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는 이제 그만…MZ세대에서 선물하기 1위 등극한 의외의 '물건'

2026-04-20 11:44

젊은 층 사이서 유행하는 기묘한 '액땜' 소비

최근 한국 사회에서 행운이나 액막이를 뜻하는 물건을 사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럭키슈머(Luckysumer)’ 현상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AI로 제작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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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슈머는 행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럭키(Lucky)’와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친 말이다. 경기가 나빠지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가 사주나 운세에 기대는 마음을 소비로 표현하기 시작한 결과다. 과거에는 미신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유행이자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유통업계 자료를 보면 이러한 흐름이 수치로 명확히 나타난다. 19일 카카오커머스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액막이’, ‘행운’, ‘명태’, ‘부적’, ‘네잎클로버’ 같은 말을 포함한 상품 판매량은 최근 1년 사이 약 37퍼센트나 늘었다. 판매되는 브랜드 숫자도 500여 개로 늘어나며 시장 자체가 커지는 중이다.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패션 플랫폼 29CM에서도 ‘액막이’라는 말을 검색한 횟수가 이전보다 72퍼센트 증가했다. 특히 부적 모양의 열쇠고리인 ‘부적 키링’ 관련 상품의 거래액은 1년 전보다 295퍼센트나 뛰어올랐다.

‘돈명태’ 사려고 9만 명이 줄 선다... 액막이의 현대적 변신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전통적인 액막이 물건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한국조폐공사가 내놓은 ‘돈명태 마그넷’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품은 예로부터 집 안에 걸어두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던 ‘액막이 명태’를 자석 형태로 만든 것이다. 특징은 5만원권 지폐를 만들 때 나오는 화폐 부산물을 제품 안에 담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처음 출시되자마자 바로 다 팔렸고, 최근 4차 예약 판매까지 모두 매진되었다. 한때는 제품을 사기 위해 대기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이 9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사람들은 왜 이런 물건에 열광할까. 단순히 장식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나 전쟁 소식, 불안한 고용 시장 등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행운’이라는 상징을 곁에 두어 불안감을 씻어내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네잎클로버를 파는 가판대가 생겨나고, 자신의 가방에 명태나 부적 모양의 열쇠고리를 달고 다니는 것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MZ 세대가 사주와 신점을 대하는 방식: "정신적인 MBTI"

젊은 세대에게 사주나 신점은 단순히 복을 비는 행위를 넘어선다. 이들은 사주를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을 파악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면, 사주는 내가 왜 이런 성향을 타고났는지를 설명해 주는 근거가 된다고 믿는다. 일방적으로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이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위안을 얻는 일종의 심리 상담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부적 관련 키링들 / 인터넷 포털 캡처
부적 관련 키링들 / 인터넷 포털 캡처

이들은 점술을 소비하는 방식도 매우 능동적이다. 과거처럼 점집에 직접 찾아가 현금을 내기보다는 ‘점신’이나 ‘포스텔러’ 같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운세를 확인한다. 용하다는 무속인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신점 브이로그’를 공유하기도 한다. 상담 결과는 잊어버리지 않게 기록 앱인 ‘노션’이나 일기에 꼼꼼히 적어둔다. "올해 하반기에 운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원동력 삼아 더 열심히 살아가는 ‘운세 기반 갓생(부지런하고 모범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돈 써서 나쁜 운을 막는 ‘액땜’의 소비 문화

사주나 신점을 보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 중 하나가 ‘액땜’이다. 큰 불행이 닥치기 전에 작은 일로 나쁜 운을 미리 때운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를 피동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를 능동적인 소비로 연결한다. ‘삼재 방지 반지’나 ‘재물운 팔찌’처럼 세련된 디자인의 액세서리를 직접 사서 착용하는 방식이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가벼운 사고가 났을 때도 "앞으로 올 큰 화를 면하려고 액땜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를 소셜 미디어에 기록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도 한다. 액땜을 일종의 ‘선불 결제 시스템’처럼 여기는 것이다. 작은 지출이나 가벼운 불편을 미리 감수함으로써 미래의 큰 위험을 막겠다는 심리가 담겨 있다.

유통업계가 ‘행운’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이유

유통업체들도 이러한 럭키슈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29CM는 오는 20일부터 다양한 행운 아이템을 모은 선물하기 기획전을 처음으로 연다. 식품 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디야커피가 작년 말 내놓은 ‘붕어빵 액막이 키링’은 사전 공개 때부터 4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다이소에 진열된 행운 굿즈 / 연합뉴스
다이소에 진열된 행운 굿즈 / 연합뉴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품이 단순히 잘 팔리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분석한다. 소비자가 ‘의미’가 담긴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다른 상품까지 함께 구경하고 담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액막이 키링을 사러 들어온 고객이 그와 잘 어울리는 가방이나 소품을 줄줄이 사는 식이다. 이는 기업의 매출을 올릴 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장기적인 전략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예쁘고 실용적인 것이 선물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건강이나 합격, 행운을 빌어주는 ‘의미’ 자체가 선물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경기가 어려워 비싼 선물을 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몇만 원대로 진심을 전할 수 있는 행운 오브제가 훌륭한 대안이 된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 사주와 운세는 생존 전략

결국 럭키슈머 현상은 불안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현대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주를 통해 자신의 삶을 미리 들여다보고, 액막이 아이템을 통해 마음의 방어막을 치는 행위는 심리적인 보험과 같다.

사주와 신점에 열광하는 것을 두고 단순히 미신에 빠졌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구와,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삶의 통제권을 쥐어보려는 노력에 가깝다. 행운을 상징하는 물건을 사고 운세를 확인하며 얻는 짧은 안도감이, 힘든 현실을 버티게 하는 작은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럭키슈머 마케팅은 앞으로도 더 정교해질 전망이다. 단순한 굿즈 판매를 넘어 개인의 운세에 맞춘 맞춤형 상품이나, 전통적인 음양오행 이론을 세련되게 풀어낸 라이프스타일 제안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계속되는 한, 행운을 사고 파는 이 뜨거운 열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