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왜 한국인은 햇빛을 피하고 유럽인은 오히려 찾을까

2026-04-17 09:47

루마니아에서는 햇빛을 찾았고, 한국에서는 햇빛을 피했다. 같은 태양 아래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이렇게 다르게 흘러갔다.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뉴스 1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뉴스 1

루마니아에서는 햇빛을 피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나는 자외선 차단제를 매일 바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한여름 바다에 가거나 아주 강한 햇빛 아래 오래 있을 때는 바르기도 했지만, 평소 외출할 때마다 꼭 챙기는 필수품은 아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그냥 밖에 나가 햇빛 아래 오래 있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런 시간이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느껴졌다.

여름이면 태닝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해가 좋은 날이면 밖에 앉아 햇빛을 쬐고, 피부가 조금 더 어두워지는 것을 건강한 변화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다. 밝고 하얀 피부보다는 적당히 그을린 피부가 더 활기차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인식도 흔했다. 그래서 나 역시 햇빛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랐다.

광화문광장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뉴스 1
광화문광장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뉴스 1

한국에서는 선크림이 계절과 상관없는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국 친구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외출 전에 꼭 선크림을 바르는 모습을 봤을 때 꽤 놀랐다. 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챙기는 모습은 내게 낯설었다. 나는 그전까지 선크림을 특정한 날씨나 장소에 맞춰 쓰는 제품으로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일상적인 기본 루틴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겨울에도 꼭 발라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선크림을 안 바르고 나가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점점 한국식 감각에 익숙해졌고, 지금은 외출 전 선크림을 바르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다.

양산과 긴 소매, 한국의 여름은 ‘피하는 햇빛’에 가까웠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선크림만이 아니었다. 햇빛이 강한 날이면 양산을 쓰는 사람들도 많았고, 여름인데도 팔과 목을 최대한 가리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긴 소매를 입거나 얇은 겉옷을 걸치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고 피부가 타는 것을 막는 것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관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반면 루마니아에서는 더운 날씨일수록 오히려 더 가볍게 입고, 햇볕을 즐기려는 쪽에 가까웠다. 같은 여름인데도, 한국에서는 ‘피하는 햇빛’이고 루마니아에서는 ‘즐기는 햇빛’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뉴스 1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뉴스 1

같은 햇빛인데도 미의 기준은 정반대였다

이 차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건, 그것이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미의 기준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였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밝고 하얀 피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래서 햇빛을 피하는 것이 단순히 피부 건강을 위한 습관을 넘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방식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더 건강해 보이고, 더 활기차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같은 피부색을 두고도 한 사회에서는 칭찬이 되고, 다른 사회에서는 굳이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결국 햇빛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단지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찾는지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콤플렉스였던 피부톤이 한국에서는 칭찬이 됐다

이 차이는 내게도 꽤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루마니아에서 나는 오히려 너무 하얀 피부 때문에 스스로 위축될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아파 보인다고 하거나, 농담처럼 유령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들이 쌓이면서 나 역시 내 피부 톤을 장점으로 느끼기보다는 조금 불편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이 내 피부 톤을 칭찬했고, 밝은 피부를 좋게 봐주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늘 신경 쓰던 것이 꼭 단점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피부인데도, 어느 문화 안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식 습관에 적응했지만, 나는 여전히 햇빛을 좋아한다

그 경험은 나를 조금 바꿔놓았다. 지금은 나도 외출 전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습관이 생겼고, 왜 한국 친구들이 햇빛을 그렇게 조심하는지도 이해하게 됐다. 양산이나 긴 소매, 계절과 상관없는 선크림 사용이 더 이상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사회 안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그곳 사람들이 왜 그런 습관을 갖게 됐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한국식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내 안에는 루마니아에서 자란 감각이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햇볕 아래 누워 일광욕을 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여름을 온전히 느끼는 그 감각은 여전히 내게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조금 묘한 방식으로 두 가지 태도를 함께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처럼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면서도, 루마니아에서처럼 햇빛 자체를 즐기는 마음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샌디 비치에서 자외선 차단 크림을 어깨에 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 셔터스톡
샌디 비치에서 자외선 차단 크림을 어깨에 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 셔터스톡

결국 햇빛을 대하는 태도도 문화였다

어쩌면 이 차이가 더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선크림이나 양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것은 사람들이 피부와 아름다움, 건강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의 문제에 더 가깝다. 어떤 곳에서는 햇빛이 피해야 할 대상이 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찾아야 할 여름의 상징이 된다. 같은 햇빛인데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세계 사이에서, 같은 햇빛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햇빛을 피하는 태도 속에서 자기관리와 미의 기준을 보게 되었고, 루마니아에서는 햇빛을 즐기는 태도 속에서 자유로움과 활력을 느꼈다. 결국 햇빛을 대하는 방식조차, 그 사회가 아름다움과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문화였다.

home 오아나 기자 oana11@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