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간의 탈출극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국민 늑대’ 늑구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게시물이 등장했다. "늑구가 좁은 시멘트 바닥 철장에 갇혀 사는 것 아니냐"는 동정 여론에 반박하는 내용이다.
'늑구 집 정말 넓음'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18일 인스티즈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글쓴이는 "늑구가 집으로 돌아가면 시멘트 바닥의 좁은 철장에 갇혀 산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많지만 늑구 집은 1만평 규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SBS ‘TV동물농장’에 나온 바 있는 토종 늑내 사파리 촬영물을 공개했다. ‘TV동물농장’은 2020년 토종 늑대 6남매가 국내 최대 환경의 늑대 사파리에서 지낸다고 소개한 바 있다. 방송에 따르면 토종 늑대들이 지내는 공간은 한정된 동물사가 아니라 3만3000㎡(약 1만평) 규모의 사파리다. 당시 사육사는 방송에서 "토종 한국 늑대 3세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에만 있다. 5년 만에 태어나서 굉장히 귀한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오월드 측은 늑대들의 본능을 지켜주기 위해 야생 사파리에서 키우되 두 그룹으로 나눠 새끼와 부모를 분리해 관리한다고 한다. 관리는 쉽지 않았다. 여름철 진드기 같은 외부 기생충으로 죽기도 하고 어미 없는 틈을 타 경쟁 암컷이 굴속으로 들어가 새끼를 해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세력 다툼 등으로 자연 포육이 어려워지면서 6남매는 인공 포육으로 전환해 생존율을 높였다.
당시 방송에 등장한 토종 늑대 6남매 중엔 늑구가 포함돼 있지 않다. 수컷인 늑구는 2024년 1월 태어났다.
늑구가 지내는 곳은 어디?
인스티즈 글쓴이가 맘 놓으라고 알린 것처럼 늑구가 사는 공간은 일반 동물원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대전 오월드 늑대 사파리는 방사형 구조로 면적이 약 3만3000㎡, 대략 1만 평에 달한다. 이 넓은 공간 안에서 늑구를 포함한 늑대 20여마리가 함께 산다.
댓글을 단 한 누리꾼은 "늑구 집이 엄청나게 크다. 가보면 늑대 수십 마리가 사는데 너무 넓어서 늑대들이 사는지 안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찾기도 어려운 곳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고 전했다. 글쓴이도 "한국 늑대 복원사업으로 태어난 개체라 귀하게 관리받으며 넓게 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늑구가 그 넓은 집을 박차고 나간 것은 지난 8일 오전이었다. 오월드에 따르면 늑구는 그날 오전 9시18분쯤 사파리 울타리 밑 땅을 직접 파고 빠져나갔다. 개장 전 점검 중 20여 마리 중 1마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오월드 측은 자체 수색을 벌이다 약 40분 뒤 당국에 신고했다.
오전 9시30분쯤 오월드 인근 운남로에서 차량을 보고 놀라 달아나는 늑대의 모습이 블랙박스에 찍혔다. 오전 10시52분 당국은 안전 안내문자를 발송했고, 오전 11시30분쯤 오월드 밖으로 완전히 이탈한 것이 확인됐다. 인근 대전산성초등학교는 안내문자를 확인하는 즉시 출입문을 봉쇄하고 운동장 교육활동을 중단했다.
탈출한 늑구를 9일 동안 추적한 수색당국의 여정도 숨 가팠다. 대전시와 소방, 경찰, 군, 야생생물관리협회 등에서 인력 3163명과 장비 280여 대가 투입됐다.
늑구는 어떻게 안전하게 생포됐나
탈출 엿새째인 14일에는 오월드에서 2㎞ 떨어진 중구 오도산에서 열화상 드론에 포착됐으나 마취총이 빗나갔다. 늑구는 2m 높이 옹벽을 단숨에 뛰어넘고 포위망을 뚫어 사라졌다.
결정적 순간은 17일 새벽이었다. 전날 오후 5시30분 침산동 뿌리공원 인근 제보가 들어왔으나 오소리로 판명됐다. 수색팀이 포기를 고민하던 오후 11시45분, 드론이 안영IC 인근에서 늑구의 위치를 잡아냈다.
마취 수의사 6명, 진료 수의사 4명, 사육사 5명이 현장에 배치됐다. 17일 0시39분 20m 거리에서 마취총 한 발이 늑구의 엉덩이에 명중했다. 이 수의사는 14일 1차 포획 시도 때도 마취총을 발사한 적이 있다.
늑구는 마취총을 맞고도 약 6분간 400~500m를 비틀거리며 달아나다 인근 수로에 빠졌다. 물이 흐르고 있어 익사 위기에 처했으나 현장 대원이 즉시 뛰어들어 머리를 받쳐 올려 구조했다고 한다. 그렇게 0시 44분 늑구 포획이 완료됐다.
살아 돌아왔지만 검진 결과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했다. 오월드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위장 안에서 길이 2.6㎝짜리 낚싯바늘이 나왔다. 위 안에는 나뭇잎과 생선 가시도 함께 있었다. 9일 동안 야산을 떠돌며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은 것으로 추정됐다.
낚싯바늘이 위 안쪽 깊이 박혀 있어 2차 동물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의료진은 개복 수술 대신 내시경 시술로 낚싯바늘을 제거했다. 혈액검사에서는 특이 소견이 없었고, 맥박과 체온도 정상 범위였다.
이번 늑구 생포가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뽀롱이란 이름의 퓨마가 8년 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적이 있다. 늑구도 사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이번에는 달랐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성명을 내고 "늑구의 생포는 끝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무사 귀환의 미담으로만 남긴다면, 오월드는 또다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라며 "더 높은 울타리와 더 강한 통제만으로는 같은 문제를 막을 수 없다"고 촉구했다.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은 "늑대 탈출로 시민들께 큰 심려를 드린 것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외부 전문기관과 함께 시설 및 운영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 문제점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장우 대전광역시장도 "오월드 개편 과정에 동물복지와 시민 안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국민 스타' 떠오른 늑구
늑구는 국민 스타가 됐다. 탈출 직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는 늑구 관련 밈으로 넘쳐났다. 늑구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과 인터뷰하는 모습, 한국야생동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늑대 생태를 발표하는 모습, 자서전을 직접 집필하는 모습이 AI 사진으로 등장했다. 대전 대표 빵집인 성심당에서 늑구 얼굴과 발바닥을 본뜬 빵을 팔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전의 진정한 셀럽은 성심당과 늑구뿐", "늑구 팬클럽 창단해야 할 듯"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대전 연고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와 K리그1 대전하나시티즌 팬들 사이에선 '늑구의 저주'라는 말이 회자됐다. 한화 이글스는 늑구가 탈출한 이튿날인 9일 경기가 우천 취소된 뒤 홈에서 치러진 경기에서 전패했고, 대전하나시티즌도 지난 12일 강원FC와의 홈 경기에서 2대0으로 완패했다. 한화 팬들은 늑구가 귀환한 만큼 한화 불펜 제구도 돌아오면 된다는 반응을 내놨다.
돌아온 늑구는 현재 동물원 별도 격리 공간에서 회복 중이다. 안정화되면 별도 공간에서 가족과 생활한 뒤 기존 무리에 합사할 예정이다.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다. 사파리가 워낙 넓은 만큼 관람객이 찾아와도 어느 늑대가 늑구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오월드는 늑구에게 이름표 등을 달아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