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유 세계 1위 수출국인데…한국 여행객이 유류할증료 폭탄 맞는 이유 (+뜻)

2026-04-17 20:12

5월 발권분부터 사상 첫 최고 단계…항공권 한 장에 유류할증료만 56만원

국제선 비행기 유류할증료가 사상 최고 단계로 인상되면서 그 뜻을 묻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올여름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소비자라면 항공권 가격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숫자가 생겼다. 유류할증료다. 5월 발권 국제선 항공권에 적용되는 유류할증료가 제도 도입 이래 처음으로 최고 단계인 33단계에 도달했다. 3월만 해도 6단계였는데, 두 달 사이에 상한선까지 치솟았다.

유류할증료 '33단계'···지난 달에 비해 5배 넘게 뛰었다. / 뉴스1
유류할증료 '33단계'···지난 달에 비해 5배 넘게 뛰었다. / 뉴스1

숫자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보면 된다. 대한항공 기준으로 뉴욕·보스턴·시카고 등 미주 장거리 노선의 유류할증료는 3월 9만9000원이었다. 5월에는 56만4000원이다. 항공권 본체 가격에 이 금액이 고스란히 더 얹힌다.

유류할증료란 무엇이고, 어떻게 정해지나

유류할증료 뜻을 살펴보면 항공사가 연료비 상승분을 운임에 반영하는 추가 요금이라고 볼 수 있다. 항공기 운항 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35%에 달한다. 유가가 출렁일 때마다 항공사가 그 리스크를 오롯이 떠안기 어렵기 때문에 승객과 나누는 구조로 설계됐다.

산정 방식은 기계적이다. 매달 중순, 전전월 16일부터 전월 15일까지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 현물 가격(MOPS)을 집계한다. 그 숫자를 33단계 구간표에 대입해 다음 달 적용 단계를 결정하고, 국토교통부의 거리비례제에 따라 노선별 금액으로 환산한다. 확정된 요금은 적용 2주 전 공지 후 익월 1일부터 발권 항공권에 붙는다.

유류할증료 역대 최대치 '33단계'···관광업계 비상. 중동 사태에 장기화로 국제선 항공권의 유류할증료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16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항공업계에 따르면 5월 발권 국제선 항공권에는 유류할증료가 최고 수준인 33단계로 책정됐다. 대한항공 장거리 노선인 뉴욕·보스턴·시카고 등의 유류할증료는 지난달 9만9000원에서 5월 56만4000원으로 5배 넘게 상승했다. / 뉴스1
유류할증료 역대 최대치 '33단계'···관광업계 비상. 중동 사태에 장기화로 국제선 항공권의 유류할증료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16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항공업계에 따르면 5월 발권 국제선 항공권에는 유류할증료가 최고 수준인 33단계로 책정됐다. 대한항공 장거리 노선인 뉴욕·보스턴·시카고 등의 유류할증료는 지난달 9만9000원에서 5월 56만4000원으로 5배 넘게 상승했다. / 뉴스1

5월 유류할증료 산정 기간인 3월 16일~4월 15일, MOPS는 갤런당 511.21센트를 기록했다. 33단계 기준선인 갤런당 470센트를 40센트 이상 웃도는 수치다. 배럴당으로 환산하면 214.71달러, 원화로는 약 29만4000원이다. 단 한 달 만에 15단계가 수직으로 올랐다.

기준 지표로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싱가포르는 아시아·태평양 최대 석유 제품 거래 시장이자 물류 허브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자국 내 현물 시장이나 인근 국제 제품 가격에 연동해 유류할증료를 결정한다. 특정 국가나 항공사의 실구매 가격을 기준으로 삼으면 가격 체계가 불투명해지고, 항공사 간 형평성도 무너진다.

항공사가 헤징에 성공해도 소비자 부담은 그대로

"우리 항공사는 미리 싼 값에 기름을 사뒀는데 왜 유류할증료를 받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항공사들은 실제로 유가 헤징을 활용한다. 선물 계약이나 옵션을 통해 장래에 쓸 항공유 가격을 미리 고정해두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배럴당 80달러에 헤징을 해뒀다면 시장 가격이 200달러로 치솟아도 항공사는 80달러에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유류할증료는 헤징 결과와 무관하게 MOPS만 보고 산출된다. 항공사마다 헤징 비율과 실제 구매 가격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개별 구매 원가를 기준으로 할증료를 매기면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항공유를 비싸게 샀더라도 이후 국제 시세가 내려가면 유류할증료도 줄어들어 항공사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헤징은 항공사의 경영 판단 영역이고, 유류할증료는 시장 가격 영역이라는 것이 제도 설계의 원칙이다.

한국이 세계 1위 항공유 수출국인데도 오르는 이유

한국은 2022년 기준 연간 1080만 톤 이상의 항공유를 수출하는 세계 점유율 1위(29%) 국가다. 미국이 수입하는 항공유의 70%가 한국산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직접 만드는데 왜 국제 가격을 따르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답은 시장 구조에 있다. 한국은 국제 시장 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석유 제품은 수출입이 자유로운 재화이기 때문에, 정부가 국내 공급가를 인위적으로 낮게 통제하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국내에 팔기보다 전량 해외 수출을 택하는 편이 유리해진다. 이를 막으려면 수출 규제가 필요한데, 이는 자유무역 규범에 어긋나고 정유 산업 자체를 위축시킨다. 결과적으로 국내 항공유 수급 불안정과 에너지 안보 약화로 이어진다.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한국 정유사들이 항공유를 잘 만든다고 해도 그 원료인 원유는 100% 수입에 의존한다. 원재료 가격이 국제 시세를 따르는 이상, 완제품 가격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조 경쟁력과 가격 결정권은 별개의 문제다.

항공권, 지금 사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소비자가 실제로 마주한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유류할증료는 출발일이 아니라 발권일 기준으로 적용된다. 5월에 비행기를 타더라도 4월에 표를 끊었다면 4월 단계가 적용된다. 반대로 말하면, 6월이나 7월 출발 항공권을 지금 사면 현재 단계, 즉 33단계 또는 6월 적용 단계가 붙는다.

업계에서는 5월 유류할증료가 사실상 고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일부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국제 유가가 소폭 안정된다면 6월 발권분부터는 단계가 내려갈 수 있다. 3월 16일~4월 15일 가격이 5월 단계를 결정했듯, 4월 16일~5월 15일 가격이 6월 단계를 결정한다. 유가 흐름이 진정되고 있다면 6월 발권 항공권의 유류할증료는 지금보다 낮아질 여지가 있다.

유류할증료가 3배 가량 급등한 이후 첫 주말인 5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여행객이 이동하고 있다. 유류할증료가 다음 달에는 더 오를 거라는 예측이 나와 항공기 이용객들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 뉴스1
유류할증료가 3배 가량 급등한 이후 첫 주말인 5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여행객이 이동하고 있다. 유류할증료가 다음 달에는 더 오를 거라는 예측이 나와 항공기 이용객들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 뉴스1

그러나 기다리는 전략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유가 하락 폭과 시점이 불확실하다. IEA는 유럽 항공유 재고가 6주 분량에 불과하다고 밝혔고,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를 "역대 최대 에너지 위기"로 규정하며 물리적 공급 부족에 따른 항공 대란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공급 쇼크가 발생하면 유류할증료가 낮아지더라도 항공권 기본 운임 자체가 급등할 수 있다.

둘째, 여름 성수기 좌석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업계에서는 성수기 예약이 통상 5월 중순부터 본격화된다고 본다. 유류할증료 부담을 아끼려다가 원하는 날짜와 노선의 좌석을 놓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여행사들이 꺼내든 카드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여행사들이다. 하나투어는 50~60개 노선을 대상으로 '가격잠금 단거리여행'과 '가격동결 장거리여행'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이미 낮은 단계의 유류할증료를 포함해 항공권을 선확보한 일부 노선에 한해, 이후 유류할증료가 올라도 소비자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지 않는 구조다. 이달 말에는 라이브커머스를 통한 추가 판매도 예정돼 있다. 모두투어 역시 유류할증료와 환율 변동을 반영하지 않은 '가격고정' 기획전으로 여름 수요 선점에 나섰다.

다만 이런 상품은 노선이 제한적이고, 여행사가 사전에 확보해둔 물량 내에서만 가능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목적지가 해당 기획전에 포함돼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유류할증료가 전체 항공권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지금, 표 한 장을 언제, 어떻게 사느냐가 수십만 원의 차이를 만든다.

home 김태성 기자 taesung1120@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