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체절명의 순간 낯선 이방인이 내밀었던 구조의 손길을 대한민국 공군은 끝내 잊지 않았다.
2022년 8월 12일 서해상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공군 F-4E 전투기 한 대가 엔진 화재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종사 2명은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기수를 해안으로 돌린 뒤 비상탈출에 성공했지만, 후방석 조종사는 깊은 수심과 부상, 엉킨 낙하산 줄에 갇혀 자력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
그 순간 경기 화성시 제부도 인근 김양식장에서 작업 중이던 스리랑카 국적 노동자 루완 씨와 동료들이 나섰다.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전투기를 목격한 이들은 비상탈출 직후 바다로 떨어지는 낙하산을 보고 곧바로 배를 몰았다. 양식장 도구로 낙하산과 밧줄을 끊어 조종사를 신속히 구조했다. 조종사 부탁으로 조종복 안에 있던 연막탄을 찾아 구조 헬기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실상 초기 구조의 전 과정을 이들이 도맡은 셈이었다.
사고 당시 이들의 활약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와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낯선 나라에서 생명을 먼저 생각한 의로운 행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화성시 외국인복지센터 표창 등 지역 차원의 감사 표시가 뒤따랐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문제는 루완 씨에게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는 점이다. 체류기간 만료로 미등록 체류 신분이 됐고, 건강 악화로 병원 치료를 받는 동안 직장에서마저 퇴사 조치를 당해 생계 기반까지 무너졌다. 경북 영천시의 한국스리랑카불교사원에 임시로 머물며 추방과 생계 단절의 기로에 서 있다는 사연이 언론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안타까운 소식을 공군본부 정훈실도 포착했다. 국방일보 최근 보도에 따르면 관련 소식을 접한 정훈실은 루완 씨의 어려운 처지를 즉각 확인했다. 이후 공군본부 법무실 인권나래센터에 루완 씨의 처지를 알려 도움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최소담 법무실 소령은 사고 당시 구조된 전방석 조종사 이주한 예비역 소령의 인터뷰 등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취합해 법무부 출입국관리 담당자에게 공식 의견서를 발송했다. 군사보안 규정상 사고 조사 결과 원본을 외부 기관에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조 조종사의 직접 증언과 관련 언론 보도를 활용해 루완 씨의 공로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했다.
공군의 적극적인 노력은 법무부의 긍정적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이바지했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열린 제32회 외국인 인권 보호 및 권익증진협의회에서 루완 씨의 지원 방안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고, 심의 결과 미등록 체류에 따른 범칙금을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아울러 체류자격(G-1) 변경을 거쳐 합법적인 체류를 허가하고 본인이 희망할 경우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를 부여해 국내 취업까지 가능하도록 결정했다.
루완 씨는 국방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어려움에 처한 군인들을 도울 수 있어 오히려 행복했다"며 "도움을 바라고 구한 것은 아니지만 공군과 한국 국민이 저를 위해 나서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딸과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에 도울 일이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