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려고 마시는 건 옛날 이야기…2030이 바꾼 술자리의 기묘한 풍경

2026-04-20 10:00

젊은 세대의 '까다로운 소비', 주류업계 판도 바꾼다

술을 덜 마시는 젊은 세대가 오히려 주류 시장을 바꾸고 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하이볼 상품들. / 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하이볼 상품들. / 연합뉴스

덜 마시되 더 까다롭게, 취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을 우선하는 소비 방식이 확산하면서 주류업계는 기존에 없던 제품과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시장의 파이는 줄었지만, 그 안에서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수치로 확인되는 음주 감소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22년 326만 8623㎘에서 2023년 323만 7036㎘, 2024년 315만 1371㎘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출고량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2015년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9.813L였는데 2021년에는 8.071L로 6년 만에 18% 줄었다.

주종별로도 감소세가 뚜렷하다. 2025년 4분기 소주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4.3%, 맥주는 31.1%, 와인은 10.8% 각각 줄었다.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91만 5596㎘에서 84만 4250㎘로 약 8% 감소했다.

음주 하는 모습 / mujijoa79-shutterstock.com
음주 하는 모습 / mujijoa79-shutterstock.com

20대의 변화가 특히 두드러진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4년 20대 중 술을 아예 마시지 않거나 월 1회 이하로 마시는 비율이 56.0%에 달했다. 30대 47.6%, 40대 44.4%보다 높다. NH농협은행 자료에서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20대의 주점 소비 건수는 20.9% 줄었다. 30대 15.5%, 40대 10.9%와 비교해도 감소 폭이 가장 크다.

월간 폭음률(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 7잔, 여자 5잔 이상 마시는 비율)도 2023년 35.8%를 정점으로 2년 연속 내려앉아 2025년 33.8%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종료 이후 모임 문화가 달라지고 건강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덜 마신다'가 아니라 '다르게 마신다'

수치만 보면 주류 시장이 단순히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은 조금 다르다. 인크로스가 2025년 3월 진행한 아이앤서베이 조사에서 2030세대의 81.5%는 여전히 음주를 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음주 빈도에서 '월 0~1회' 비율이 43.0%로 가장 높았다. 선호 음주 스타일로는 저도수 주류가 54.1%로 1위, 섞어 마시는 믹솔로지가 34.6%로 2위, 무알코올·비알코올이 23.2%로 3위를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라고 부른다. 금주는 아니지만 술을 마실지 말지 스스로 선택하고, 마실 때도 의미 있게 즐기겠다는 태도다. 이 흐름 속에서 저도수, 무알코올, RTD(바로 마시는 완성형 음료) 시장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무알코올이 하나의 카테고리가 됐다

삼겹살과 술 (AI로 제작)
삼겹살과 술 (AI로 제작)

국내 무·비알코올 맥주 시장은 2021년 415억 원에서 2023년 644억 원으로 55.2% 성장했다. 유로모니터는 이 시장이 2027년 956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봤다. 글로벌 주요 시장과 비교하면 아직 초기 단계지만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이 시장을 가장 먼저 개척한 하이트진로음료는 2012년 '하이트제로0.00'을 선보이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알코올 맥주맛 음료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닐슨아이큐코리아의 2025년 기준 집계에 따르면 하이트제로0.00은 약 36.8%의 점유율로 국내 무알코올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알코올뿐 아니라 칼로리와 당류까지 뺀 '올프리' 콘셉트가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통했다는 평가다.

하이트진로음료는 2026년 신제품 '테라 제로'를 출시하며 무알코올 투트랙 전략을 공식화했다. 하이트제로0.00이 건강 가치를 내세운 제품이라면, 테라 제로는 맥주 본연의 풍미와 강한 탄산감으로 기존 맥주 소비층까지 끌어오는 역할을 맡는다. 하이트진로음료 관계자는 "무알코올 음료가 특정 상황에 국한된 선택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는 일상적 소비로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RTD 하이볼, '하이볼 2.0' 시대

무알코올과 함께 주류 시장의 또 다른 성장 축은 RTD 하이볼이다. RTD는 'Ready To Drink'의 약자로, 위스키와 탄산수, 과일향 등을 미리 혼합해 캔에 담은 완성형 제품이다. 직접 술을 섞는 번거로움 없이 캔을 따서 바로 마실 수 있다.

편의점 CU의 하이볼 매출 신장률은 2023년 553.7%, 2024년 315.2%, 2025년 190.1%로 3년 연속 세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GS25에서도 RTD 하이볼 매출이 한 분기 만에 221.5% 뛰었다. 세븐일레븐이 스타 셰프와 협업해 내놓은 하이볼 2종은 출시 3주 만에 누적 20만 개를 돌파하며 카테고리 매출 1, 2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하이볼 자료사진 / maodoltee-shutterstock.com
하이볼 자료사진 / maodoltee-shutterstock.com

2026년에는 이른바 '하이볼 2.0' 경쟁이 본격화됐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직접 섞어 마시던 1세대 믹솔로지 유행이 지나고 완성도 높은 RTD 캔이 시장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이다. CU는 세계 최초로 글로벌 프리미엄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를 원주로 쓴 생과일 하이볼 '앱솔루트 하이볼 피치'와 '앱솔루트 하이볼 오렌지'를 출시했다. 캔을 열면 실제 과일 슬라이스가 위로 떠오르는 제품으로, 도수는 4.5%다. 기존 주정 대신 여러 번 여과한 보드카를 원주로 써 떫은맛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GS25에서는 1만 원대 스카치 위스키 '티처스'가 SNS에서 하이볼용 가성비 위스키로 입소문을 타며 3차 물량까지 완판됐다. GS25의 1만 원대 위스키 매출은 2026년 1~2월 기준 전년 대비 20.8% 늘었고, 함께 찾는 레몬·탄산수·얼음컵 매출도 동반 상승했다. 프리미엄과 가성비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장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주류 기업들의 전략 변화

소주와 맥주 중심이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소주 처음처럼을 베이스로 한 RTD 하이볼 외에도 위스키 기반 신제품을 잇따라 냈다. 신세계L&B는 부우부우 하이볼, 나나 하이볼 등으로 라인업을 넓혔다. 보해양조도 매실 하이볼을 출시하며 지역소주 브랜드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체험 공간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접점을 만드는 전략도 나타나고 있다. 삿포로맥주는 서울 성수동에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를 열었다. 도쿄 긴자의 '삿포로 생맥주 블랙라벨 더 바'를 그대로 옮겨 온 공간으로, 1인당 3잔까지만 판매하는 규칙과 서서 마시는 일본식 '타치노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취향이 확고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저도수, 무알코올, RTD 등 각 카테고리 안에서도 세분화가 진행되고 있어 상품 기획 주기가 이전보다 훨씬 짧아졌다"고 말했다.

줄어든 시장, 그러나 넓어진 선택지

소주와 맥주 두 가지가 전부였던 편의점 주류 매대가 저도수 하이볼, 무알코올 음료, 전통주 기반 RTD, 프리미엄 위스키 캔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술의 종류가 많아진 게 아니라 술을 마시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결과다.

인크로스 조사에서 무알코올·비알코올 선호 응답은 23.2%로 아직 소수에 그친다. 그러나 이 수치가 매년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점을 업계는 예사롭지 않게 본다. 2030세대가 지금의 음주 방식을 유지하며 40대, 50대가 됐을 때 주류 시장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질지가 관건이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