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생산직에게도 성과급을 수억원씩이나 주는 게 맞나?"

2026-04-21 08:41

연구직들의 불만으로 번지는 '성과급' 논란
"현장 노동자의 기여 깎아내리는 것" 반발도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대기업 성과급 판도를 뒤흔들면서 직군 간 보상 형평성을 둘러싼 불만이 일고 있다. 생산직에게도 같은 비율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온다. 자신을 현대자동차 직원이라고 밝힌 이가 "평생을 공부에 바친 박사가 호황기 생산직 성과급의 10분의 1도 못 받는 현실"을 토로하는 글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최근 올려 이 같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작성자는 "현재의 획일적 보상 체계로는 개인의 노력이나 전문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대체 가능한 인력까지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구조는 이공계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가속페달이 될 것"이라며 "전문성과 노력에 비례한 차등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글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며 찬반 의견이 갈렸다. 연구수당과 현장직 수당의 격차를 수치로 비교하는 글도 잇따랐다. "연구수당은 월 1만 6,000원에 불과한 반면 컨베이어 수당은 9만 1000원이 넘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사 학위자에 대한 별도 수당이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됐다는 토로도 이어졌다.

SK하이닉스가 불 지폈다… 1인당 최대 13억 전망

이번 논란의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SK하이닉스가 있다.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는 노사 합의를 통해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삼고 기존 '기본급 1000%' 상한선을 없애는 방향으로 성과급 구조를 바꿨다. 회사 실적이 오를수록 직원 몫도 함께 커지는 틀이 처음 갖춰진 것이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이 구조에서 나온 전망치가 시장을 놀라게 했다. 올해 영업이익이 200조 원에 근접할 경우 내년 초 지급되는 성과급은 임직원 1인당 평균 약 5억 8000만 원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는 SK하이닉스의 향후 영업이익이 최대 447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성과급 재원은 약 44조 7000억 원, 임직원 약 3만 4500명으로 나눴을 때 1인당 평균 약 12억 9000만 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업계가 현재 보다 현실적인 기준으로 제시하는 올해 영업이익 250조 원을 기준으로 해도 내년 성과급 총액은 25조 원, 1인당 평균 7억 원에 달한다.

천문학적 숫자 못지않게 주목받는 건 이런 계산이 가능해진 보상 구조의 변화 그 자체다.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이를 둘러싼 온도 차가 생겼다. 연구직 쪽에서는 석·박사 출신과 생산직이 같은 비율로 성과급을 받는 게 타당하냐는 물음이 나왔고, 생산 현장에서는 그런 시각 자체가 현장 노동자의 기여를 깎아내리는 것이라는 반발이 맞섰다.

블라인드 달군 직군 갈등…"이공계 생태계 망가진다" vs "현장 무시냐"

블라인드에서 이 논쟁은 빠르게 가열됐다. 현대차 직원의 글에 달린 댓글 중에선 "10년 넘게 연구에 매달려 박사를 따고 입사했는데, 고졸 생산직과 성과급을 똑같이 받는 구조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결국 능력 있는 연구 인력은 처우가 나은 곳으로 떠나고, 남는 건 시스템만 돌아가는 회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생산직이 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오산"이라는 반박이 잇따른다. "종일 라인에 서서 정해진 공정을 반복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연구실에서는 모를 것"이라는 글에도 수백 개의 공감이 달렸다. "박사 학위가 자동으로 더 많은 보상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그 박사가 실제로 회사 실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제3의 시각도 등장했다. "연구직이든 생산직이든 문제의 본질은 성과급 파이가 커졌을 때 내부 배분 기준이 없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회사가 잘될 때마다 이 싸움이 반복된다면 결국 둘 다 손해"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왔다. "생산직을 무시하는 시대는 지났다. 중소기업 사무직 갈 바에는 대기업 생산직을 택하겠다는 분위기가 현실"이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보상 구조 자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 파업 예고, 현대차 노조 "순이익 30%" 요구

SK하이닉스의 변화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노조를 움직였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고 기존 '연봉 50%' 상한선도 없애달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증권업계 추산으로 44조 7000억 원 규모다. 사측은 DS 부문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전부 투입하겠다는 안을 내놨으나, 노조는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사규에 명문화하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다. 노조는 다음달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삼성전자 안을 들여다보면 갈등의 결이 더 복잡하다. DS 부문에서도 메모리 사업부는 HBM과 범용 D램을 앞세워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는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간판 아래 있어도 사업부마다 처한 현실이 판이하게 다른 만큼, 일률적인 성과급 기준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불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현대차 노조는 더 큰 숫자를 들고 나왔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임시 대의원대회를 통해 2025년 순이익(10조 3648억 원)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안을 확정했다. 약 3조 1000억 원 규모로, 전체 임직원 7만 2598명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약 4270만 원에 해당한다. 지난해 성과급·격려금으로 월급의 450%에 1580만 원을 받았던 것과 견주면 상당폭 뛴 수치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 상여금 확대, 정년 연장, 완전 월급제 도입도 함께 요구했다. 사측은 "노사 간 합의된 기준이 아니다"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과급을 전 국민이 나눠야" 황당 주장까지…온라인 비판 봇물

논쟁은 회사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 18일 블라인드에 공무원이라고 밝힌 이용자가 올린 글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SK하이닉스가 과거 경영난에 처했을 때 산업은행을 통해 국세가 투입된 만큼, 오늘의 성과급도 전 국민이 함께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누리꾼들은 정부가 'K-칩스법'을 통해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최대 20%까지 세액공제를 해준 점을 근거로 "성과급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써야 한다"는 의견을 보탰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온라인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기업은 법인세를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데, 추가로 성과급까지 나눠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위기 때 투자한 산업은행 지분을 되팔아 이미 수익을 회수했는데, 성과급에까지 국민 몫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과실은 직접 고용되거나 주주가 됨으로써 나눌 수 있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반박도 많았다. "지역화폐 지급이나 부동산 매입 형사처벌 같은 주장은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법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본인이 원한다면 SK하이닉스에 입사하거나 주식을 사면 된다. 그게 자본주의의 규칙"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다수 누리꾼 사이에서는 "나라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보상 체계 둘러싼 노노(勞勞) 갈등,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나

이번 사태가 단순한 임금 협상 분쟁과 다른 것은 갈등의 축이 노사 간이 아니라 노노(勞勞) 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직과 생산직, 메모리와 비메모리, 본사와 협력사 등 같은 회사 안에서도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집단들이 보상의 정당성을 두고 충돌하는 양상이다.

성과급 상한을 없애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산업계 전반으로 번질 경우 기업의 미래 투자 재원이 줄어들고, 호황과 불황에 따라 보상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반도체처럼 수조 원대 선제 투자가 경쟁력의 전제 조건인 업종일수록 이 문제는 더 민감하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구조 변화의 파장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지나 제조업 전체로 번지고 있다. 얼마를 받느냐보다 왜 이만큼 받느냐를 설명하는 기준, 즉 보상의 철학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 왔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