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 이후 한국에 대한 대북 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북한 미사일 발사 동향 등 핵심적인 감시·정찰 정보는 기존처럼 정상적으로 공유되고 있어 한미 연합 대비 태세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다는 게 군 당국 설명이다.
이번 사안은 정 장관의 발언이 미국이 제공한 비공개 정보를 노출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공개된 내용을 언급한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까지 정 장관을 두둔하고 나서면서 외교·안보 현안을 넘어 정치적 파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군 고위 관계자는 이날 “미국이 이달 초부터 위성을 통해 수집한 일부 대북 정보의 공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제한된 정보가 북한의 일부 기술 관련 정보라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해당 조치가 우리 군의 군사 대비 태세에 큰 지장을 주는 수준은 아니며 북한 군사 활동에 대한 한미 당국의 정보 수집과 공유는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감시·정찰 태세에도 영향이 없다는 것이 군 당국의 기본 입장이다.
군은 실제 대응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9일 북한이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수 발을 발사했을 당시에도 우리 군은 발사 이전부터 관련 동향을 식별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신포 일대 북한 잠수함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포착하고 있으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성 핵시설' 발언이 발단
이번 논란의 발단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지난달 6일 국회 발언이다. 정 장관은 당시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를 설명하며 기존에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과 남포 강선 외에 평북 ‘구성’을 추가로 언급했다.
이 발언 이후 논란이 커졌는데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당시 보고에서 구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던 데다 미국 측도 정 장관 발언 가운데 ‘구성’ 부분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위성, 감청, 정찰 등을 통해 확보한 대북 정보를 한국과 공유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제공된 비공개 정보가 사전 협의 없이 공개됐다고 보고 항의했으며 재발 방지 요구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 공유 제한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안보 라인을 중심으로 대북 정찰·감시 능력 약화 우려가 제기됐다. 북한이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 빈도를 높이고 잠수함 전력 움직임까지 포착되는 상황이어서 우려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다만 군은 이번에 제한된 정보가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미 정보협력 전반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아니며 미사일 탐지와 핵심 군사 동향 파악 등 대비 태세는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동영 장관도 즉각 반박에 나섰다. 정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발언은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정책 설명이었을 뿐이라며, 이를 민감 정보 유출로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특히 문제가 된 ‘구성’이라는 지명은 처음으로 공개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새롭게 비공개 정보를 폭로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범위 안에서 북핵 관련 상황을 설명했다는 취지다.
정 장관은 이 과정에서 시점 문제도 함께 거론했다. 그는 지난해 7월 14일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같은 내용을 언급했지만 그때는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다며,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이 사안이 다시 불거진 배경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조용히 넘어갔던 사안을 뒤늦게 문제 삼는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문도 내비쳤다.
정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북핵 위협의 현실과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북한의 핵 개발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알려진 시설명을 언급한 것을 두고 정보 유출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논란이 한미 간 불필요한 오해로 번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관계 당국 사이의 소통을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野 “즉각 경질” 與 “국익 해치는 공세”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안을 두고 공방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미국의 대북 정보 공유 제한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외교·안보 대참사”라고 규정하며 즉각적인 경질을 요구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이 벌써 일주일째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하루 50~100장씩 쌓이던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이 초래한 역대급 외교 참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은 정 장관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단순 경질 요구를 넘어 ‘정보 유출’ 가능성을 거론하며 법적 조치 검토까지 언급하는 등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미국이 위성 정보 공유를 중단하면 우리 군의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며 “그 자체로 국가 안보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건 의원도 “정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은 민간 분석과 차원이 다르다”며 “이미 공개된 정보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공세를 정면 반박했다. 민주당은 정 장관 발언이 이미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밀 누설’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구성 핵시설 관련 내용은 해외 연구기관 보고서와 국내 언론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안”이라며 “이를 두고 경질론까지 꺼내 드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해적 공세”라고 비판했다. 한미 동맹 훼손 프레임을 앞세운 정치 공세라는 반격이다.
김태년 의원도 그는 페이스북에서 “정 장관이 언급한 구성 핵시설은 기밀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정보”라며 “새로운 정보가 없다면 기밀 유출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을 향해 “또 안보팔이에 나섰다”고 비판하며 이번 논란을 정치적 공세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 “기밀 누설 전제 자체가 잘못”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20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글을 올려 정 장관이 미국이 제공한 기밀을 누설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밝히며 정 장관을 옹호했다. .
이 대통령은 “구성 핵시설 존재는 이미 논문과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정 장관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며 이번 논란의 배경을 점검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정 장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민간 분석이나 언론 보도로 알려진 내용을 공개 석상에서 사실처럼 확인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이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 정보와 비공개 정보의 경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발언 수위 조절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군은 한미 공조의 근간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군은 제한된 정보가 일부 기술 정보에 그친다고 설명했고 국방부도 연합 방위 태세와 정보 공유 체계는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안을 계기로 동맹 간 민감 정보 관리와 고위 당국자의 발언 기준을 둘러싼 논의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