접점을 늘려가는 과정이 아닐까.

닳아가는 마음과 색을 바꾸는 늙음의 품격

작가는 ‘늙음’이라는 단어가 품은 서글프고도 깊은 층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젊음을 선망하고 늙는다는 것을 두려워하며 기피한다. 죽음이라는 끝을 둔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지 모르나, 작가는 늙음을 ‘색이 바래거나 아예 색을 잃었다고 느끼는 상태’로 표현한다.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의미를 두고 인생이 ‘꺾였다’는 표현을 쓰지만 작가는 삶을 정말로 꺾이게 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사건’ 혹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주로 나쁜 사건을 겪는 순간 마음은 무너지고 삶의 방향은 꺾인다. 몸의 관절이 오랜 세월 닳아 없어지듯 마음도 닳는다. 작가는 사람에게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 같은 건 애초에 없다고 한다. 노인의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은 단순히 뼈가 비워지는 탓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단념해 버렸기에 생기는 무게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다만 작가는 늙음을 버젓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주어진 마음을 아낌없이 다 써버린 결과일 뿐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독특한 바람을 전한다. 사람의 색이 바래거나 사라지지 않고 순록의 눈동자나 호수의 가슴처럼 그저 색을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이다.

계절에 따라, 나이에 따라, 혹은 슬픔에 따라 색을 바꿀 수 있다면 삶의 꺾임 앞에서도 우리의 용기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무엇을 찾아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서로에게서 아름다움을 목격하며 더 너르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작가는 묻는다. 이러한 시선은 '늙음'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깊이 집중하게 하며 우리가 쉽게 단정 짓던 생의 한 단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말해지지 않는 마음과 단어의 깊이

“내 앞에 낙타 한 마리가 도착해 있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길고 긴 속눈썹으로 쓸어내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을 나의 낙타에게, 나는 ‘낙타야’하고 불러야만 하나. 이 녀석을 호명할 알 맞은 말 한 마디가 없어서 나 또한 녀석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중이다.” - 김소연, '마음사전' 中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은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내면의 풍경을 목격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대개 단어를 표면적인 의미로만 소비할 뿐, 인접한 단어들 사이에 숨겨진 미묘한 결을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이 깊은 의미에 집요하게 집중하며 마음의 지표를 재설정한다. 그에게 단어를 정의하는 행위는 단순히 언어적 유희를 넘어 흐릿한 감정에 고유한 질서를 부여하는 ‘마음의 고고학’이다.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 표지. / 출판사 '마음산책' 제공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 표지. / 출판사 '마음산책' 제공

이 중 예리한 대목 중 하나는 ‘솔직함’과 ‘정직함’의 대조다. 작가에 따르면 솔직함은 자기 감정에 충실해 무장해제된 채로 자신을 풀어헤치는 행위인 반면, 정직함은 타인을 배려해 의도적으로 절제하는 윤리적 신념이다. 솔직함이 가림 없이 털어놓는 것 외에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는 자아의 투명한 발로라면, 정직함은 믿음을 주겠다는 신념 아래 가려야 할 것을 가릴 줄 아는 성숙함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직한 이의 태도를 더 신뢰하지만, 정작 마음이 움직여 진실로 믿게 되는 대상은 날것의 솔직함이다.

이어지는 ‘중요함’과 ‘소중함’에 대한 고찰은 현대인이 앓고 있는 가치 전도의 질병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작가는 소중한 존재가 그 자체로 궁극이라면 중요한 존재는 그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명시한다. 애인들이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 중요하지 않은 단계에서 느끼는 불안, 서로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소중함 등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부부들의 모습은 우리 삶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이 부과하는 하중을 견디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무참히 잃어버리고 만다.

안과 밖의 경계, 유리와 창문이 말하는 진심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우리 곁의 사물인 ‘유리’의 속성에도 집중한다. 작가는 유리에 대해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모순된 마음을 유리만큼 선명하게 전달하는 물체는 없다는 것이다. 안에 머물면서도 끊임없이 바깥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분명 유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면서 동시에 그 경계를 허무는 일과도 같다. 결국 유리는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 하는 우리 시대의 이중적인 소통의 온도를 대변한다. 타인과 나 사이에 적절한 투명함과 단단한 막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리를 통해 뒤늦게 깨닫곤 한다.

창문.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창문.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이러한 경계의 사유는 한정원의 '시와 산책' 속 ‘창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작가는 창문에 이름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같은 것이 붙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나 돌멩이로 위장한 진심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평소 숨겨져 있다가 어둠이 내린 창이 바깥 풍경을 지우고 내 얼굴을 비출 때 비로소 그 위로 슬그머니 상이 겹치며 나타난다. 우리가 응시하지 않았던 창의 이면에서 비로소 숨겨진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바깥 세상을 구경하느라 분주했던 시선이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머물 때, 비로소 성급한 마침표에 가려졌던 나 자신과의 대면이 이뤄진다. 창문은 세계를 보는 통로인 동시에, 가장 어두운 시간에 나의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돼준다는 사실을 작가는 나직하게 일깨운다.

마침표 대신 찍는 쉼표, 그 정직한 보폭의 기록

우리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다. 두 작가에게 글쓰기는 생산성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들이 건네는 문장은 우리가 왜 더 느리게 걷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서점 '소설·시·에세이' 코너에서 시간을 들여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 위키트리
서점 '소설·시·에세이' 코너에서 시간을 들여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 위키트리

책장을 넘기며 우리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수많은 쉼표를 되찾는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딛는 보폭의 정직함이다. 우리는 벚꽃이 만발하는 열흘만을 봄이라 단정 짓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급한 마침표가 주는 일시적인 안도감에 속지 않고, 끊임없이 쉼표를 찍으며 나아가는 삶은 비록 느릴지언정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2월의 부푼 흙에서부터 시작해 마음을 다해 색을 바꿔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풍경이다.

나만의 섬세한 언어와 보폭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여유. 그것이 바로 이 두 권의 책이 하늘 한 번 볼 새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전하는 위로다. 우리 삶은 벚꽃처럼 단 열흘 만에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무수한 쉼표와 단서들로 이어지는 길고도 정직한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home 김현정 기자 hzun9@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