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심지에는 영일민속박물관 '제남헌(濟南軒)'이 수백년의 역사를 지키며 자리하고 있다.
1991년에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50호로 지정이 된 제남헌은 당시 조선시대 흥해군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이었다.
흥해읍성(興海邑城)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건물로 흥해읍성과 관아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모두 헐리고 이 건물만 복원돼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야외에는 보호수로 600년 된 회화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포항시는 매년 회화나무에 막걸리를 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둘레 7m, 3.5m의 회화나무는 6백여년 전인 조선 헌종 때 건립돼 흥해군 청사인 동헌(東軒.현 박물관)으로 사용된 제남헌과 함께 흥해의 역사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유구한 역사성을 지닌 포항시 북구 흥해읍이 선거구획정으로 반토막이 났다.
조선후기 흥해군으로 불리며 현재 포항시의 정신적인 뿌리역할을 했던 흥해, 최악의 지진피해를 입고 도시재건이 여전히 한창인 흥해가 정치권의 이해득실로 인해 구도시와 신도시로 쪼개지면서 흥해의 역사성을 훼손했다.
선거구획정을 앞세운 정치권이 흥해의 역사성과 자존심을 짖밟아 버린 셈이다.
국회가 지난 17일 의결한 선거제도 개편안 결과, 포항시 북구 흥해읍은 초곡지구와 이인지구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초곡리·학천리·성곡리·이인리·대련리가 기존 1선거구에서 분리돼 2선거구로 편입됐다.
신도시 인구 급증에 따른 것이 이유라지만, 멀쩡했던 흥해를 구도시와 신도시로 쪼개버린 것이다.
흥해읍은 최근 몇 년 새 대규모 신규 아파트 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초곡·이인지구, 펜타시티 등 대단위 주거단지 개발과 영일만산업단지 활성화로 지난 1월 인구 6만 명을 넘어섰다.
2025년 5월 기준 흥해읍 인구는 5만8545명이었으나 올해 1월에는 6만명을 돌파했다.
흥해읍에 인접한 신광면과 기계면, 청하면, 죽장면, 송라면까지 합치면 인구는 7만8000명에 육박해 선거구 분구가 필요했다는 것이 주 이유다.
그러나 인구증가에 따른 선거구 조정 문제가 해당 지역의 역사성을 앞설 수는 없다.
행정구역상 '흥해읍'이라지만 선거구가 도의원 기준으로 1선거구와 2선거구로 쪼개지면서 시의원 또한 별도로 뽑는다.
이름만 '흥해'일 뿐이다.
6.3지방선거가 끝나면 흥해는 따로 선출된 지방의원을 중심으로 허울뿐인 흥해로만 남는다.
1선거구는 유구한 역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최악의 지진피해를 입은 '구 흥해'란 이름으로만 남을 것이다.
반면, 2선거구는 '신도시 흥해'란 이름을 앞세워 행정구역만 같을뿐 또다른 흥해읍민으로 독립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흥해의 역사성이 훼손되는 이 순간, 흥해읍민들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흥해를 유린했는지 기억할 것이며,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흥해의 역사
삼한시대 다벌국(多伐國)의 영역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퇴화군(退火郡)이 됐다.
757년 의창군(義昌郡)으로 개칭하고 안강현(安康縣), 기립현(鬐立縣 : 장기), 신광현(神光縣), 임정현(臨汀縣 : 영일), 기계현(杞溪縣), 음즙화현(音汁火縣)을 관할했다.
고려 태조 13년(930년) 흥해군으로 개칭했고, 현종 9년(1018년)에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곡강(曲江)이라는 별호가 부여됐다.
명종 2년(1172년) 감무를 파견하여 주현으로 승격했다.
공민왕 16년(1367년) 국사(國師) 천희(千熙)의 고향이라 하여 흥해군으로 승격했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동래부 흥해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경상북도 흥해군이 됐다.
1906년 경주군 신광면, 기계면, 북안면 일부를 편입했다.
1913년 4월 1일: 북안면을 영천군(永川郡)에 편입했다.
1914년 3월 1일 영일군에 편입되어 폐지됐다./나무위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