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성폭력당해 아이 출산 후 입양 보낸 아내... 고통 이해하지만 혼인 취소 가능할까“

2026-04-26 00:55

결혼 1년 후 발견한 아내의 괴로운 과거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Jirapong Manustrong-shutterstock.com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Jirapong Manustrong-shutterstock.com

아내가 결혼 전 성폭력 피해로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긴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한 남성의 사연이 전해졌다.

이 사연은 최근 방송된 YTN 라디오 프로그램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서 자세히 다뤄졌다.

사연을 보낸 남성에 따르면 그는 올해 43세로 중견 제조업체 회계팀 과장으로 근무한다.

그는 40세를 앞둔 시점에 직장 동료의 소개로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시립도서관 사서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약 1년 동안 연애를 한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 초반은 큰 갈등 없이 매우 평온하게 유지됐다.

남성은 월말 결산 시즌마다 잦은 야근을 했고 아내 역시 도서관 행사 등으로 바쁜 날이 많았지만, 두 사람은 큰 다툼 없이 원만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부부의 평화로운 일상에 금이 가는 문제는 결혼한 지 약 1년쯤 지나 이사를 준비하던 중에 발생했다.

남성은 이사를 앞두고 아내의 짐을 정리하다가 낡고 오래된 상자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 상자 안에는 갓난아기의 사진과 서류 몇 장이 함께 보관돼 있었다.

해당 서류는 다름 아닌 출생신고 관련 서류였다. 출생신고서에 기재된 어머니란에는 아내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충격을 받은 남성은 그날 밤 아내에게 사진과 서류에 관해 물었다.

사실을 들킨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아내는 "스무 살 무렵 성폭력 피해를 보아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고 여러 사정으로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다"라며 "그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이라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울면서 과거의 아픔을 고백했다.

이에 대해 남성은 "아내가 겪었을 그 끔찍한 고통을 납득한다. 하지만 결혼이란 서로의 인생을 함께하는 일인데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결혼했다는 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적어도 결혼 전에는 솔직히 털어놨어야 한다"라고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만약 그랬다면 나는 이 결혼을 한 번 더 신중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아내의 아픔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이미 바닥까지 무너져버린 신뢰를 안고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라고 깊은 고뇌를 토로했다.

끝으로 그는 "과거를 알리지 않고 결혼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혼인 취소가 가능하다면 재산분할이나 위자료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라고 법률적 조언을 구했다.

해당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김나희 변호사는 사연자의 질문에 대해 법률적 견해를 상세히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사기로 인한 혼인 취소는 혼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속인 경우에만 인정된다.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은 고지 의무가 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에 이를 단순하게 숨겼다는 것만으로는 혼인 취소나 위자료 청구 사유는 되지 않는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또한 "혼인 취소면 처음부터 결혼이 없었던 것 아니냐, 재산분할도 못 하는 게 아니냐고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민법은 혼인 취소의 경우에도 재산분할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일정 기간 부부로 생활하면서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 있다면 이혼과 마찬가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혼인 취소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당사자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혼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만한 중대한 사유인지 여부다.

민법 제816조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과거의 임신이나 출산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결혼한 것은 상대방의 혼인 결정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망 행위로 간주돼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법원은 과거에 다른 사람과 교제하며 아이를 낳아 입양을 보낸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한 일반적인 사례에서 이를 중대한 속임수로 보아 혼인 취소 사유로 인정한 판례를 여럿 남긴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연처럼 출산의 원인이 본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나 책임이 아닌 범죄 행위 즉 성폭력 피해로 인한 것이라면 법원의 판단 기준은 완전히 달라진다. 성범죄 피해 사실은 피해자 개인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는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철저히 속한다.

따라서 이를 미래의 배우자에게 강제적으로 밝혀야 할 법적인 고지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법조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깊은 상처를 들춰내지 않을 권리가 혼인 상대방의 알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가 끔찍한 성폭력 피해 사실과 그로 인한 출산 내역을 침묵한 것은 혼인 질서를 해치는 적극적인 사기 행위로 평가받기 힘들며, 남편이 이를 이유로 혼인 취소 소송이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법원에서 기각될 확률이 높다.

다만 혼인 취소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파탄에 이르렀다면 이혼 절차를 밟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가능하다.

민법 제840조 제6호가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의 끔찍한 과거 사실 그 자체보다는 부부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기초가 되는 신뢰가 거짓말과 장기간의 은폐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재판부에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법원은 부부 양측이 혼인 파탄을 막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했는지를 꼼꼼히 살피게 되며, 아내가 과거 원치 않는 임신을 해야만 했던 가혹한 범죄 피해자라는 특수한 상황은 이혼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참작 사유로 작용한다.

재산분할 절차로 돌입할 경우 혼인 기간이 1년에 불과한 짧은 단기 혼인이라는 점이 핵심 변수로 크게 작용한다. 단기간에 허무하게 끝난 혼인 생활에서는 부부가 공동으로 노력해 이룩한 재산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혼 전 각자가 본래 가져온 특유재산 즉 남편이 단독으로 보유했던 예금이나 아내가 모아둔 자산 등은 원칙적으로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되며, 혼인 이후 발생한 소득과 지출을 엄격히 계산해 실질적인 기여도에 따라 분할 비율이 산정된다.


home 방정훈 기자 bluemoon@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