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 대신 닭으로"… 결핍이 낳은 춘천 닭갈비의 탄생 비화
우리나라 국민들이 사랑하는 외식 메뉴 중 하나인 ‘춘천 닭갈비’. 그런데 닭갈비에는 왜 진짜 ‘갈비’ 부위가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갈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그 이면에는 1960년대 전후의 격동적인 근현대사와 배고픔이라는 결핍을 이겨내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 경제 파탄과 4.19 혁명, 그리고 식탁의 변화
1950년대 후반, 한국 경제의 기둥은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하던 설탕, 밀가루, 면화 등 이른바 ‘삼백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 귀한 물자를 특정 기업에 몰아주는 특혜를 베풀었고, 이후 미국의 원조 방식이 유상으로 전환되면서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굶주린 시민들의 불만과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는 1960년 4월 19일 민주주의 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이처럼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는 역설적으로 우리 식탁 위에 새로운 ‘문화’를 선물했는데, 그것이 바로 춘천 닭갈비의 탄생입니다.
■ 돼지갈비의 자리를 대신한 ‘닭불고기’의 기원
닭갈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초반 춘천에서였습니다. 당시 숯불 돼지고기 가게를 운영하던 김영석 씨는 경제 파탄의 여파로 비싼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닭고기를 돼지갈비처럼 양념하여 팔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닭불고기’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비싼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마음껏 먹지 못하던 시절로 서민들은 비록 저렴한 닭고기이지만 갈비 양념을 해서 구워 먹으며 ‘갈비를 먹는 기분이라도 내자’는 뜻을 담아 이를 ‘닭갈비’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70년대 대학생들의 ‘서민 갈비’로 자리매김
닭갈비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닭갈비 한 대의 가격은 단돈 100원 수준이었습니다. 저렴하면서도 양이 푸짐하고 맛까지 뛰어났던 닭갈비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웠던 대학생들과 서민들에게 최고의 안주이자 한 끼 식사가 되었습니다. 춘천의 뒷골목에서 피어오르던 매콤한 연기는 그렇게 춘천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자,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서민 갈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맺음말
춘천 닭갈비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경제적 빈곤 속에서 탄생한 ‘대체 식품’이 일으킨 ‘시대의 결과물’입니다. 소갈비를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시절,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름이라도 갈비라 붙여 먹었던 백성들의 선택이 오늘날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 먹는 K-푸드가 된 셈입니다. 부족함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풍요로운 맛의 대명사가 된 닭갈비 한 점에는, 우리 민족이 고난의 시대를 견뎌온 끈기와 낙천적인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